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아있는 부처

그리고 얼마 후 두 번째로 의상과 함께 이번에는 바다로 해서 입당하기 위해 백제국 항구로 가는 도중 비를 만나 산속에서 길을 잃고 해매다 겨우 토굴을 찾아서 하루 밤을 지내게 되었다. 갈증이 나 토굴 속에서 고여 있는 물을 떠 마셨는데 물맛이 매우 달고 시원하였다.

그러나 아침에 깨어보니 토굴이 아니고 오래된 공동 무덤이었으며, 물을 떠마시던 그릇은 바로 해골이었다. 부득이한 사정이 생겨 하룻밤을 더 지내게 되었는데 이에 귀신의 장난에서 활연 대오하였다. 마음이 생기면 만물의 갖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마음이 멸하면 무덤, 해골물이 둘이 아님을 깨달았다.

즉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유심(唯心)의 도리를 깨닫는다. 활연 대오를 한 스님은 발길을 되돌려 신라로 돌아왔다. 그리고 미친 사람으로서 또는 거지행세를 하면서 거리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민중포교에 들어갔다.

항간에 나가 표주박에 걸림이 없다는 ‘무애(無碍)’라는 글을 새겨 천촌만락을 돌아다니며, 거지나 창기들을 비롯한 하층 백성들과 더불어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을 외면 극락에 갈 수 있다고 교화하였다.

“이상이 소신이 알고 있는 원효스님에 대한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였습니다.”

김유신이 원효를 소개하자 보희부인이 기다렸다는 듯 나섰다.

“원효스님은 스님이기 이전에 우리 신라국의 영걸(英傑)이십니다. 비록 골품제도에서는 많이 모자라지만 그분의 인품이나 선지식은 삼국에서 최고라고 봅니다. 그분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부처님의 말씀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분의 법문을 듣고 있으면 마치 살아있는 부처님을 만나고 있는 기분입니다. 소첩이 가슴이 답답하거나 기분이 우울할 때 부처님을 좋아하는 개지문(皆知文) 전군이나 요석공주를 동행하여 분황사(芬皇寺) 들러 원효스님의 설법을 자주 경청해 왔습니다.

스님은 대중교화를 통하여 상구보리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의 마음으로 일여평등(一如平等) 사상은 아무런 차별이 없는데, 오직 망념에 의하여 일체 경계의 차별이 있음 갈파하시며, 근원을 알지 못하고 시비와 질시를 일삼는 배타의 마음을 버리고 모두의 염원이 성취되고 바람이 이루어지도록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오, 왕후께서는 원효스님의 설법을 존중하시는군요.”

“폐하께서도 언제 좋은 날을 잡아 소첩과 분황사에 납시어 마음의 청정무구를 얻어 보시지요.”

“좋습니다. 짐은 내일이라도 당장 원효스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요석공주도 함께했으면 합니다.”

“폐하, 내일 요석공주도 함께요?”

“짐이 알아보니 요석공주가 아침저녁으로 전장에서 전사한 지아비 김흠운의 명복을 빌려 왔다고 합니다. 참으로 거룩하고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저승에 든 사람을 매일 조석으로 명복을 빈다고 돌아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이제는 건강을 위하여 공주에게 그만 멈추도록 이야기 하세요. 그 만큼 명복을 빌었으면 충분합니다.

짐이 흠운의 집안에 충분히 보상을 한 만큼 이제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어요. 이왕 간 사람은 간 사람입니다. 그러다 그 아이 몸이 상할까 걱정됩니다. 내일 짐이 친히 분황사에 행차하여 원효의 본심을 알아볼까 합니다.”

“폐하, 원효의 본심이라 하옵시면?”

보화부인은 ‘본심’이란 말에 김춘추를 뚫어질 듯 쳐다보았다.

“왕후, 요석궁에 자루 빠진 도끼를 언제까지 방치하려하오? 하루 빨리 단단하고 곧은 자루를 찾아 도끼가 제대로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금도끼를 썩히는 것도 큰 죄악입니다. 회임이 가능한 신라의 여인들은 비록 남편이 전장에 나가 죽었더라도 계속하여 새로운 인연을 맞이하여 후손을 낳아야 합니다. 국가의 근간은 국토와 백성입니다. 국토는 있는데 백성이 없다면 국가가 아닙니다. 산중에 늑대와 이리가 아무리 많은 들 국가의 근간이 되겠습니까?”

“네에? 폐하, 어찌 그런 말씀을…….”

“언니, 폐하 말씀이 옳아요. 나라는 사람이 많아야 해요. 조카가 지아비를 잃고 외로워하는 것을 잘 아시잖아요. 한참 나이인 조카가 요즘처럼 길고 긴 밤을 어찌 홀로 지낼 수 있나요. 언니도 참 너무하셨어요. 요석 조카는 신라에서 제일가는 미색으로 소문이 자자합니다. 그런 아이를 요석궁에 가둬두고 혼자 살라는 처사는 너무 잔인해요. 마침, 원효스님이 항간에 노래를 퍼뜨려 요석공주를 원하고 있으니 잘 생각해보세요.”

문명왕후 문희는 언니 보희가 차마 자신의 입으로 할 수 없는 말을 지아비와 오라버니 앞에서 서슴없이 하였다. 문희에게도 지소공주(智炤公主)가 있으나 아직 나이가 어렸다. 보희부인은 자신의 입장을 대변해준 동생 문희가 밉지 않았다.

“왕후, 원효스님이 노래를 지어 항간에 퍼뜨린 이유는 차마 폐하께 요석궁조카를 단도직입적으로 달라고 할 수 있는 신분이 아니기에 그리했을 겁니다. 자루가 빠진 도끼를 빌어 신라왕실을 떠받칠 든든한 천주(天柱)를 선물하겠다는데 주저할 게 없어요. 우리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에는 칼잡이 보다 붓잡이가 필요합니다. 폐하께서는 이점을 중요시 여기시고 계십니다. 부처님도 라훌라라는 아들이 있고 아쇼다라라는 정실부인이 있었습니다. 부디, 깊이 혜랑 하시어 폐하의 근심을 덜어주시길 부탁합니다.”

김유신은 김춘추의 의중을 파악하고 마음을 바꿔 보희부인에게 요석공주의 하가를 권유하였다.

“두 분의 뜻을 잘 알겠습니다. 우선 소첩이 요석공주에게 두 분의 의중을 전하고 공주의 마음을 얻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요석공주에게 어린 두 딸들이 있다는 점을 알아주세요.”

“고맙소. 짐은 그대에게 지아비이며, 요석공주에게는 아비이고, 공주의 두 딸들에게는 할아비입니다. 또한 짐은 신라 만백성의 어버이입니다. 짐의 대업은 유신공과 힘을 합쳐 삼국을 통일하는 것입니다. 머지않아 우리 신라가 남삼한(南三韓)의 모든 지역뿐만 고구려의 광활한 영토도 복속시킬 것입니다.

또한 바다 건너 열도의 왜나라도 모두 정복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대 제국이 되려면 창과 칼이 필수겠지만 대업이 성취된 이후에는 창칼은 창고에 넣어두고, 커다란 붓을 꺼내 들어야 합니다. 지금이 큰 붓을 만들 시기입니다. 하여, 짐은 당대의 선지식인 원효스님의 정기를 이어받은 핏줄을 우리 왕실에서 탄생시켰으면 합니다.”

“폐하, 원효스님은 우락부락하게 생겼다는데 그 분보다 의상스님이 어떠세요? 의상스님은 절세 미남자라 들었는데요.”

문명왕후 문희는 부처를 마음에 담고 있지 않아 원효스님을 가까이서 본적이 없었다. 어쩌다 왕궁에서 부처님을 위한 큰 행사가 있어도 먼발치에서 몇 번 본적이 있을 뿐이었다.

“의상은 지금 신라에 없고 당나라에서 불법 공부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김춘추와 김유신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보희부인은 김춘추가 요석공주를 원효에게 재가시키려 하는 데 반대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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