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사상의 생성지 인천, 그 교육의 산실

▲ 사진은 18세기 후반 여지도 속의 학산서원(왼쪽) 과 학산서원 표지석과 터(1950년대)
서원은 16세기 이후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기관으로 교육과 선현 봉사의 기능을 담당했던 곳이다.

조선시대는 성리학을 실천하고 백성들을 교화하기 위해 전국에 관학을 설립했는데, 중앙에는 성균관과 4학, 지방에는 향교를 두었다.

인천에는 인천, 부평, 강화, 교동향교가 있었고, 서원은 학산서원이 유일하며 서원형식의 사당으로 강화도의 충렬사가 있었다.

1708년 설립된 학산서원은 사액서원으로 인천부사 이단상을 추모하여 건립되어 인천지역의 인재양성과 풍기교화를 담당했다.

우리나라 서원의 효시는 조선 중종 38년(1543) 풍기군수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서원이다. 이후 전국적으로 세워지는데, 면세와 군역 면제 등의 특권을 악용하는 폐해가 늘어나자 고종 8년(1871)에 대원군의 서원철폐가 단행되면서 거의 헐어버렸다. 당시에 학산서원도 없어졌다.

학산서원은 삼호현(사모지고개)으로 오르는 길 오른쪽에 있었는데 현재는 그 아래로 터널이 생기고 주변이 밭이 되어 흔적을 찾아 볼 수 없게 돼 지표석만 세워져 있다.

 조선시대 인천 교육과 유교정신의 실천공간으로 인천부 내에 유일하게 세워졌던 학산서원은 과거 인천교육의 위상을 보여주는 역사적 흔적이다. 이러한 인천 교육의 연원은 근대 개항 후 서구식 사립학교가 인천에서 최초로 설립될 수 있는 바탕이 됐다.

오늘날 인천인의 정신과 사상의 구심점은 이러한 역사성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시 관계자는 “과거 정신과 사상의 생성지였던 인천이 오늘날 세계와 소통하며 교육의 중심지로 거듭 발전해 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자료 인천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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