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연꽃아씨의 전전반측

“너도 잘 알다시피 지금 조정에서 권세를 잡고 있는 고관대작 중에도 오랫동안 처가살이한 분들이 많단다. 시류가 그러니 데릴사위가 큰 흠이 아니다.

그러나 퍽 내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네가 출세하는데 가능하면 뒤에 받쳐 줄 만한 힘이 있으면 좋지.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빌 것 아니겠니. 험험-”
이정은 곰방대를 쪽쪽 빨아대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애써 불편한 심기를 감추고 있었다.

“얘야, 아버지 말씀대로 데릴사위는 크게 흠될 게 아니야. 나라님의 사위인 부마도 있잖니? 따지고 보면 부마도 데릴사위나 마찬가지지 않니?”
어머니 변씨는 남편의 의견을 따라야 하기에 마지못해 한 마디 하고 아들이 싫다는 말을 꺼낼까봐 가슴을 졸였다.

아산뿐만 아니라 한양에서 조차 방진의 사위가 되기 위해 많은 양반댁 자제들이 줄을 서고 있다는 소문도 있는 터였다. 또한 방진의 문하생으로 장차 무과에 응시하고자 하는 청년들도 상당히 많은데 그들 역시 스승인 방진에게 잘 보이려고 서로 암투를 벌이고 있었다.

“아버님, 어머님, 소자 비록 아직 세상에 이렇다 할 공명은 없으나 장차 대과大科에서 급제하여 가문을 빛내고자 합니다. 소자, 방대감댁 사위가 되는 일에는 호감을 가지고 있으나, 데릴사위는 천부당만부당합니다. 그러니 이일은 없던 것으로 해주세요. 소자, 혼인이 급하지 않습니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아들이 방에서 나가자 아버지 이정과 변씨 부인은 넋이 나간 듯 한동안 멍하니 말문을 열지 못했다.

“험험-”
이정은 애꿎은 곰방대만 사정없이 재떨이에 내리쳤다.
“에구, 내 그럴 줄 알았지. 저 애가 비록 내 배에서 나왔지만, 조선 천지에 저 애처럼 기백이 당당한 헌헌장부가 어디 있으려고.”
어머니 변씨는 아들이 거절하자 안타까움을 어찌하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

“이 일을 어쩐다? 동고 대감과 방대감이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텐데......”
이순신의 아버지는 눈앞이 캄캄했다. 비록 자신이 낳은 자식이지만 떳떳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결코 타협하지 않는 성격에 이정은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데릴사위자리를 놓친다는 게 아까웠다.

이순신의 두 형들은 아우가 방대감댁 청혼을 거절하였다는 말에 너무 아쉽고 안타까운 나머지 자신들이 나서서 아우를 설득해 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아우의 곧고 강직한 성격을 잘 아는지라 한번 아니라고 하면 그 누구의 말이라도 절대 듣지 않는 아우의 마음을 어떻게 돌릴까 골몰했다.

“아우야, 내가 판단하기에는 그 댁 어른이 영의정 대감과 동문수학한 사이라 친분도 깊고 아우가 그 댁 사위가 된다면 출세에 크게 도움이 될 거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렴. 우리 사형제 중에서 아우라도 빨리 과거에 급제해 조정에 출사하여 조상님들 면목을 세워드려야 하잖니?”
큰형인 희신이 순신의 마음을 돌리려 하였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그래, 아우야. 형님 말씀도 일리가 있어. 우리가 오대조 이변 할아버지나 삼대조 이거 할아버지처럼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조정에 힘 있는 사람과 인맥을 쌓는 것도 중요하고 권세 있는 인물들에게 선을 대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무조건 싫다고만 할 것이 아니니 재고해 보거라”
둘째형 요신도 순신의 마음을 돌리기 위하여 애를 썼지만 순신은 요지부동이었다.

“순신형님, 두 분 형님 말씀이 맞는 거 같아요. 이백록 할아버지 때부터 우리 가문은 변변한 벼슬을 하지 못해 지금처럼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우리 오남매가 초야에 묻혀 살아야 하는 거 잘 알잖아요. 이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어쩌면 하늘이 다시 한 번 가문을 일으켜 세우라고 준 기회일지도 몰라요. 비록 권문세가 힘을 빌려 가문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어서 떳떳하지는 않지만 지금 이런저런 거 생각할 때가 아니라고 봅니다. 우선 가문부터 일으켜 세우고 볼 일 입니다.”

이순신의 아우 우신도 역시 침을 튀겨가며 형 순신을 설득하였다. 그러나 순신은 형제들의 말에 불쾌한 기색을 보일 뿐 이렇다 할 대꾸조차 없었다.

"오라버니, 저도 오라버니가 연화 언니랑 부부의 연을 맺기 바라요. 제가 몇 번 그 언니를 본적이 있는데 참으로 참하고 똑똑하며 어디 한군데 흠잡을 데가 없어 보였어요. 그 언니가 우리 집안에 들어오면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오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오라버니, 그 댁에 데릴사위로 들어간다고 주변에서 뭐라고 욕할 사람 없어요. 오히려 오라버니를 부러워할 거예요. 그 언니 인품으로 보거나 행동거지로 볼 때 오라버니와 정말로 잘 어울릴 거라고 봐요. 방대감님에게는 그 언니 한 사람 밖에 없으니, 오라버니가 그 댁 데릴사위가 되어 조카들이 태어나고 오라버니가 잘 되면 그 집 모든 것이 다 오라버니 거가 되는 거 아닌가요?"
이순신은 여동생의 당돌한 말에도 묵묵부답이었다.

제일 애가 타는 것은 어머니 변씨였다. 지금의 살림으로 네 아들들 과거 공부를 뒷받침 한다는 일은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기는 하나 셋째 아들이 덕수이씨 가문에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오는 큰 복을 제 발로 걷어 차버리는 것 같아 애가 타기도 했다.

혼사문제로 집안이 침묵에 쌓였다. 이순신이 방진의 혼인조건을 받아 들였다면 잔칫집 분위기가 되어 집안이 활기에 넘칠 것이었다.

‘아니야, 나는 내 힘으로 당당하게 과거에 합격하여 조정에 출사할 거야. 데릴사위로 들어간다는 것은 내 자신이 허락하지 않아. 오로지 내 힘으로 보란 듯이 출세를 할 거라고.

그러나 내 욕심만 낼 형편도 아니니 참으로 한탄스럽구나. 우리 네 형제가 모두 과거에 급제하려면 지금의 부모님 힘으로는 너무 힘에 부치는 일이야. 그렇다고 사내대장부로 태어나 남의 집 더부살이를 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너무 상하는 일이야.

연꽃아씨를 생각하면 당장 월곡 뱀골로 달려가 데릴사위로 들어가고 싶지만 그것은 어쩌면 조상들을 욕보이는 일일지도 몰라. 아아, 데릴사위 조건만 아니라면 얼마나 좋을꼬. 그날 밤 몰래 엿본 연꽃아씨를 반려자로 맞는다면 큰 행운일 텐데......’
청년 이순신은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렸다.

날이 새면 아버지는 방진대감에게 청혼에 응하지 않겠다는 답신을 줄 것이고, 그리하면 영영 연꽃 아씨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 청년 이순신은 가슴을 쳐야 했다.

“뭐라고? 그 댁에서 우리 청혼을 거절했다고? 그게 사실이냐? 어디 내놔도 빠지는 데가 없는 선녀 같은 내 딸을 마다하였단 말이냐? 그 댁이 제정신인가?”

아침 일찍 이정이 보낸 사람으로부터 기별을 받은 방진은 크게 낙담하였다. 방진뿐만 아니라 연꽃아씨의 어머니 홍씨는 펄펄 뛰며 별 볼일 없는 가문에서 저절로 굴러들어온 복덩이를 찼다며 노발대발하였다.

“아아, 천지신명님. 어찌, 어찌 이 소녀의 간절한 소망을 이리 짓밟을 수 있단 말입니까? 소녀 무수한 날 밤을 지새우며 빌고 또 빌었건만 이리 허망하게 끝나다니요? 소녀는 이미 마음으로 정한 바 있습니다. 선랑님께서 저를 싫다하시면 소녀는 차라리, 차라리 이승의 모든 인연을 끊어버리겠습니다.

당장 저에게 달려올 줄 알았던 선랑님께서 저를 마다하였으니 소녀는 이제 아무 희망이 없습니다. 어쩌다 그 분을 한번 뵙고 소녀가 마음을 빼앗겼는지 하늘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아흑, 흐흐흐…….”

아지로 부터 소식을 들은 연꽃아씨는 쏟아져 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연꽃아씨가 울고 있다는 말에 방진과 홍씨 부인은 연꽃아씨에게 달려왔다. 딸의 흐느끼는 광경을 보자 방진은 가슴이 미어졌고, 홍씨 부인은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여태껏 심한 말 한번 하지 않고 금지옥엽 키운 화초 같은 딸이었다. 아산에서 내로라하는 권세를 부리던 방진이지만 청년 이순신의 청혼 거절에 집안이 초상집처럼 변하자 방진은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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