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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繡)의 비밀한용운(1879~1944)나는 당신의 옷을 다 지어 놓았습니다. 심의도 짓고, 도포도 짓고, 자리옷도 지었습니다.짓지 아니한 것은 작은 주머니에 수 놓는 것뿐입니다.그 주머니는 나의 손때가 많이 묻었습니다.짓다가 놓아두고 짓다가 놓아두고 한 까닭입니다.다른 사람들은 나의 바느질 솜씨가 없는 줄로 알지마는 그러한 비밀은 나 밖에는 아는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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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뉴스
2011.12.03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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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당의 매화를 추억하다(玉堂憶梅) 이황(1501~1570)一樹庭梅雪滿枝(일수정매설만지)/ 한그루 마당의 매화가지에 가득 눈꽃 피니風塵湖海夢差池(풍진호해몽치지)/ 풍진의 세상살이 꿈마저 어지럽네玉堂坐對春宵月(옥당좌대춘소월)/ 옥당에 홀로 앉아 봄밤의 달을 보며鴻雁聲中有所思(홍안성중유소사)/ 큰기러기 슬피 울 제 생각마다 산란하네이황(李滉 )은 예안(禮安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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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2011.11.15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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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룻배와 행인한용운(1879~1944)나는 나룻배당신은 행인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
인터뷰
김기영
2011.11.1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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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계장터 신경림(1936 ~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靑龍) 흑룡(黑龍)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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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2011.10.25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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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여행자를 위한 서시 류시화(1959~)날이 밝았으니 이제 여행을 떠나야 하리. 시간은 과거의 상념 속으로 사라지고 영원의 틈새를 자라 본 새처럼 그대 길 떠나야 하리.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냥 저 세상 밖으로 걸어가리라. 한때는 불꽃같은 삶과 바람 같은 죽음을 원했으니 새벽의 문 열고 여행길 나서는 자는 행복하여라. 아직 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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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2011.10.02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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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수족관 최승호(1954~)아마존 수족관 열대어들이유리벽에 끼어 헤엄치는 여름밤세검정 길,장어구이집 창문에서 연기가 나고아스팔트에서 고무 탄 내가 난다열난 기계들이 길을 끓이면서질주하는 여름밤상품들은 덩굴져 자라나며 색색이 종이꽃을 피우고 있고철근은 밀림, 간판은 열대지만아마존 강은 여기서 아득히 멀어열대어들은 수족관 속에서 목마르다.변기 같은 귓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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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2011.09.11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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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평역에서 곽재구(1954~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그믐처럼 몇은 졸고몇은 감기에 쿨럭이고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산다는 것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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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2011.09.03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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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신경림(1936 ~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조용히 울고 있었다.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그는 몰랐다(신경림(申庚林 )은 충북 충주시(당시 충청북도 중원군)에서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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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2011.09.03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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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배 타고르(1861-1941)매일 매일 나는 종이배를 하나씩 흐르는 물살에 띄워 보냅니다. 크고 검은 글씨로 나는 그 배에 내 이름과 내가 사는 마을 이름을 적어놓습니다. 낯선 나라 누군가가 내 배를 발견하고 내가 누구인지 알아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 집 정원에서 따온 슐리꽃을 내 작은 배에 싣고 이 새벽의 꽃들이 밤의 나라로 무사히 실려 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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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2011.08.20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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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집아기 한인현(1921~1969)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팔 베고 스르르 잠이 듭니다.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한인현은 1921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나 1969년에 사망했다. 함흥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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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2011.08.20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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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놀이 주요한(1900~1979)아아 날이 저문다.서편 하늘에 외로운 江물 위에 스러져가는 분홍빛 놀……아아 해가 저물면,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사월이라 파일날, 큰 길을 물밀어가는 사람소리······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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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2011.08.07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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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1901~1943)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낸 맘에는 내 혼자 온 곳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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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2011.08.07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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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일(雪日) 김남조(1927~ )겨울나무와 바람 머리채 긴 바람들은 투명한 빨래처럼 진종일 가지 끝에 걸려 나무도 바람도 혼자가 아닌 게 된다.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삶은 언제나 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 섭리(攝理)의 자갈밭의 어디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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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2011.07.28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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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城北洞) 비둘기 김광섭(1906~1977)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가슴에 금이 갔다.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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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2011.07.28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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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민가충담사(신라시대) 지음/ 김완진 역군(君)은 아비요신(臣)은 사랑하시는 어미요,민(民)은 어리석은 아이라고하실진댄 민(民)이 사랑을 알리라.대중(大衆)을 살리기에 익숙해져 있기에이를 먹여 다스릴러라.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는가할진댄 나라 보전(保全)할 것을 알리라.아아, 군(君)답게, 신(臣)답게, 민(民)답게 한다면 나라가 태평을 지속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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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2011.07.19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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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에 부쳐 윌리엄 워즈워스(1770~1850) 오, 유쾌한 새 손이여!예 듣고 지금 또 들으니내 마음 기쁘다.오, 뻐꾸기여!내 너를 '새'라 부르랴,헤매는 '소리'라 부르랴?풀밭에 누워서거푸 우는 네 소릴 듣는다.멀고도 가까운 듯이 산 저 산 옮아가는구나.골짜기에겐 한갓햇빛과 꽃 얘기로 들릴 테지만너는 내게 실어다 준다,꿈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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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2011.07.19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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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년 정월 2일 입춘(壬子年正月二日立春) 이황(1501~1570)黃卷中間對聖賢(황권중간대성현)/ 누렇게 바랜 옛 책 속에서 성현을 대하며虛明一室坐超然(허명일실좌초연)/ 비어 있는 방안에 초연히 앉았노라梅窓又見春消息(매창우견춘소식)/ 매화 핀 창가에서 봄소식을 다시 보니莫向瑤琴嘆絶絃(막향요금탄절현)/ 없음을 향해 옥장식 거문고 줄이 끊어질 것을 한탄 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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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2011.07.0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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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박형진(1958~)풀여치 한 마리 길을 가는데내 옷에 앉아 함께 간다.어디서 날아왔는지 언제 왔는지갑자기 그 파란 날개 숨결을 느끼면서나는모든 살아있음의 제자리를 생각했다풀여치 앉은 나는 한 포기 풀잎내가 풀잎이라고 생각할 때그도 온전한 한 마리 풀여치하늘은 맑고들은 햇살로 물결치는 속 바람 속나는 나를 잊고 한없이 걸었다.풀은 점점 작아져서새가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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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2011.07.0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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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박인희(1931∼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기를 꽂고 산들 무얼 하나꽃이 내가 아니듯내가 꽃이 될 수 없는 지금 물빛 몸매를 감은한 마리 외로운 학으로 산들 무얼 하나사랑하기 이전부터기다림을 배워버린 습성으로 인해온 밤내 비가 내리고 이젠 내 얼굴에도강물이 흐르는데··&mid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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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2011.06.19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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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교사 예찬 헨리 반 다이크(1852~1933)나는 무명교사를 예찬하는 노래를 부르노라전투를 이기는 것은 위대한 장군이로되전쟁에 승리를 가져 오는 것은 무명의 병사로다새로운 교육제도를 만드는 것은 이름 높은 교육자로되젊은이를 올바르게 이끄는 것은 무명의 교사로다.그가 사는 곳은 어두운 그늘가난을 당하되 달게 받도다그를 위하여 부는 나팔 없고그를 태우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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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뉴스
2011.06.19 0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