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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슬한 달밤 누구를 생각하시나요“금봉아, 이 미련한 아비를 탓해다오. 이 욕심 많은 아비를 용서해다오. 내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미안하구나. 정말로 미안하구나.”그는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편안한 모습으로 영면에 든 금봉이의 눈가에 말간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금봉아, 원통해서 어이할꼬. 억울해서 어찌 이승을 떠날꼬.”그녀의 고모와 이모들은 울며 몸부림 쳤다.“금봉아, 미안하다. 내거 너를 지켜주지 못했구나. 부디 좋은 데로 가서 편히 쉬어라. 미안해, 너를 지켜주지 못해서…….”갑돌이는 소리 내어 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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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3.03.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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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 정인(情人)에게 달려가다“금봉이가 저렇게 허망하게 갔으니 갑돌이가 충격을 받았을 텐데. 저 일을 어쩌나? 금봉이가 다른 씨앗을 품고 있어도 갑돌이 금봉이를 탓하지 않고 더욱 애틋하게 생각했다는데. 저러다 갑돌이도 잘못 되는 거 아녀?”“그거참! 미꾸라지 한 마리가 몰래 기어들어와 온 동네를 슬픔에 잠기게 하였어. 그러게 타지 사람을 함부로 재우는 게 아니었어. 앞으로는 또 저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절대로 낯선 과객을 집안에 들여 재우지 말아야 해.”“하나 밖에 없는 딸을 잃은 금봉이 아버지가 안 되었네 그려.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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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3.02.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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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수박명서영바다를 건너온 아들이 수박 한 통을 사 왔다표면에 물결무늬 깊게 새겨진 수박이쪽저쪽으로 구르고 도망친 모래톱 흔적처럼한쪽 귀퉁이가 갈색으로 퇴색되어 있다식탁에 둥실 떠 있는 바다바다를 열자 커다랗고 빨간 해가 꽉 차 있다세상 파도에 맞서 까맣게 탄 아들이 싱긋 출렁인다신이 난 아들 입가에 붉은 미래가 반짝 입질한다해를 품은 바다가 자생한다아들을 물로 본, 물 먹인 학교폭력깊이를 가늠할 겨를도 없이밑바닥까지 바다를 가라앉혔던 아들바다가 되어 해를 품고 있다식탁과 바닥 집안을 물바다로 만든 수박망망대해를 수없이 쓰러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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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서영
2023.02.19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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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소녀 승천하다“그러면 안 됩니다. 위험해요. 지금 잠시 의식을 잃었을 뿐입니다. 금방 깨어날 수도 있으니 일단 조용히 해야 합니다. 이렇게 큰소리로 말하는 것은 환자에게 도움이 안 됩니다.”박씨가 만류하였지만 고모와 이모들은 금봉이 숨이라도 넘어간 것처럼 소리 내어 울었다.“아이고, 금봉아! 정신 차려라. 이렇게 가면 안 된다. 아버지도 안 계신데, 이리 허망하게 가면 안 된다. 정신 차려라.”“조카야, 정신 줄 놓으면 안 된다. 아버지가 지금 박도령을 데리고 오고 있어. 조금만 기다리면 돼.”고모들은 당황하여 꺼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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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3.02.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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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분들이 ‘입맛이 없다’, ‘잠을 잘 못 잔다’, ‘기운이 없다’고 해도 나이 탓 혹은 날씨 탓이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쉽다. 하지만 신체 증상을 자주 호소하고 건망증 증상까지 보인다면 노년기 우울증을 의심해봐야 한다.우울 증상은 65세 이상 인구 10명 중 2~3명이 경험한다고 알려질 정도로 고령층에서 매우 흔한 정신건강 문제다. 노년기 우울증은 다양한 치료법을 통해 회복이 가능하지만 방치할 경우 치매로 이어질 수 있어 더욱 주의해야 한다. 노년기 우울증 증상과 치료법, 치매와 구분하는 방법등을 살펴보자.노인 10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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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관리협회 인천지부
2023.02.14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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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봉이의 유언“유생들이 공부를 하고 과거(科擧)를 일생의 목표로 삼는 일은 장차 벼슬을 하면서 백성들의 목숨과 재산을 보호하고 나라의 기강을 바로 잡는 일에 있습니다.”“맞습니다. 박도령의 집을 알려주십시오. 부탁합니다.”훈도는 창호지에 그림을 그려가며 박달의 고향 집 위치를 알려주었다. 두 사람은 마차를 타고 풍산으로 향했다. 날이 어두워 두 사람은 물어물어 박달의 고향집에 도착하였다. 그의 고향 집은 규모는 크지 않으나 고색창연한 기와집이었다.“뉘신데 우리 아들을 찾습니까?”“저희들은 제천서 박도령을 찾으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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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3.02.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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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의 고향, 풍산을 가다“서방님, 이번 별시가 끝나면 금봉 낭자에게 다녀오세요. 그러나 지금은 안 됩니다. 만약 서방님께서 여기서 멈춘다면 지금까지의 일이 모두 허사(虛事)가 됩니다. 그러니 이번 별시가 끝나면 속히 벌말에 다녀오세요. 그리고 복시도 준비하셔야 하잖아요.”‘이 여인이 제 정신으로 하는 말인가? 내가 입격하고 나면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안 놓아 줄줄 알았는데, 금봉에게 다녀오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박달이 잔을 비우고 아지에게 잔을 건넸다.“자, 그대도 한 잔 받아요. 그리고 방금 한 말 진담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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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3.02.04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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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트임후성코끼리를 보라코끼리끼리는 볼 수 없는 코끼리를 보라꼬리를 위해 서 있는 네 번째와 세 번째 다리를 보라걸음을 뗄 때 발을 남기고 벗겨질 것만 같은 발의 접힌 거죽을 보라달라붙어 있지 않고그것은 끌려다닌다우리의 난제였던 바깥이다실체는 헐렁헐렁하다그 안에서 기관을 해체하는 망치질 같은 코끼리의 걸음을 보라눈앞에 직접 정의된 코끼리를 보라걸을 때마다 부서지고 있지 않은가간신히 어금니로 연결되어 있지만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지 않은가코끼리 안으로 들어가지 마라안과 바깥은 서로에게 통증이 그지없다뒤쪽 숲을 보라나뭇잎들이 가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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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서영
2023.02.04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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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의 욕심폭풍전야처럼 벌말은 침묵 속에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온 마을뿐만 아니라 인근 마을까지 금봉이의 상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밤이면 동네 총각들은 과수댁 선술집에 모여 박달을 성토하기도 하고, 자신들이 그녀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하여 술로 울분을 삭히기도 하였다. 그 중에서도 수돌이는 다른 사내들보다 많은 술을 마셔댔다.“금봉이가, 금봉이가 불쌍해. 소문을 들으니 이미 이승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해.”수돌이 큰 소리로 통곡하자 종철을 비롯해 마을 사내들은 침울한 얼굴로 연거푸 술잔을 비웠다. 어떤 사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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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3.01.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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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 영화이진우서른다섯 번을 울었던 남자가 다시 울기 시작했을 때 문득 궁금해집니다사람이 슬퍼지려면 얼마나 많은 복선이 필요한지관계에도 인과관계가 필요할까요어쩐지 불길했던 장면들을 세어보는데처음엔 한 개였다가 다음엔 스물한 개였다가그다음엔 일 초에 스물네 개였다가 나중엔 한 개도 없다가셀 때마다 달라지는 숫자들이 지겨워진 나는불이 켜지기도 전에 서둘러 남자의 슬픔을 포기해버립니다이런 영화는 너무 뻔하니까안 봐도 다 아는 이야기니까이 사이에 낀 팝콘이 죄책감처럼 눅눅합니다극장을 빠져나와 남은 팝콘을 쏟아 버리는데이런 영화는 너무 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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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서영
2023.01.25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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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한 벌말 어른들“선달님, 조금 전에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박도령님은 나흘 전에 고향 풍산으로 내려가셨다고요. 고향 내려가는 중간에 따님을 만나러 평동에도 들린다고요. 저는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저도 사람인데 선달님 말씀을 듣고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주모 말을 믿어도 되는 거지요?”최대호는 아지의 말이 진심이기를 바랐다.“선달님, 늘 속고만 사셨어요?”“한 가지만 더 물어 봅시다. 박도령과는 어찌되는 사입니까? 그리고 박도령은 지난번 과거에 급제했습니까? 아니면 낙방했습니까?”“그냥, 주모와 장기 투숙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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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3.01.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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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방꾼"흥, 절대로 못 찾을걸. 이제 경우 내 서방이 되었는데 허무하게 내 줄 수 없지. 그 금봉이란 처자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어."아지는 박달이 주막에 있을 때 일행들이 찾아왔더라면 그를 빼앗겼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지는 문 밖에 소금을 뿌리면서 손을 탁탁 털었다. 잠시 뒤에 박달이 돌아오자 아지는 사정이 생겼다면서 그를 운종가의 극락으로 데리고 갔다. 박달은 영문도 모르고 아지를 따라 나섰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서방님, 며칠간만 이 극락에 있으세요. 우리 주막은 지금 너무 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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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3.01.1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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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아이스-결혼기념일민소연평생 함께하겠습니다짙은 약속을 얼떨결에 움켜쥐었을 때새끼손가락 끝에 검붉은 피가 모였을 때치밀한 혀를 가지게 될 거라는 걸 알았다어떤 밤엔 마침내 혀를 쓰지 않고도 사랑을 발음했다맺혔던 울음소리가 몇 방울 떨어지고태어나고수도꼭지를 끝까지 잠갔다한밤중엔 그런 소리들에 놀라서 문을 닫았다너무 규칙적인 것은 무서웠다 치열하게몸을 움직이는 초침 소리나몸을 웅크린 채 맹목적으로 내쉬는 너의 숨소리가 그랬다거듭 부풀어 오르는 뒷모습을 보면서 호흡을 뱉었다어쩌면 함께 닳고 있는 것 같았다박자에 맞춰 피어오르는 게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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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서영
2023.01.09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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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악한 주모“아닐세. 내가 그 두 사람의 수고비는 얼마든지 댈 수 있네. 이장이 그리 권하니 그럼 종철이도 데리고 가지. 비용은 신경 쓰지 마시게. 그 두 사람에게 한양 갔다 올 때 까지 드는 비용은 내가 부담하고 수고비로 두 사람에게 각각 이백 냥씩 내놓겠네.”벌말뿐만 아니라 근동에서 가장 큰 부자인 최대호에게 돈 사백 냥은 그리 큰 부담이 아니었다.“아저씨, 무슨 이백 냥씩이나 내놓으세요?”“추운 날씨에 한양에 다녀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네.”“그럼, 두 애들에게 알려 한양 갈 채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다음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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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3.01.07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