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한 길
 명서영

집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찾아

어느 시골 동네를 헤맨다

뼈골까지 차가운  어둠

리허설이 없는 생은 이토록 낯선데

 

깊은 밤 한 가닥 마을길이

오락가락 불빛을 실어나른다

 

홀로 잠 이루지 못한 길

저 또한 길 찾아

얼마나 많은 번지와 지도를 그려 넣으며

자기 안에 샛길을 만들었을까

 

몇 천 번이나  큰 길에  밀려 후진하고 추월당하며

이정표 없는 길을 달려 왔을까

한 발자국도 보이지 않는 칠흑 속 가만히 앉자

우왕좌왕했던 들녘도 가라앉는다

 

까맣게 젖은 산등성에 잇닿아 있는 뽀얀 하늘

여물지 못한  행로 위로

빛과 어둠이 한줄기로 서 있다

멀리 경인고속도로가 꼬리를 문 별똥별을 쏟는다

시 '지각한 길'은  집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찾아 어느 시골 동네를 헤매면서 지나온 삶을 반추하는 내용의 시다. 여기서도 화자는 자신의 삶이 결코 성공적인 화려한 삶이 아닌, ‘몇 천 번이나 큰 길에 밀려 후진하고 추월당하며’ 살아온 뼈아픈 삶이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나름으로는 홀로 잠을 이루지 못하며 ‘많은 번지와 지도를 그려 넣으며’ ‘자기 안에 샛길’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이정표 없는 길’을 달려온 삶이었고 칠흑의 어둠 속을 우황좌황 했던 삶이었음을 화자는 거의 자조적인 어조로 말하고 있다.

여기서 ‘번지와 지도’는 인생행로에서 시적 자아가 성취하고자 했던 욕망의 표상으로 읽혀진다. 성취되지 못한 욕망은 ‘뼈골까지 차가운 어둠’과 같은 결핍의 자의식을 낳는다.

문명의 상징인 경인고속도로, 그 선상에는 속도와 경쟁으로 핍박해진 현대인의 정신 풍경이 있다. 문명의 이면에 드리워진 현대 도시인의 어두운 의식, 그 그늘을  이 시는 보여주고 있다.

 명서영 시인의 시적 관심은 부, 권력 같은 성공적인 삶이나 윤리적인 깨달음의 경구, 관념적 인생론에 있지 않다. 오히려 중심부에서 밀려난 외곽지대나 시대로부터 소외된, 상처 받은 자의 의식에 미세한 앵글을 맞춘다.

일견 화려해 보이는 물질문명의 뒷길에서 신음하고 있는 소시민의 그늘진 삶과 아픈 의식을 시적으로 견인해내고 있다. 양지의 삶보다는 음지의 삶 쪽에 더 시적 관심을 보인다.
 *최휘웅 시인, 평론가 (문학과 사상편집인, 전남성여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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