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티고
2018년도 신춘문예 전북도민일보 당선작 박은영의 시

빈티지 구제옷가게, 물 빠진 청바지들이 행거에 걸려 있다 
목숨보다 질긴 허물들
한때, 저 하의 속에는 살 연한 애벌레가 살았다 
세상 모든 얼룩은 블루보다 옅은 색 
짙푸른 배경을 가진 외침은 닳지 않았다 
통 좁은 골목에서 걷어차이고 뒹굴고 밟힐 때면 
멍드는 건 속살이었다
사랑과 명예와 이름을 잃고 돌아서던 밤과
태양을 좇아도 밝아오지 않던 정의와
기장이 길어 끌려가던 울분의 새벽을 블루 안쪽으로 감추고
질기게 버텨낸 것이다
인디고는 
인내와 견디고의 합성어라는 생각이 문득 들 때 애벌레들은 청춘의 옷을 벗어야 한다
질긴 허물을 찢고 맨살을 드러내는 
각선의 방식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대생들이 세상을 물들이며 흘러가는 저녁의 밑단 
빈티지가게는 
어둠을 늘려 찢어진 역사를 수선하고 
물 빠진 허물,그 속에 살았던 푸른 몸은 에덴의 동쪽으로 가고 있을까 
청바지 무릎이 주먹모양으로 튀어나와 있다 
한 시대를 개척한 흔적이다
*인디고: 청색염료.

 신춘문예에 당선된 시들을 읽다가 이 시도 재미가 있어서 골라보았다. 나이가 많아서인지 이시를 읽으니 어린 날 청바지를 좋아했던 시절이 아름답게 떠오른다.

이 시도 추억과 함께 시대의 아픔을 그리고 있지만 나는 그냥 추억으로 가볍게 읽고 싶다. 1980년대 광주사태와 전국 데모로 나라가 난리가 났을 때도 그 자체에 크게 관심도 없었던 나 같은 사람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전철 안에서 머리를 숙이고 가던 한 대학생 오빠가 전철이 서면 빠르게 벽에 무슨 글씨가 적힌 종이쪽지를 붙이고는 뛰어내리던 것을 자주 목격하였지만 그 대열에 끼고 싶지는 않았다.

나와 비슷한 시간을 보낸 누군가는 지난날이 부끄럽다고 했다. 자유를 위해 경제 부흥을 위해 싸우던 많은 깨어있는 의식자의 대열에 끼지 못하고 그저 풍경을 보듯 살아온 지난날이 부끄럽다고 했다.

그러나 모두 뛰어 나갈 수는 없는 일이고 모두 성격이 똑같을 수는 없기 때문에 나는 그냥 지난 시간을 받아들인다. 또한 지금도 잘못된 정치나 세상에 대하여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용기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안일하고 편한 곳을 찾는 내 삶을 탓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용기 있는 사람들을 존경은 한다. 그리고 용기를 낸 사람들이 이율배반적으로 지탄을 받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40살 된 여자 분께서 이런 글을 썼는데 오래된 노래를 리메이커한 것처럼 시원함이 있다.

이분은 아마도 과거의 역사를 거울삼아 현실과 미래를 아름답게 가꾸고 싶은 소박한 마음일 것이라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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