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22.05.23.
최종편집 : 2022.5.22 일 22:44
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밀번호 찾기
> 뉴스 > 기획연재
     
<인천역사 되짚어 보기>대낮처럼 밤을 밝힌 인천 전기
2017년 04월 14일 (금) 09:36:32 남동뉴스 news@namdongnews.co.kr

   
▲ 인천전기 모습과 동아일보 1933년12월 8일자 관련 기사
 우리나라에 전기가 들어온 것은 1887년 3월 경복궁에 최초의 전등이 켜지고 1898년 한성전기회사가 설립되면서 시작됐다.

인천에서 전기 사업의 시작은 1905년 6월 각국 외국인이 모여 공동 출자한 인천전기주식회사가 시초이다. 주주 총인원 79명 중에서 일본인 18명, 서구인 13명, 청국인 8명이었다.

자본금 12만 5천원으로 설립된 이 회사는 1906년 인천이사청의 특허를 얻고 지금의 중구 송월동 2가 한국전력 인천지점 창고 자리에 발전소를 차렸다. 직류발전기 2대, 100㎾ 규모의 화력발전이었다.

인천전기가 영업을 개시한 것은 1906년 4월이었는데, 당시는 러일전쟁 이후의 호황기였기에 전등 수요도 폭증하였다. 1906년말 2,934개였던 등(燈)이 1907년에는 4,083개로 확장됐다.

하지만 1907년 몇 차례의 화재, 경기불황의 여파에 따른 전기료의 체납 등이 계속돼 1912년 7월 일한와사전기주식회사(日韓瓦斯電氣株式會社)에 22만 5천원에 매각됐다.

이후 일한와사전기주식회사는 1915년 경성전기주식회사로 변경되었고 1922년 7월에는 인천의 발전소를 폐지하고 서울 용산에서 인천으로 송전하는 체제를 구축했다.

하룻밤에 5차례나 전기가 나가는 사고가 빈발하는 등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고 사용가도 적었던 인천의 전기사업은 1933년에 이르러 그런대로 활성화 되어 1만7천여 가구에서 4만3천여 등(燈)을 사용했다. 주요 사용자는 정미업, 철공업, 인쇄업, 제분업, 제면업, 음료수 제조업 등이었다.

쌀 한되에 18전, 쇠고기 한근에 40전 하던 당시에 반야등(半夜燈) 16촉 1등 1개월 사용료가 2원, 종야등(終夜燈) 16촉 1등 1개월 사용료가 3원이나 되었는데, 1930년대 전기료는 서민들이 사용하기에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그에 따라 도전(盜電)이 빈번했다는 신문기사를 발견할 수 있다.

그 후 인천의 전기사업은 동면기를 거쳐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 중이던 1967~1971년에 이르러 부평내연발전소, 인천화력발전소, 경인에너지 등 3개 화력 발전소가 건설됐다.
 

남동뉴스의 다른기사 보기  
ⓒ 남동뉴스(http://www.namdong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구보건소,길병원과 지역사회 중심 ...
만수새마을금고, 중앙회 금고 평가...
개교 90년을 넘긴 만수초의 뜻깊...
인천병무지청, 서울사이버대와 복무...
인천시 환경보건센터, 길병원 검진...
남동구 청소노동자들, 구가 정년연...
간석3동 자율방범대,'컨' 박스서...
"경제도시 남동을~"이병래 구청장...
<포토>장수천변 남동둘레길 2코스...
"마스크와 꽃을~" 만수사회복지관...
신문사소개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저작권문의 | 구독신청 | 불편신고 | 제휴안내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  청소년보호정책
인천광역시 남동구 인주대로 846 (만수동) 주식회사 인천남동신문 (우)405-866 | TEL (032)461-2580 | FAX (032)462-7744
등록번호: 인천광역시 아01030 | 등록일 : 2009년 11월 19일 | 발행·편집인 : 안영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안영환
Copyright 2009 남동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namdon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