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호사다마(好事多魔)

 “부인, 잠시 누우세요. 방이 좀 누추하지만 그런대로 쉴만하오.”

“아니에요. 소첩보다 서방님이 더 피로해 보이세요.”

사내가 좀 깨끗한 이불을 골라 아랫목에 피고 공주를 눕게 했다.

“곧 국밥이 들어올 텐데…….”

“괜찮아요. 개의치 말고 국밥이 들어올 때 까지만 이라도 쉬시구려.”

“…….”

공주일행이 주막으로 들어오는 것을 유심히 바라보았던 텁수룩한 수염의 사내는 관아를 향해 뛰었다. 분명 수상한 자들이라고 판단한 사내는 관아에 고하여 만약에 조정에서 찾는 역적의 무리거나 산적들이라면 혹 상금이라도 탈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주모, 요즘 이곳 동태가 어떠우?”

“어떻다니요?”

“거 왜 있잖우? 한양 나라님 소식이나 역모 죄로 벌을 받은 사람들 말이우?”

“쉿!”

“…….”

“요즘도 매일같이 군사들이 모든 마을을 이잡듯 뒤지다 시피해요. 왜요? 댁들은 죄짓고 도망 다니는 사람들 아니지유?”

“죄를 짓다니? 우린 동학사에서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고 집에 가는 사람들인데 그간 저자거리 소식이 궁금해 묻는 거예요.”

“어휴. 이놈의 세상. 뻑 하면 사람들을 파리 잡듯 때려잡으니 맘 놓고 살 수 있어야지.”

‘아, 큰일이로다. 어서 이곳을 떠야겠구나.’

유모는 주막에 잘못 들렸다는 판단을 하였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자, 다 되었으니 상 좀 가져 가유. 두 분 주인님거 하고 댁의 것도 같은 상에 차렸우.”

“내 국밥은 여기서 먹을 테니 내려놔요.”

“뭐라고? 수상한 자들이 주막에 나타났다고? 거짓이 없으렷다.”

“소인이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리까. 이놈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요.”

“여봐라. 즉시 군사를 준비하라. 내 직접 수상한 자들을 잡아오겠다.”

옥천 현감은 밀고자의 말에 직접 군사를 대동하고 주막으로 향했다. 조정에서는 수시로 반역 잔당들을 소탕하라는 문서를 내려 보내 만일 반역 잔당을 잡는 자에게는 포상과 함께 한 계급 특진 시켜준다는 달콤한 유인책을 쓰고 있었다. 욕심 많은 현감은 바람처럼 주막을 향해 달려갔다.

“부인, 주막에서 먹는 음식이 어련하겠소. 어서 드시구려.”

“서방님도 드셔요.”

공주와 사내는 거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을 앞에 두고 서로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사내가 탁배기 한잔을 들이키고 수저를 잡자 공주도 수저를 들었다. 두 사람의 국밥 그릇이 반 쯤 비었을 때 였다.

“방에 있는 자들은 썩나와 호패를 보이거라.”

문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그만 사내는 간이 콩알만해졌다. 계유정난(癸酉靖難)이후 늘 숨어 살아온 탓에 사내는 그만 자신이 덫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부인, 이 소리는 우리 방 앞에서 나는 소리가 분명하지요?”

“네에, 그런 것 같아요. 서방님.”

'아아, 이 일을 어쩐다.'

“서방님, 침착하세요. 소첩이 나가보겠습니다.”

“아니오. 부인은 방에 계세요. 내 나가보리다.”

두 사람이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현감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렸다.

“어서 나오지 않고 무얼 하느냐? 강제로 잡아 끌어내기 전에 어서 나와 조사에 응하거라.”

더 이상 지체하다가는 여러 사람 앞에서 망신을 당할 것 같았다. 사내가 문을 열고 나가자 현감은 두 눈을 부라리며 사내를 노려보았다.

“여인도 있다고 들었소이다. 어서 나오도록 하시오.”

조금 전까지 반말을 하던 현감은 사내의 풍채와 도포에 갓을 정제한 모습을 보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늠름한 사내의 자태에 범상한 인물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나는 한양에서 온 사람이오. 잠시 일이 있어 처자와 함께 대구로 가던 길이요. 무슨 잘못이라도 있단 말이오?”

“이곳에 처음 들린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우리에게 조사를 받게 되어 있소. 그러니 호패를 보여주시오.”

“나는 호패를 잃어버려 한양을 떠나 올 때 다시 만들어 달라고 관아에 재발급 신청을 하였소이다.”

“그럼 임시 증명서라도 있을 거 아니오?”

“그것도 바삐 오느라 가져오지 못했소이다.”

“여봐라, 저자가 아무래도 수상하다. 저자와 일행을 관아로 끌고가라.”

“이보시오. 호패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함부로 선량한 백성을 잡아가는 법이 어디 있소?”

“잔말이 많다. 뭣들 하느냐. 어서 저 연놈들을 관아로 압송하라.”

‘아아, 이렇게 내 인생이 끝나는 것인가? 큰일이로다. 관아에 잡혀가면 나의 정체가 탄로나 나는 참형을 면치 못할 터인데. 나를 믿고 이곳 까지 따라온 저 두 여인은 어떻게 된단 말인가?’

“이보시오. 우리는 아무 죄도 없는데 왜 관아애 가야한단 말이오?”

공주가 소리를 질러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예전 같으면 감히 자신의 얼굴조차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 사람들이 자신과 남편을 잡아가려고 하는 상황을 보고 공주는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이 사람들에게 나의 신분을 밝힐까?’

“아기씨. 잠자코 계셔야해요.”

공주의 의중을 파악한 유모가 공주에게 인내를 요구했다. 유모의 말에 만약에 자신이 현감에게 조선의 공주라고 말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해보았다. 물론 현감은 정신병자라고 하면서 비웃거나 조롱거리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또한 곁에 있는 착한 남편은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크게 놀라거나 한 순간에 자신을 인애하던 마음이 싹 가실 수도 있을 것이다. 차라리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고 현감을 따라 관아로 잡혀가는 일이 어쩌면 더 이상적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아, 이대로 잡혀가면 어찌되나?‘

공주일행은 국밥을 밥도 들지 못하고 관아로 잡혀왔다. 현감은 관아 앞마당에 세 사람을 꿇어앉힌 뒤 즉시 국문을 시작하였다.

“너희들은 누구이며 어디서 오는 길이냐? 이실직고하지 않으면 물고를 내리라.”

“에구. 나리, 주인님과 우리 아기씨는 한양에서 오는 길이라고 했잖아요.”

“네년은 입 닥치고 있거라. 네놈이 어서 말해보거라.”

“내 이름은 김경창이오. 좀 전에 말했듯이 한양에서 내려와 급히 대구에 볼일이 있어가는 길이오. 어서 우리를 풀어주시오.”

사내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둘러댔다.

“네놈이 김경창인지 김개똥인지 내 어찌 알겠느냐. 네 신분을 말해주는 호패가 없거늘.”

“우리를 잡아두면 한양에 있는 부친께서 현감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오.”

사내가 큰소리 쳤다.

“네놈의 부친이 누구이며 무엇하는 자냐. 바른대로 대보거라. 나도 한양에서 나고 자라 한양에서 방귀께나 뀌는 자는 내 거의 다 알고 있느니라.”

“…….”

“네이놈, 어서 말해 보거라. 대답하지 못하면 네놈은 필시 큰 죄를 짓고 도망 다니는 놈이거나 역적의 잔당이 분명하다.”

‘아아, 큰일이로다. 하루 만에 달콤했던 인생이 막을 내리나보구나.’

“나리, 우리 서방님께서 하신 말씀은 하나도 틀림이 없사옵니다. 하오니 어서우리를 풀어 주세요.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해를 가하면 나중에 큰 변을 당하실겁니다.”

공주의 조용하고도 또렷한 말이 현감의 가슴을 철렁하게 하였다.

“네년이 감히 나에게 협박을 하는 거냐? 여봐라, 저년놈들의 몸을 수색해보거라.”

군졸들이 달려들어 사내와 공주 그리고 유모의 몸을 수색하였다.

“나리, 이자의 몸속에서 이게 나왔습니다.”

동학사를 떠나기 전 주지스님이 사내에게 건넸던 편지 봉투였다. 동학사를 떠나 멀리 갔을 때 열어보라고 했던 편지였다. 공주와 사내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아, 저 편지를 읽어보지도 못하고 빼앗기는구나. 도대체 저 편지 속에 무엇이 적혀있는 걸까?’

사내와 공주는 동시에 같은 생각을 하였다. 그 편지에는 자신들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내용이 적혀 있을 것 같았다. 사내의 품속에서 나온 편지 봉투를 뜯자 뿔로 된 호패 두 개와 편지가 나왔다. 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현감은 그만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 여봐라. 어서 저 분들을 풀어드리고 안으로 뫼시어라. 어서.”

‘으응? 아니 편지에 무슨 내용이 적혀 있기에 현감이 저리 벌벌 떨까?’

동시에 공주와 사내는 호기심어린 시선을 주고받았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소신이 큰 불경죄를 지었나이다.”

“아닙니다. 우리는 가는 길이 바쁜 사람들이오. 그냥 이대로 가던 길을 떠나도록 해주시오.”

“하오나, 소신이 불경하와.”

“아니오. 괜찮소이다. 우린 가던 길을 갈 테니. 어서 그 편지와 우리 짐을 내주시오.”

공주일행이 옥천관아를 나와 동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현감이 읽고 갑자기 저 자세가 된 편지 내용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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