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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 심기일전하다“그냥 가시게요? 시장에 오셨으니 모주라도 한 사발 들고 가야죠? 도령님, 이리 오세요.”“주모가 기다릴 텐데? 빨리 가야 하잖니?”“딱 한 잔만 마시고 가요.”“그래, 그럼 딱 한 잔이야.”박달은 한 잔 술을 마시면서 간난이에게 자신의 간단한 신상을 소개하였고 간난이는 그런 박달이 측은했는지 앞으로 많이 도와주겠다고 하였다.“간난아, 고맙다.”“대신 박도령님, 좋은 일이 있으면 저에게 술 한 잔 사주셔야 해요? 오늘은 제가 살게요.”박달과 간난이는 모주 두 잔씩 마시고 주막으로 향했다. 하늘이 꾸물거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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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2.11.19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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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를 다시 만나다‘한 번의 실수는 누구나 있을 수 있어. 과거는 수시로 있으니 다시 시작해 보는 거야. 이번에는 더욱 정성을 다해 뒷바라지하면서 꼭 과거에 합격하도록 지성을 드려보는 거야. 그런데 왜 안 오실까? 내가 냉정하게 대했다고 정말로 화가 나서 고향으로 내려간 걸까? 금봉이란 처자에게 갔다면 어쩌나? 혹시 한양의 어느 주막에 계실지도 모르지. 노잣돈도 없을 텐데…….’아지는 박달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어찌하나? 수중에 돈이 다 떨어졌는데. 오늘 밤만 자면 이 봉놋방에서 쫓겨날 판인데. 이 험한 한양에서 어찌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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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2.11.1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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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배추정일근어머니에게 겨울 배추는 詩다어린 모종에서 시작해한 포기 배추가 완성될 때까지손 쉬지 않는 저 끝없는 퇴고노란 속 꽉 찬 배추를 완성하기 위해손등 갈라지는 노역의 시간이 있었기에어머니의 배추는이 겨울 빛나는 어머니의 詩가 되었다나는 한 편의 詩를 위해등 굽도록 헌신한 적 없어어머니 온몸으로 쓰신저 푸르싱싱한 詩앞에서 진초록 물이 든다사람의 詩는 사람이 읽지 않은 지 오래지만자연의 詩는 자연의 친구가 읽고 간다새벽이면 여치가 제일 먼저 달려와 읽고사마귀가 뒤따라와서 읽는다그 소식 듣고 종일 기어온 민달팽이도 읽는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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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서영
2022.11.07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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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이 시작되다금봉이는 이등령에서 넘어져 갑돌이에게 업혀 온 뒤로 한동안 집에서 꼼짝하지 못하고 누워있었다. 밥맛이 없다며 하루 세끼의 밥도 먹지 못하고 자꾸 헛구역질했다. 최대호는 딸의 그러한 상태를 알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속을 태우고 있었다.‘과거가 끝난 지 스무날이 훨씬 넘었는데 어찌 된 일일까? 박달 도령이 와도 벌써 왔을 텐데. 눈이 많이 내려 길이 막혀 그런가?’최대호는 궐련을 입에 물고 멀리 북녘 하늘을 바라보았다. 딸의 배가 아직은 마을 사람들 눈에 뜨일 만큼은 아니지만, 곧 마을 사람들은 딸의 비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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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2.11.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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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의 수난“나 무겁지?”“아냐, 괜찮아. 벌말까지 얼마든지 갈 수 있어.”갑돌이 금봉이의 따뜻한 엉덩이에서 전해지는 온기를 느끼며 금봉이와 잘 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빌었었다.“금봉아, 난, 난 네가 좋아. 난 예전부터 너에게 장가드는 꿈을 꾸고 살아왔거든. 그런데, 그런데 그 꿈이 산산조각 난 것 같아. 억장이 미어져 못 견디겠어. 너, 나랑 부부가 되면 안 되겠니?”“미안해. 그러기에는 너무 멀리 왔어. 난, 난 박달님에게 마음을 주어 버렸어. 그래서 이제는 나도 내 마음을 나 혼자 통제하지 못하겠어.”갑돌이 흐느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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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2.10.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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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아 해로윤유점바다는 창백한 숨을 몰아쉰다. 뱃전을 넘나드는 파고에 수부들은 생의 얼룩을 찍는다 물보라가 하얗게 일어서고 포식자는 재빠르게 입을 벌린다 스키프가 바다를 향해 튀어 오르면 날카로운 굉음이 전속력으로 질주하고 어군을 향한 투망은 저항을 끌고 간다 천 킬로미터의 그물은 이백 미터 깊이로 내려앉는다 커다란 원을 따라 돌고 도는 어족들 쏜살같이 흩어지다가 모여든다 교란하는 방향타가 빠르게 수면을 밀면 흩어진 대오는 고기 떼를 수습한다 미로를 유희하는 어망 아래의 상어 떼 조타명령을 내리는 선장의 목소리가 거칠다 선원들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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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서영
2022.10.25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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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의 밤거리를 배회하다.“안돼요. 안돼요! 우리 서방님을 끌고 가시면 안 돼요. 이 분은 오늘 과거에 합격하신 분이세요. 군관님, 잠깐만요.”‘아지가 여길 어떻게 알고?’“아, 아지?”“서방님, 이게 어찌된 일이세요?”“군관님, 우리 서방님은 그제 과거를 보셨어요. 오늘 합격자 발표를 보시고 기분이 좋으셔서 한잔 마시다 말다툼이 일어났어요. 우리 서방님은 착한 분이세요. 잠시 저 좀 보세요.”아지가 사령을 끌고 모주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한참 있다 나왔다.“험-, 여봐라! 저분만 풀어드려라.”‘아지가 어떻게 하였기에 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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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2.10.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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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마골 결투“수돌아, 너희들은 먼저 가라.”“너는?”“응, 아무래도 금봉이가 위험해.”“그래서 금봉이 뒤를 따라가려고? 그럼, 나도 같이 가자.”“안 돼. 너는 애들하고 어서 내려가. 너희들은 빨리 내려가 집에 나뭇짐을 부려야지. 어른들이 걱정하셔.”“야, 나도 가야 해.”수돌이도 갑돌이를 따라 이등령을 가겠다고 하자 갑돌이와 수돌이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생겼다.“수돌아, 애들 데리고 마을로 돌아가라. 나 혼자 금봉이 뒤따라 갈 테니.”“네 걱정이 아니라 금봉이 걱정돼서 그래. 그러니 내 앞길 막지 마.”“야, 너 자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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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2.10.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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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수고대동짓달 기나긴 밤 한허리를 둘러 내어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고운 임 오신 날 밤이어 든 굽이굽이 펴리라“조오타. 정말로 죽여주는구나.”“정말로 황진이가 환생한 듯하구나. 너, 이 모주집에서 썩긴 아깝다.”“그럼, 오라버니들 따라가면 기생이라도 만들어 주실래요?”“조오치. 애월아! 너 나 따라서 가자. 내가 기생청에 등록시켜 줄 테니.”박달과 두 남자는 애월이와 어울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술을 퍼마셨다. 박달도 애월이의 노래를 들으면서 울분을 삭이려고 하였다.“ 서방님께서 어찌된 것일까? 벌써 저녁때가 훨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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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효
2022.10.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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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의 송가프리드리히 실러환희여.아름다운 신들의 광채여.낙원의 딸이여.우리는 감동에 취하여빛에 가득한 성소로 들어가자.가혹한 현실이 갈라놓았던 우리는그대의 힘으로 다시 결합한다.그대 부드러운 날개가 머무르는 곳에모든 인간은 형제가 된다.만인이여.서로서로 손을 마주 잡고다함께 환희의 노래를 부르자.서로 껴안고 전 세계를 포옹하자.만인이여,영웅이 승리의 길을 달리듯이그대들의 길을 달리자. 얼마 전 우연히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 [합창] 교향곡을 친구들과 들었다. 20년간 음악학원을 운영하였던 나로서는 베토벤의 음악을 많이 들었고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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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서영
2022.10.06 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