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꿈보다 좋은 해몽

“너희들도 원효스님이 지은 노래를 이미 듣고 있을 것이다.”

문명왕후가 거들고 나섰다.

“문왕 왕자, 몰가부(沒柯斧)의 뜻을 알고 있느냐?”

“어머니, 소녀가 말씀드릴까요?”

“요석공주는 가만히 있거라. 오라비에게 물었다.”

보희부인의 말에 김문왕과 요석공주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네, 어머님. 몰가부란 자루가 없는 도끼를 뜻하는 말로 알고 있습니다. 즉, 풀이하자면 남편과 사별하였거나 헤어진 여인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춘추의 넷째 왕자인 김문왕은 부왕을 도와 정사를 보고 있었다. 주색을 가까이 하지도 않고 특별한 잡기도 없었다.

“개지문은 지천주(支天柱)가 무슨 뜻으로 알고 있느냐?”

왕자 김문왕이 재미없는 답변을 하자 이번에는 김춘추가 전군인 김개지문에게 물었다.

“아버님,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이라는 듯으로 곧 나라의 큰 인재(人材)를 말합니다.”

“네가 제법이구나. 늘 술만 마시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김춘추는 김개지문 전군의 총명함을 칭찬하며 호쾌하게 웃었다.

“송구하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인문(仁文)이가 원효스님이 요즘 서라벌에 퍼트리고 있는 노래를 불러보고 그 뜻을 풀이해 보거라.”

“부왕, 소자가 어찌 감히.”

“괜찮다. 어서 풀이해보거라.”

김인문이 여러 사람들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수허몰가부(誰許沒柯斧)하면 아작지천주(我斫支天柱)하리라, 즉,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주면, 내가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깎으리로다. 이는 불제자의 입에서 나오기 다소 민망한 말이기는 하나, 속뜻이 매우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님이 권력과 여근(女根)을 상징하는 도끼를 원한다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지만 나라를 위하여 든든한 기둥을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 큰 반향을 일으키기 쉽습니다.

하오나, 부왕과 형님께서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 일을 원효스님께서 간파하시고 부왕께 인재를 손수 만들어 드리겠다고 하니 마다할 일이 아닌가 합니다. 이는 어쩌면 우리 신라 왕실의 경사이며, 천년 왕국을 떠받칠 동량지재를 얻을 절호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아버님, 이 기회를 절대로 놓치시면 안 될 것입니다.

소자가 얼마 전에 아버님과 외삼촌 그리고 두 분 어머님이 의견을 교환하시고 요석 동생을 원효스님에게 하가시키기로 결정을 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자는 네 분의 합의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소자는 십년 내로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복속시켜 남삼한을 흡수하고, 뿐만 아니라 당나라에 빼앗긴 옛 조선의 고토(故土)까지 통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전장이 끝나면 고구려와 백제 유민들의 등을 다독거릴 훌륭한 문장이 필요합니다.

부왕께서는 원효스님의 높은 학식으로 통일 후 신라의 정치를 모색하시고 백성들의 높은 인기를 흡수하여 민심을 잡아야 합니다. 스스로 파계하고 백성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정토신앙을 부르짖는 원효스님이야말로 우리 신라왕실에 절대로 필요한 인물입니다.

원효 스님이 언행이 다소 거칠기는 하오나 속이 깊사옵니다. 그 분을 왕실과 인연을 맺도록 하여 발목을 잡아 놓으시고 삼국을 통일하여 영토를 확장하고자 하는 아버님에게 사상적으로 대항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 분의 종교적 영도력은 진골출신 불제자들 중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사옵니다. 아버님, 두 분 어머님, 소자의 간언을 받아 주소서.”

부왕과 형 법민을 도아 삼국통일을 위하여 동부서주하고 있는 김인문은 행정가이면서 문장가이기도 하였다. 김인문은 평소에도 요석공주와 사이가 돈독하였고 과부가 된 이후에는 더욱 친밀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물론 요석공주와 문명왕후의 소생들과는 모두 원만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김인문은 친 오라비인 김개지문이나 김지원보다도 요석과 친한 사이였다.

“과연, 과연. 내 아들이로다. 네가 이 아비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구나. 인문아, 정말로 명민하구나.”

김춘추는 여러 명의 아들 중에서 김인문 왕자를 가장 총애하였다. 만약 법민이 장자가 아니었다면 김춘추는 당장이라도 김인문에게 보위를 물려 줄 수도 있을 정도였다.

“둘째가 정말로 영특하구나. 어미도 네 말에 동감이다.”

문명왕후도 침이 마르게 둘째 아들 김인문을 칭찬하였다.

“인문 오라버님께서 정확히 부왕과 원효스님의 의중을 짚으셨어요. 원효스님은 신라, 고구려, 백제 더나가 당나라를 통틀어 오직 한분 밖에 안 계신 생불이세요. 뿐만 아니라, 그 분은 천문, 지리, 중생의 눈에 보이는 모든 현상계를 꿰뚫고 계시 답니다. 그런 분의 정기를 받는 다는 것은 파천황 버금가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테지요.

소녀는 아버님과 외삼촌 그리고 두 분 어머님의 뜻을 받들어 원효스님을 파계시키고자 한답니다. 그 분이 지금보다 더 신라 백성의 가슴을 파고들어야 신라는 천년왕국을 기대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인문 오라버니 말씀대로 호랑이 사냥이 끝나면 칼이나 활은 창고에 보관하고 앞으로의 일을 걱정해야 합니다. 한나라를 세운 유방(劉邦)은 나라 건설 후에 한신(韓信)을 비롯한 많은 장수들을 제거하였습니다.

지금 백제왕 부여의자(扶餘義慈)는 신라국 선화공주님과 무왕(武王) 사이에 태어나신 분입니다. 따지고 보면 선화공주이 부왕의 이모님이시니 아버님과 이종사촌 지간입니다. 그러나 혈연에 의한 정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얼마 전 고타소 큰 언니와 형부 김품석 대야성 성주께서 백제왕의 부하인 부여윤충(扶餘允忠)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일로 부왕께서는 이종사촌인 백제왕에게 원한을 품으시었고 반드시 삼국을 통일하시겠다고 다짐을 하셨습니다. 인문 오라버님 말씀대로 머지않아 아버님과 외삼촌께서 신라에서 전쟁을 반대하는 세력을 잠재우시고 삼국을 통일하실 것으로 봅니다. 나라를 잃고 방황할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流民)들 그리고 불안해 할 신라의 백성들을 붓으로 위무할 위인(偉人)이 필요합니다.

소녀는 바로 그런 인걸(人傑)을 생산하여 아버님에게 효도를 하고 싶습니다. 물론 현재 소녀에게 전 남편인 김흠운 장군의 핏줄인 두 딸이 있습니다. 소녀가 불제자를 파계시키고 혼인한다고 하여 두 딸들이 잘 못될 일은 없을 것입니다. 훗날 법민 오라버님께서 소녀의 두 딸들을 잘 돌봐주시리라 믿사옵니다. 이번 일이 잘 성사되어 부왕과 두 분 어머님께서 크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오라버니들 제가 당대의 선지식(善知識)이며, 수많은 신라 백성들의 정신적 지주 같은 원효스님에게 하가하는 것을 욕하지 말아주세요. 만약 제가 그 분과 혼인을 한다는 소문이 나면 서라벌이 발칵 뒤집어 질 것입니다. 그러나 소용돌이는 한때라고 봅니다.

이 동생의 몸에서 장차 신라 조정을 지탱할 천주(天柱)가 나온다면 우리 신라 왕실의 영광이요, 설씨가문에 대대손손 큰 자랑거리가 될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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