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물 드는 5월에
 김도현

그 어디서 얼마만큼 참았다가 이제서야 저리 콸콸 오는
가마른 목에 칠성사이다 붓듯 오는가

저기 물길 좀 봐라
논으로 물이 들어가네
물의 새끼, 물의 손자들을 올망졸망 거느리고
해방군같이 거침없이
총칼도 깃발도 없이 저 논을 다 점령하네
논은 엎드려 물을 받네

물을 받는, 저 논의 기쁨은 애써 영광의 기색을 드러내지 않는 것
출렁이며 까불지 않는 것
태연히 엎드려 제 등허리를 쓰다듬어주는 물의 손길을 서늘히 느끼는 것

부안 가는 직행버스 안에서 나도 좋아라
金萬傾 너른 들에 물이 든다고
누구한테 말해주어야 하나, 논이 물을 먹었다고
논물은 하늘한테도 구름한테도 물을 먹여주네
논둑한테도 경운기한테도 물을 먹여주네
방금 경운기 시동을 끄고 내린 그림자한테도,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누구한테 연락을 해야 하나
저것 좀 보라고, 나는 몰라라

논물 드는 5월
에내 몸이 저 물 위에 뜨니, 나 또한 물방개 아닌가
소금쟁이 아닌가

 
5월의 시를 제목으로 한 시들을 찾아 읽다가 이시를 감상한다. 안도현의 시는 산문적이고 서정적이면서 도발적이라 공감되고 좋다.

이번엔 다른 분의 시를 감상하고 싶었는데 다시 안도현의 시를 잡은 것을 보면 내가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이 시를 읽다가 봄날의 시골정경을 상상한다. 아니 추억한다.

지금쯤이면 아마도 논밭에는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계실 것이고 소 대신 경운기가 하품을 뿜고 있을 것이고 논두렁에는 파릇파릇 이파리들이 나올 것이다. 이런 5월의 논을 보고 있는 시인도 가슴 벅찬 감동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누구한테 연락을 해야 하나/저것 좀 보라고, 나는 몰라라/논물 드는 5월에/내 몸이 저 물 위에 뜨니, 나 또한 물방개 아닌가/소금쟁이 아닌가’ 시인은 만물의 소생을 보며 감동한 나머지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고 있다. 벌레로 전이되기까지 한다.

전쟁을 하듯 혁명을 일으키듯 온 땅들이 요동치는 5월이 좋다. 아픈 사람들은 파란 새순처럼 벌떡 일어나야 할 것이고 우울한 사람들은 가슴 가득 꽃 같은 기쁨으로 채워야 할 시간이다.

시를 읽다가 만물의 생동감을 직접 만지고 싶어 문을 박차고 들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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