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시련을 극복하고

뒤에 서 있던 비류와 대소 신하들 역시 소서노어하라를 따라 절을 올렸다. 제관(祭官)이 큰 소리로 숫자를 세고 북을 울리자 사람들은 일제히 엎드렸다 일어나기를 계속하였다. 제사는 새벽이 지나 동이 터올 즈음까지 이어졌다.

하늘이 소서노어하라의 기원을 알아차렸는지 풍랑도 일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았다. 소서노어하라의 대선단이 마한국의 최북단 지역에 위치한 낙랑국(樂浪國)의 인접 해안에 이르자 식수가 바닥이 났다. 소서노어하라는 오백 명의 장정을 뽑아 별동대를 조직하여 황금덩이를 주고 육지로 파견시켰다.

“저기, 이상한 사람들이 온다.”
해변을 경계하던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너희들은 누구냐?”
“우리는 소서노어하라의 신하들입니다. 남삼한의 마한으로 가던 중 식수가 떨어졌습니다. 돈을 드릴 테니 물 좀 주십시오.”
“여봐라, 이자들의 행색과 태도가 이상하다. 모두 잡아서 데리고 가자.”
“이보시오. 저기 바다 위에 대선단이 보이지 않소? 우리가 잡혀간 사실을 알면 저 배안에 있는 수천 명의 군사들이 우리를 구하기 위하여 상륙할 것입니다. 그러니 무모한 행동은 하지 마시오.”

소서노어하라가 보낸 병사가 바다를 가리키자 낙랑국 병사들은 본체만체하고 소서노어하라 군사들을 잡아갔다.

“너희들은 누구이며, 지금 어디로 가는 중이냐?”
낙랑국 군관인 듯한 자가 거드름을 피우며 물었다.
“저희들은 소서노어하라를 모시고 남삼한의 마한국으로 가고 있는 중인데 그만 식수가 바닥나 물을 사러왔습니다.”
“뭐라, 물을 사겠다고? 그래 몇 명이 먹을 물이냐? 몇 통이나 사려고?”
“네, 사람 수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물은 삼천 통 정도 사려고 합니다.”
“삼천 통 씩이나? 험, 우리 낙랑국은 물 한 통에 만 냥을 받는다.”
“네에? 물 한 통에 만 냥이라고요?”
“이놈이 귀가 먹었나? 그래, 물 한 통에 만 냥이다. 삼천만 냥 준비해 왔느냐?”
“이보시오. 물 한 통에 한 냥이면 충분하거늘 만 냥이라니요?”
“허어, 이놈 봐라. 사기 싫으면 그만 두거라. 그리고 네놈들이 우리 낙랑국의 허락도 없이 어찌 상륙하였더냐? 너희는 법도를 모르느냐?”

낙랑국 군관은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이틈에 한몫 단단히 챙기려는 속셈 같았다. 말이 통하지 않자 소서노어하라의 별동대는 낙랑국을 밟은 대가로 500냥을 치르고 되돌아오고 말았다.

“뭐라고, 물 한 통에 만 냥을 달라고? 그 군관놈이 미쳤구나. 내가 가서 그놈 목을 따고 물을 가져오겠다. 별동대는 병장기를 준비하고 나를 따르라.”

비류는 화를 내며 소리쳤다.
“비류야, 안 된다.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우리는 충분히 예견하였다. 며칠을 참아보자. 물이 없어 사람이 죽기야 하겠느냐. 다행이 약간의 물이 있으니 밥할 때 쓰는 물 이외에는 아껴야 한다. 생쌀을 먹을 순 없지 않느냐?”
“네, 어머니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마한 우체모탁국 미추홀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소서노어하라의 대선단은 식수가 거의 바닥난 상태에서 남하할 수밖에 없었다. 후미 선단 50여 척에 탄 남녀 수천 명이 물이 부족하자 불편을 호소하였다. 이틀이 지나자 식수가 아주 바닥이 나고 말았다. 백성들은 물을 달라고 외쳤고 소서노어하라와 관리들은 당황하기 시작하였다.

“비류야 어찌하면 좋으냐? 저러다 폭동이라도 일어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바닷물을 식수로 쓸 수도 없으니 이일을 어찌할꼬….”
“어머니, 무슨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아요. 앞으로 일곱 여덟 번 밤낮이 지나야 미추홀에 도착할 것 같은데요.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로 큰 사단이 날 것 같습니다. 제가 밤을 이용하여 별동대를 이끌고 상륙하여 물을 구해보겠습니다. 허락하여 주세요.”
“조심해야 한다. 이번에는 병사와 장정 등 천 명을 이끌고 가거라. 오백 명은 전투 준비를 시켜라. 만약에 이국의 병사들과 마주치면 전투를 피할 수 없을 것이야.”
“네에. 그리하겠습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었다. 식량도 점점 바닥을 보이자 소서노어하라는 애가 타기 시작하였다. 애초에 10,000명분의 식량과 식수의 수량을 잘못 계산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생각 이상으로 바닷길은 멀고 험난하였다.

비류는 1000명의 병사를 이끌고 깊은 밤에 육지에 상륙하기 전에 온조에게 전서구를 날렸다. 그러나 이틀이 지나도록 답신이 오지 않았다. 물이 부족한 배안의 사정은 아수라장이나 다름없었다. 비도 내리지 않았다. 비가 내리면 빗물이라도 받아 식수로 쓸 수 있지만 야속하게도 비는 내리지 않고 바람만 세차게 불었다. 온조로부터 소식이 없자 비류는 상륙을 강행하기로 하였다. 더 이상지체하면 폭동이라도 일어날 상황이었다.

“자, 나를 따르라.”
구름이 밤하늘을 뒤덮어 밤기운이 음산했다. 천여 명의 별동대는 소리를 죽여 가며 어딘지 모를 육지에 상륙을 시도하였다. 멀리 민가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기는 하였지만 해변을 지키는 병사나 사람은 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별동대가 불빛을 향해 가고 있을 때 갑자기 호각소리와 함께 섬광(閃光)이 여기저기에서 번쩍거리며 함성이 들렸다. 부지불식간의 일이라 비류와 별동대는 우왕좌왕하였다.

“저놈들을 한 놈도 놓치지 말고 죽여라.”
어둠속에서 군관의 우렁찬 목소리가 별동대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12> 목지국의 야습

“전사들은 앞장서라.”
비류의 명령에 전투병사 500여 명이 앞장섰다. 그러나 정체를 모르는 군사들이 쏘아대는 불화살을 맞고 대부분의 비류 수하들은 순식간에 전사하고 말았다.

“빨리, 배로 도망쳐라.”
심각한 상황을 눈치 챈 비류는 퇴각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불화살은 밤하늘을 환하게 밝히며, 바닷가로 도망치는 비류 일행을 향해 날아들었다.

“아아, 하늘이 우리를 버리는가 보다.”
비류가 바닷가로 도망치며 뒤를 돌아보니 겨우 10여 명의 장정들이 헐떡거리며 따르고 있었다.
“저놈들은 살려 보내지 마라.”
적 군관의 명령이 귓가를 스쳤다.
윽, 윽.
불화살 몇 대가 날아들더니 비류를 뒤따르던 장정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 떨어졌다.
“아아, 하늘이시여, 이 비류를 살려주소서.”

비류가 겨우 도망쳐 소서노어하라가 대기하고 있는 배에 올랐을 때 뒤따르던 장정은 겨우 한 명 뿐이었다. 1000여 명의 병사와 장정들이 거의 전사하고 말았다. 너무나 참담한 결과에 소서노어하라와 대신들은 충격을 받고 할 말을 잃었다.

소서노어하라는 급히 뱃머리를 돌려 먼 바닷가로 나가라고 명령하였다. 비류가 이끄는 별동대 일천 명을 순식간에 사살한 집단은 마한의 목지국 병사들이었다.

“아아, 으흐흐 흐흑…, 우리 군사와 장정들을 죽인 자들이 누구더냐? 그들이 우리 어하라국과 무 슨 원한이 있기에 연유를 들어도 보지 않고 나의 병사들을 죽였단 말이더냐? 내 반드시, 반드시 그들의 정체를 밝혀내고 철저히 응징하리라. 철저하게….”

소서노어하라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울부짖었다.
“어머니, 소자 살아 돌아와 송구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소자가 치밀하지 못해 이 같은 불상사가 일어났습니다. 소자를 벌하여 주십시오.”

“어하라, 이번일은 비류왕자님에게 죄가 없습니다. 저자들은 마한 오십 사개 소국 중 한 소국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이미 우리가 접근할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소신이 판단하기에는 사흘 전 낙랑국 군사들과 마찰이 있었을 때 낙랑국에서 이 지역을 통치하는 목지국의 신지(臣智)나 견지(遣支) 혹은 험측(險側)에게 정보를 알려주어 우리 병사들과 장정들이 순식간에 당한 것이 분명하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달도 없는 이 야심한 시각에 저들이 어찌 우리의 동태를 알 수 있겠사옵니까.”
대신 중 한 사람이 소서노어하라에게 고하였다.

“비류는 듣거라.”
“예, 어머님. 하명하소서.”
“장차, 우리가 나라를 세우거든 오늘의 일을 잊지 말고 반드시 목지국을 응징해야 한다. 물론 내가 앞장서서 이 철천지원수들을 모두 죽일 테지만 내가 못하면 너와 온조가 원수를 갚아야 한다. 알겠느냐.”
“어머니, 소자 반드시 오늘 일을 기억하였다가 꼭 원수를 갚겠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온조에게서 소식이 없더냐?”
“어머니, 온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듯 합니다.”
“일이라고?”
“전쟁터에서 빠른 속도로 소식을 주고받는 수단인 비둘기가 오지 않는 이유는 온조에게 무슨 사단이 났거나 비둘기를 누군가 잡아 가로챘을 경우 소식이 단절되옵니다.”
‘아아, 큰일이다. 온조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되는데…, 이일을 어쩐다.’

“비류야, 비둘기를 다시 온조에게 보내거라. 이곳의 긴박한 상황을 빨리 전하거라. 온조가 걱정이 된다.”
“예, 어머니. 다시 전서구를 날리겠습니다.”
소서노어하라는 원통한 분루(憤淚)가 마르기도 전에 온조를 걱정해야 했다. 남행 선단(船團)은 다시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채 남쪽으로 항해를 시작하였다. 물을 구하러 나갔던 병사들과 장정들이 몰살당하자 뒤따르며, 불평불만을 토로하던 사람들은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인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이틀을 더 남쪽으로 항해하자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파도가 배를 통째로 집어 삼킬 듯 일었다.
“닻을 내리고 깃발을 모두 거두어라. 배에 바닷물이 차면 빨리 물을 퍼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배가 무거워져 침몰한다.”
“비류와 대신들은 백성들의 안전에 철저를 기하고 행여 바람에 날려 바다에 빠지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
“어하라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황해의 바다는 점점 더 사나워졌다. 배가 좌우로 기우뚱거리자 사람들은 비명을 질러댔다. 대부분의 일반 백성들은 배를 타본 경험이 없었다. 물이 없어 수일째 목이 말라 고통 받는 사람들은 사나운 풍랑을 만나 배멀미를 하자 헛구역질을 해댔다.

“아이고 사람 죽겠네. 어하라님, 우리를 살려주세요. 속이 뒤집혀 죽을 지경입니다. 아이고, 사람 죽네….”
“어하라님, 저 좀 살려주세요. 먹은 것도 없는데 자꾸만 헛구역질을 합니다. 눈앞이 캄캄하여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요. 이러다 죽을것 같아요. 살려주세요.”
“어하라님, 살려주세요. 속이 뒤집혔어요. 아악, 컥, 컥.”

후미를 따르던 50여 척의 백성들은 소서노어하라를 부르며, 아우성이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소서노어하라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기도를 하였다.

“천지신명이시여, 마고할미여, 살려주소서. 저희 어하라국 백성들은 남삼한에 터전을 잡고 천 년 대제국을 건설해야 합니다. 그런데 육지를 밟아보지도 못하고 바다에서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부디, 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소서노어하라가 간절히 기도하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풍랑은 더욱 세차게 불어댔다.
“앗, 배가 부딪힌다. 배와 배 사이 간격을 유지하라.”

큰 파도가 칠 때마다 배끼리 부딪히면서 배 머리 부분이 깨지거나 중간에 구멍이 나기도 하였다. 집채만 한 풍랑이 칠 때 배가 금방이라도 뒤집힐 것 같았다. 100여 척의 배에 탄 군사들이나 일반백성들 모두 넋이 나가 그야말로 아비규환을 방불케 했다.

“앗, 배가 침몰한다. 모두 바다로 뛰어내려라. 빨리 뛰어내려야 산다.”
“어하라, 어하라, 살려주세요.”
“저 쪽 배도 침몰한다.”
“사람 살려. 어하라, 살려주세요.”
대선단이 한데 엉켜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풍랑에 따라 춤을 추었다. 갑자기 태산만한 파도가 칠 때면 배 두 세 척이 한쪽으로 뒤집혀 바다 속으로 침몰하기도 하였다.

“아아, 마고신이시여, 천지신명이시여. 저희를 버리시나이까. 정녕 저희 어하라국을 버리실 작정이십니까? 환웅님의 부하이신 풍백(風伯), 우사(雨師)님, 이제 노여움을 거두어 주소서. 저희를 살려주소서. 으흐흐 흐흐….”
“어머니, 위험합니다. 배 안으로 들어가세요.”
춤추는 뱃머리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울부짖는 소서노어라하를 비류가 만류하였지만 듣지 않았다.
“내버려 둬라. 모든 것이 이 어미가 잘못하여 이런 일이 일어났다. 내버려둬. 배 여러 척이 바다에 침몰하였다. 백성 수백 명이 모두 물귀신이 되었단 말이다. 아흐, 흐흐흐흐….”

“어머니, 어머니의 탓이 아닙니다. 소자의 말을 들어주세요. 이러시다 바다에 떨어지십니다.”
“나는 바다에 떨어져도 좋다. 나의 부덕으로 많은 백성들이 바다에 빠져 죽었는데, 내가 살아서 무엇을 한단 말이냐. 으흐흐흐흐흐…”
“아아, 어머니. 어머니. 제발. 아흑, 하늘님, 살려주세요.”
비류는 바닷물에 흠뻑 젖어 몸부림치는 어머니 소서노어하라를 꼭 부둥켜안고 함께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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