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낭중지추

이준경이 처음에 이순신이라는 청년을 데릴사윗감으로 천거했을 때 탐탁지 않았지만 그동안 자신이 알아본 내용과 집사가 파악하여 고한 내용이 일치하고 나름대로 청년 이순신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정보도 상당히 수집하여 여러모로 분석도 해보았다.

훤칠한 풍채에 마을 청장년들도 모두 청년 이순신을 따르며 존경하고, 심지어 백암 고을뿐만 아니라 근동에서도 청년 이순신과 그의 형제들에 대한 칭찬이 자자했다.

서당을 열어 마을 청장년들을 가르치고 시간이 나면 동네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힘들고 억울한 일을 처리해 주기도 하면서 형제들 사이에 우애가 돈독하고 또한 효자이며, 마을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겸손한 청년들로 평판이 좋았다.

“방진이 이제야 그 청년의 진가를 알아보았나 보구나. 하하하하......, 벗에게서 초대장을 받았으니 내 모른 체할 수야 없지. 마침 요즘 조정에 특별한 일도 없으니 내 친히 아산으로 내려가 보지. 험-.”
이준경은 방진의 편지를 받고 기분이 좋았다.

자신에게 과년한 여식이 있다면 청년 이순신을 사위로 삼고 싶었다. 오랜 벗, 방진의 마음이 움직였으니 머지않아 상주 방씨와 덕수이씨 가문에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확신하였다. 한 나라의 재상이 움직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방으로 행차하게 되면 지방관아의 수령들이 떼로 몰려와 뇌물을 안기고 아부를 하며 한양으로 갈 수 있도록 요청하는 바람에 이준경은 노복奴僕 한 명만 데리고 아산으로 떠났다.

늦봄이라 날씨도 화창하고 만산에 녹음이 점점 짙어가고 있었다. 이준경이 아산에 내려와 방진의 집으로 향하기 전에 주막에 들러 청년 이순신에 대한 평판을 들어 보기로 하였다.

“이보오! 주모, 여기 국밥하고 탁배기 좀 주시구려.”
영의정 이준경이 아무리 자신의 신분을 감추려고 하였지만 선골仙骨에서 풍기는 인상은 감출 수 없었다. 주모는 예사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리고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주막에서 삼삼오오 탁주를 마시던 사내들이 이준경을 훔쳐보며, 자기들 끼리 귓속말로 수군거리기도 하였다. 국밥을 들고 탁배기로 요기를 끝낸 이준경이 주모를 불렀다.

“나으리, 쇤네에게 무슨 하문하실 일이라도 있으신 지유?”
주모는 두 손을 비벼가며 연신 고개를 굽실거렸다.
“주모, 혹시 백암리에 사는 이순신이라는 이름을 들어 보시었소?”

“하이고, 이 근동에서 이순신이라는 이름을 모르면 왜놈 첩자지유. 선풍도골에 학식은 공자와 맹자님을 합쳐 놓았으며, 인품은 백암뿐만 아니라 아산 고을에서도 칭찬이 자자합니다유.

그뿐만 아니라 그분 형제들 또한 평생 땅만 파먹고 사는 무지렁이 촌것들에게 눈이 뜨이고 귀가 열리게 해주셨읍죠. 쇤네가 딸이 있으면 사위로 삼으련만 호호, 호호호…….”
주모는 간드러지게 웃으며 이준경의 눈치를 살폈다.

“주모, 여기 탁배기 한잔 하고 안주도 괜찮은 거로 좀 주시구려.”
“하이고, 예예. 나으리 분부대로 얼른 내오겠습니다유. 호호, 호호호…….”
주모가 퉁퉁한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주방으로 달려갔다.

‘음, 내가 사람 보는 눈은 확실해. 비록 몇 년의 세월이 흐르긴 했어도 그 청년, 아니 여해는 틀림없이 크게 될 인물이야. 방진이 만약 여해를 사위로 얻으면 대대손손 가문에 큰 영광이 있을 것이야. 내 이번에는 반드시 두 집안 간에 인연을 맺어줘야겠어.

방진이 비록 전라도 보성지방 군수를 지냈지만 결코 군수 직분에 만족할 사람이 아니야. 방진이 조선 최고의 명궁이며 그 휘하에 많은 청년들이 있는데 여해를 데릴사위로 얻어서 잘만 조련한다면 장차 이 조선을 구할 인물이 될 수 있을 거야. 흠흠-’
이준경은 탁주를 순식간에 비우고 뱀골로 향했다.

“얘야, 네 나이로 봐서 너도 이제 장가를 들어야 할 텐데. 어디 마땅한 사람이라도 있는 게니?”
변씨卞氏 부인은 두 형들이 이미 장가를 들어 살림을 났지만 장성한 나이임에도 공부에만 매달리는 셋째 아들 순신이 안쓰러웠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활달하고 총기가 맑아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아들었으며, 자존심이 세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의 아들이었다. 위로 두 형이 있지만 셋째만큼 강단과 포용력이 부족했다.

슬하에 아들 넷에 딸 하나를 둔 변씨지만 마음에는 셋째 아들이 언젠가는 가문을 일으키고 장차 나라를 위하여 크게 쓰일 인물이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이순신의 아버지도 네 아들 중 셋째인 순신을 가장 총애하면서도 아들들 간에 불화가 일까봐 겉으로는 함구하고 있었다. 한양 마르내골에 있었다면 벌써 한양에서 내로라하는 가문의 규수를 맞아 장가를 보냈을 터였지만 가세가 받쳐주지 못하는 처지라 이정의 마음은 아팠다.

“어머니, 소자는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장가는 천천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마음에 둔 규수는 아직 없습니다. 어딘가에 인연이 있겠지요. 다만 그 시기가 아직 도래하지 않아 인연이 이어지지 못했을 뿐입니다. 짚신도 다 짝이 있다고 하니 언젠가 나타날 겁니다.”
청년 이순신은 어머니 변씨에게 자신의 뜻을 내비추면서 한편으로 방진의 무남독녀 연꽃아씨를 떠올렸다.

“우리 가문이 비록 예전 같지는 못하지만 너 하나 장가보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란다. 이 애비도 네가 형들처럼 어서 짝을 찾았으면 좋겠구나. 어험-”
아버지 이정은 헛기침을 하며 마을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는 셋째아들이 세월만 허비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였다.

이정은 몇 해 전부터 과거를 보라고 하였지만 청년 순신은 어쩐 일인지 자꾸만 미루기만 하였다. 물론 가문에서 과거급제를 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양의 내로라하는 가문이나 조정에서 높은 벼슬을 하는 가문에서 꾸준히 과거급제자를 배출하는 터여서 경제적으로 부담을 느끼는 가문에서는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과거는 한번 시험에 붙었다고 다 되는 일이 아니었다. 어릴 때 서당에서 유학의 초보적인 지식을 배우고 십 오륙 세 이전에 한양은 사학四學에서 지방은 향교에서 공부하여 몇 년 뒤에 과거의 소과小科에 응시하여 합격하면 성균관에 입학하는 자격을 얻게 된다.

과거의 시험절차를 살펴보면, 먼저 문과는 소과와 대과로 크게 구별되었다. 소과는 다시 초시와 복시의 2단계로 대과大科는 초시, 복시, 전시의 3단계로 나뉘어 있었다.

따라서 3년마다 정기적으로 시행하던 식년시式年試를 통과하여 다섯 단계를 모두 거쳐야 하기 때문에 과거에서 장원급제를 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온 가족이 총력전을 펼쳐야 과거급제생 한명이 나올까 말까할 정도로 고된 일이었다. 장기적으로 상당한 경제적 뒷받침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청년 이순신은 현재 처한 집안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고, 또한 과거 시험에서 남의 글을 표절하고 책을 지니고 과거장에 들어가거나 시험문제를 미리 알아내는 등, 온갖 부정행위가 공공연하게 성행하고 있음도 익히 알고 있었다. 뇌물과 정실情實, 문벌의 고하高下, 당파의 소속에 따라 급제와 낙제가 결정되는 일 또한 비일비재 하였다.

이 같은 현실에 청년 이순신은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수재라 하더라도 문벌의 배경이 없거나 경제적 뒷받침이 미미할 경우 과거에서 장원급제하여 입신양명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조정은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정쟁政爭이 끊일 날이 없었다. 암담한 현실 속에서 한양에서 지방 아산으로 내려온 것 자체가 청년 이순신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한양에서 지방으로의 전출은 그만큼 출세와 권력에서 멀어지는 것을 의미하였다. 아버지 이정 역시 아들들의 출세를 위해서는 지방 보다 당연히 한양에 거주하는 일이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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