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족부인 적진에 가다“형님, 페르시아 상인에게 팔려간 육록 형님과 팔록 형님이 보고 싶어요. 요즘 들어서 부쩍 우리와 함께하지 못하는 형제들이 그립습니다. 우리 아홉 형제는 수나라 해적에 의해 이렇게 되었습니다.사실 우리가 싸워야 할 상대는 조국 고구려가 아닌 수나라입니다. 당장 장군 막사로 달려가 우중문과 우문술의 목을 베어 고구려로 탈출하고 싶습니다만, 상황이 좋지 않아 참고 있을 뿐입니다. 언젠가 우리 삼 형제는 두 장수의 목을 취해 고구려에 바쳐야 합니다.”“쉿-, 지금은 침착해야 한다. 경거망동하다가는 우리 삼 형제
기고
최재효
2023.05.20 06:00
-
을지문덕 계략을 세우자을지문덕은 수군 별동대의 이동 경로와 진영 배치를 그린 지도를 펼쳐놓고 웅록과 세밀한 작전을 짜기로 했다. 지도 위에 나타난 양군의 대치상황으로 볼 때 고구려군은 압록수 남동쪽으로 이십 리쯤에 군영(軍營)을 갖추고 있고, 수나라 군영은 압록수에서 북서쪽으로 30여 리 떨어져 진을 치고 있었다.얼핏 지도에 그려진 양군의 배치도를 볼 때 고구려군은 수나라 군대를 이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30만 5천 명의 수나라 별동대를 5만이 채 안 되는 고구려 정예병으로 대적하기에는 무리였다.“장군님, 우중문의 군영에
기고
최재효
2023.05.13 06:00
-
-
녹족의 아들 수나라 선봉이 되다얼마 뒤에 양광이 황제에 즉위하자 우익위대장군에 임명되어 문무백관을 관리하기도 했다. 아비에 이어 양광이 또 고구려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자 우중문은 좌군 중 낙랑도군(樂浪道軍)을 이끌고 고구려 정벌전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전쟁이 지지부진하자 우문술과 별동대를 이끌고 평양을 직공(直攻)하는 선봉장이 되었다.“장군님, 지금 우문술과 우중문이 한 군영에 같이 있습니까?”“아닐세. 압록수 건너 최전선에 우중문의 병영이 있고 그 뒤로 우문술의 진영이 있네. 정신 나간 양광이 우문술보다 우중문을 더 신
기고
최재효
2023.05.06 06:00
-
영산으로 흐르자-의병들과 곽재우 장군을 기리며명서영물이 물렁하다고 물 먹이지 마라 물은 불길 어디든 흐를 수 있다어린 잎사귀 하나가 낚아채지 못하고 놓친 빗방울이었던 나는 부림면 외딴 산골이 생성시킨 물, 커다란 나무에 기대어 십칠 년째 자라고 있는 가느다란 물줄기 스스로 일어선다스스로 낮추고 낮아져서 비로소 나는 맨땅을 적시고 길을 텄다작은 통로를 지날 때 물도 뼈를 깎고 영혼까지 쪼그려서야 나왔다겁 없는 영산은 커다란 불길, 불길 앞에서 본능적으로 계곡이 반대 방향으로 물고를 튼다방향이 없이 날아온 불, 옆 친구의 머리가 불이다
기고
명서영
2023.05.03 08:46
-
수나라 진영에 가다“장군, 소관 웅록입니다.”“어서 오시게. 기다리고 있었네.”을지문덕은 손수 찻물을 끓여 웅록에게 차를 대접하였다. 보통은 부하 사병들이 하는 일이었으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사에게는 그가 직접 차를 달였다. 고구려에 소수림왕 때 전진(前秦)의 순도(順道)가 불교를 고구려에 전파하면서 차 문화도 유입되었다. 차는 웅록에게 익숙한 음료였다.웅록이 태어난 곳이 바로 평양 인근에 있는 광법사(廣法寺)였고, 그를 거두어 기른 사람이 바로 이암대사(利嚴大師)였다. 웅록은 세속으로 나오기 전까지 이암대사 아래서 수련하
기고
최재효
2023.04.29 06:00
-
뼈들이 전하는 말박복영허허벌판 꽃 무덤아래알 수 없는 뼈들이 엉켜 있다돌멩이를 파헤쳐 열수록지층이 물고 있는 뼈 조각들이름 없는 목숨들이 층층으로 덮여 있었다누군가는 동물 뼈라 했고어떤 이는 나뭇가지라고도 했다손가락뼈들은 주먹을 쥔 듯 말려 있었고머리뼈는 앞을 향해 기울어져 있었다붓으로 꺾인 무릎 뼈에 쇠구슬이 박혀 있었다어느 연대의 시간을 관통했을쇠구슬은 녹슬어 삵아 붉었다빗소리와 눈보라를 삼키며 연명했을 뼈들침묵으로 견뎌온슬픔의 역사를 물고 있다열면 열수록 뼈들의 전언처럼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개미떼가 의병 같았다한 방향으로 돌진
기고
명서영
2023.04.26 08:37
-
녹족부인의 자식들다섯 살밖에 안 된 웅록의 자식들을 잡아간 해적들은 아이들을 노예 상인에게 팔아버릴 예정이었다. 아이들은 험상궂게 생긴 수나라 해적들에 의해 배의 창고에 갇혀 지내야 했다.해적들이 주로 납치하는 대상은 젊은 여인이나 어린아이들이었는데, 스물 안팎의 처녀는 보통 백양에 거래되었고, 어린아이들은 남,녀의 구분과 건강 상태에 따라 보통 오십 냥 정도에 거래되었다. 배에 갇혀 낯선 사람, 이상 기후, 입에 맞지 않는 음식 등으로 아이들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아이들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도 억지로 먹어야 하는
기고
최재효
2023.04.22 06:00
-
-
지피지기“우리 군은 대부분 산성에 발이 묶여 있습니다. 약 오만명의 병력으로 요동 지역에서부터 이곳 압록수까지 수나라 별동대를 상대로 치고 빠지는 식으로 접전을 이어왔습니다. 저들이 지칠 때까지 계속 이대로 이끌고 가는 게 좋을 듯합니다. 전술을 바꾸다가는 전 병력이 혼란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비장의 말 끝나자 돌격대의 고 군관이 의견을 말했다.“우리의 전략과 전술은 이미 수나라 지휘부에 알려졌습니다. 이제는 색다른 전술을 모색할 때입니다. 수나라군도 지쳤지만, 우리 군도 상당히 지친 상태입니다. 수나라 군대를 격퇴하고
기고
최재효
2023.04.15 08:56
-
녹족 9형제녹족도 식음을 전폐하고 두문불출하며 집에만 있다가 결심한 게 있어서 남장하고 집을 떠났다. 그녀는 조의선인 집단의 일원이 되어 자식과 남편의 원수를 갚고자 했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고 수나라 해적들이 자식들을 납치해갔다고 결론을 내렸다.고구려의 젊은이들은 조의선인 집단에 들어가 출세하는 것이 가장 큰 희망이었다. 고관대작이 되기 위해서는 출신성분이 중요했다. 고구려는 5부 연맹체로 출발한 나라여서 초기에는 연노부, 절노부, 순노부, 관노부, 계루부(桂婁部) 등 5부족 출신의 이름있는 가문이 아
기고
최재효
2023.04.08 06:00
-
오목한 기억김나비나는 걸어다니는 화석이지아득한 어제의 내일에서 말랑말랑하게 오늘을 사는지금 난 미래의 어느 지층에서 숨을 쉬고 있는 걸까오지 않는 시간 속, 닿을 수 없는 먼 그곳엔오늘이 단단하게 몸을 굽고 있겠지거실에 흐르는 쇼팽의 녹턴도 조각조각 굳어 가겠지밤마다 창 밖에 걸었던 내 눈길도오지 마을 흙벽에 걸린 마른 옥수수처럼 하얗게 굳어 있을거야이번 생은 사람이라는 포장지를 두르고 살지만삐걱이는 계단을 밟고 내려가면지하 1층쯤 지층에는내가 벗어버린 다른 포장지가 파지처럼 구겨져 있겠지기억이 모두 허물어진 나는 나를 몰라도 어둠
기고
명서영
2023.04.06 13:25
-
-
-
-
사슴이 낳은 여인을지문덕은 요하에 군사를 배치하여 수나라 군대가 요하를 건너지 못하도록 했다. 요하를 사이에 두고 고구려와 수군의 공방전이 2개월가량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수나라 병사 4만여 명이 고구려군에게 죽임을 당했다.이때 용맹하기로 소문난 수나라 좌둔위대장군 맥철장(麥鐵杖)도 고구려군 칼에 목이 떨어졌다. 고구려는 요하(遼河)를 제1 방어선으로 하고, 압록수를 제2 방어선으로 하며, 최종적으로 살수와 *패강(浿江)을 마지막 보루로 삼고 있었다.수나라 군대가 요하를 건너자 을지문덕 장군은 고구려군을 작전상 요동성(遼東
기고
최재효
2023.04.01 06:00
-
무 싹을 바라보는 견해들고은희잘라놓은 반 토막 무에서 싹이 돋아 나왔다.할머니는 처녀 적 사립문 같다고 하고 아버지는 막 빠져나오는 송아지 같다고 하고 나는.혁명 같다고 했다.연속 재배하면 벌레 먹고 풀이 날개를 치면 한없이 나약해져 버리는 무. 두더지가 지나간 자리를 싹둑 잘라 두었던 것인데, 잘린 쪽은 이미 구름으로 덥혀 져 있다. 구름의 본성은 땅으로 스며들고 스며든 본성이 하늘을 닮아간다는 것, 부채 살 같이 퍼진 무의 속을 보면 알 수 있다.무는 흰 구름과 파란 하늘이 함께 들어 있는 채소라서 무를 여러 번 말하면 맵고 지
기고
명서영
2023.03.31 10:54
-
-
폭풍전야양광이란 허릅숭이 황제가 또 광증이 발작하여 수나라 젊은이 113만 명을 강제로 끌어모아 전쟁터로 내몰았다. 병참지원과 잡역 등에 동원된 잡부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3백만 명에 가까웠다.양광의 아비는 수나라를 건국한 양견(楊堅)이었다. 그는 14년 전 고구려 *고대원(高大元) 태왕이 수나라에 입조하여 자신에게 하례를 올리지 않는다는 빌미로 30만 대군을 동원하여 고구려를 침범했다. 수나라 군대는 육로와 해로를 통해 고구려로 쳐들어왔다.그 당시 주라후가 이끄는 수나라 해군은 황해를 건너 평양으로 향하는 도중에 폭풍을 만나
기고
최재효
2023.03.25 06: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