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 해성보육원 수녀와 원생
 한국 최초의 보육기관은 1894년 인천에 설립된 해성보육원(海星保育院)으로 알려져 있다.

 1893년 답동성당이 완공되고 이어 1894년 수녀원이 건립되면서 마리클레멘스, 엠마누엘, 사베리오 등 3명의 수녀가 답동성당에 파견되었다.

이들은 보육사업과 더불어 무료 진료를 매개로 선교활동을 펼쳤는데, 집 없이 방황하는 어린이들을 보호하면서 해성보육원의 전신인 제물포고아원을 설립하였다.

1896년 현재의 답동성당에 원사를 신축하고 수녀원에서 직접 운영하였다. 건물은 제4대 드뇌(Eugene Deneux) 신부때 증축되었고(1905), 1932년에는 벽돌식으로 개축하면서 천주교 고아원에서 천주교 보육원이라 개칭하였다.

 ▲1950년 완공된 해성보육원
1935년에는 보육원 운영을 위해 부속 병원을 설립했고, 1937년 원사를 3층 건물로 신축하는 등 여러 차례의 변화를 거쳤다.

○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보육원은 큰 시련에 부딪쳤다. 신부와 수녀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피난을 다녔는데,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고 마땅한 숙소도 구하기 어려웠다.

휴전 이후 보육원을 재정비하고 아이들을 모집하였는데 전쟁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이 상당수 있었다. 

1958년 용현동 분원을 확장하고, 1975년에는 본원에 있던 영아를 분원으로 옮기고 보육원 자체를 용현동 분원으로 통합하였다. 해성보육원 설립이후 지금까지 1만여 명이 넘는 아동이 이곳을 거쳤다고 한다.

○ 시 관계자는 “근대 보육이 시작된 도시 인천이 더 좋은 환경에서 아이들이 자라나는 것을 지원할 수 있는 중심적 역할을 해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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