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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군 휴식을 취하다“소장은 반대입니다.”우문술의 좌장인 일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아니, 저놈이 직속 상관인 나의 의견에 정면으로 반대해? 지난번에도 공개석상에서 나를 우습게 만들더니, 오늘 또 나를 바보로 만들 셈이야?’우문술은 일록의 반대 입장에 하늘이 노래지는 것을 봐야 했다.“오호-, 번일록 좌장이 요즘 제법 말을 할 줄 아는구려. 어디 말해보시오.”우중문은 우문술의 좌장이 일어서자 얼른 발언권을 부여했다. 여러 장수는 그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까 기대 반 우려 반으로 그를 응시했다. 일록의 두 아우도 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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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3.10.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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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성 삼십 리 밖행군이 멈추고 잠시 쉬는 틈을 이용해 상태가 안 좋은 병사들은 풀숲이나 숲속에 아무렇게나 누워 주린 배를 쥐어 잡고 고통스러워했다. 다른 병사들은 들로 산으로 퍼져서 먹을 것을 찾느라 야단이었다.들판에는 고구려군이 미처 제거하지 못한 곡식이 약간 남아있었다. 병사들이 날곡식을 뜯어 입안에 쑤셔 넣느라 제정신이 아니었다. 콩 껍질도 까지 않고 날로 먹다가 캑캑거리는 병사, 누렇게 말라 죽은 채소 잎사귀를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는 병사, 반쯤 썩어 문드러진 호박을 우걱우걱 씹어먹는 병사 등 들판과 야산에 병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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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3.10.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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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노수옥감자꽃 피던 마을을 지나빈 수수밭을 지나구월의 꼬리를 밀어내고 시월이 온다바람에 흔들리던 코스모스의 몸짓과모가지가 사라진 해바라기 밭도 지나왔다정수리에 서리가 내린 시월우듬지를 타고 오르던 물기가공기층으로 흩어진다휘어진 갈대의 허리에는 기러기 울음이 묻어있다거두지 못한 늙은 호박의 이마 위로찬바람이 다녀가는 밤누군가는 밤새워 스웨터를 짜고또 누군가는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쓰고 있을 것이다간이역은 귀를 세우고 놓쳐버린 발소리를 듣고 있다바람의 속도가 빨라지면 저녁은 서둘러 창문을 닫고속살이 붉은 가을의 내력을 읽는다땅거미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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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서영
2023.10.08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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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군의 유인작전을지문덕은 마침 태왕이 잠시 전방 시찰을 왔을 때 웅록의 비밀에 대하여 모두 고했다. 태왕은 웅록의 존재에 대하여 알고는 있었지만, 자세한 사항은 알지 못했다. 태왕은 그녀의 세 아들이 별동대의 수뇌부로 있다는 사실에 더더욱 놀라며 웅록을 불러 여러 가지를 물어보기도 했다.태왕은 을지문덕에게 수나라 별동대에 있는 웅록의 아들들과 수시로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수단을 취하고 작전을 구상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을지문덕은 수나라 말을 제법 할 줄 아는 병사 서너 명을 차출하여 세작(細作)으로 정하고 수나라 병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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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3.10.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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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지엄한 명령진진이 큰소리로 외치자 여러 장수도 우중문처럼 손뼉을 치면서 ‘하오’를 연발했다. 그러나 우문술과 유사룡은 마치 벌레 씹은 얼굴을 하고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그 두 사람을 녹족 삼 형제가 노려보았다.“여기 항복문서입니다.”웅록이 고구려 태왕의 항복문서를 우중문에게 건넸다. 우중문이 그 자리에 서서 고구려 태왕의 인장이 선명하게 찍힌 문서를 펼쳐 들고 읽어내려갔다. 항복문서를 읽던 우중문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지면서 웅록을 노려보았다. 진진이 얼른 우중문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이 귓속말을 나누더니 진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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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3.09.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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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항복문서한여름 밤은 병사들을 더 지치게 했다. 고구려군을 추격하며 남쪽으로 진격하는 별동대는 낮에는 고구려군의 기습에 시달리고, 밤에는 모기와 뱀 등 해충에 시달렸다. 며칠 전에는 별동대가 야트막한 산지에서 야영하다가 수백 명의 병사가 독사에 물려 수십 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밤마다 기승을 부리는 모기떼는 별동대의 피를 빨았다. 다음날 일찍 녹족 삼 형제의 예상대로 고구려군 진영에서 사람이 왔다며, 병영의 앞면에 설치된 초소가 왁자지껄했다.“우리는 고구려군 진영에서 온 사절이다. 너희 총사령관에게 할 말이 있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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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뉴스
2023.09.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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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문의 착각“과연, 과연 번회 아들답도다. 그 아비에 그 자식들이로다. 좋다. 별동대 총지휘관으로서 여러 장수에게 명령을 하달한다. 평양성까지 잠시도 지체하지 말고 돌격하라. 꾸물거리거나, 눈치를 살피며 진군을 빨리 진행하지 않는 지휘관은 즉결 처분하겠다. 알겠는가?”“장군의 명을 받들겠습니다.”우문술과 유사룡만 머쓱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해댔다. 우중문의 서슬에 여러 장수는 그만 기가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7월 중순에 접어든 시기였다. 아침에 해가 뜨기 무섭게 대지는 달아올랐다. 수나라 별동대는 허기진 가운데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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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3.09.16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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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 진영의 내분우문술도 우중문의 기세에 눌리거나 꺼둘리지 않으려고 무진히 애를 썼다.“우중문 대장군, 좌익위대장군의 의견도 일리가 있어요. 어쩌면 우리 별동대가 고구려놈들의 전략에 말려들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재고해보셔야 합니다. 별동대가 타국 땅에서 고혼(孤魂)이 되는 것보다 회군하여 재정비하는 편이 좋습니다. 작전상 후퇴는 황제 폐하께서도 뭐라 나무라지 않을 것입니다.”이번에는 잠자코 있던 유사룡이 끼어들어 우문술을 거들고 나섰다. 두 사람이 철군을 말하자 우중문도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고집대로 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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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뉴스
2023.09.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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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지의 노래허민 나를 스쳐간 독자여지나온 생을 되돌아보는 밤이다구멍 난 가슴 한쪽 스스로를 위한작은 부고 기사 하나 실어보지 못하고결국 이렇게 끝을 맺는 밤이다낡은 집 바닥에 젖은 채 누워한껏 페인트나 풀을 뒤집어쓰거나먹다 남은 짜장면 그릇 따위 덮고 있을 줄몰랐던 쓸쓸한 밤이다노숙인의 유품이 되어 그의 마지막 겨울을나의 마지막으로 덮게 될 줄 몰랐지만마지막까지 나를 필요로 했고나는 그의 외로움을 가려주었으니조금은 괜찮았던 밤이다생이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으니내가 한 그루 푸르고 싱싱한 나무였을 적한 여인이 내게 등을 기댄 채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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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서영
2023.09.06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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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평양성압록수의 물이 장마 이전의 수준으로 되면서 수나라와 고구려군 사이에 점차 긴장이 높아져 갔다. 을지문덕은 수나라 별동대가 곧 압록수를 건널 것을 예상하고 그들을 맞을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수나라 별동대는 요동에서 압록수까지 오면서 고구려군과 전투다운 전투를 해보지 못했다.고구려군을 맞아 싸우는 것보다 무거운 군장(軍裝)을 메고 천리(千里) 가까운 길을 행군하는 게 더 어려웠다. 별동대는 백 일 분의 군량과 갑옷, 무기 등을 짊어지고 고난의 행군을 해야 했다. 마치 큰 돼지 한 마리를 업고 가는 것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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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3.09.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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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족 형제 을지문덕을 구하다을지문덕과 수행원 두 명이 수나라 진영을 빠져나와 동쪽을 향해 말을 달렸다. 을지문덕 일행이 돌아가고 나서 우중문은 삼록을 불렀다.“대장군, 찾으셨습니까?”“내가 아무래도 실수를 한 것 같다. 유사룡이 나에게 흥글방망이놀은 게 틀림없다. 을지문덕을 체포해야 했다. 촐랑이 유사룡의 체 치 혀 때문에 대사를 그르친 게 분명하다. 삼록대장은 구록대장과 병사 열 명을 데리고 을지문덕을 추격하여 잡아 와라.”“알겠습니다.”우문술도 을지문덕을 보내놓고 나서 곰곰이 생각하니 유사룡에게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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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3.08.26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