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천지개벽

“대사님, 원효 스님 소식 들으셨습니까?”

“나무관세음보살. 원효가 누구지? 아, 요석인가 요강인가 하는 공주와 살을 섞고 싶어 한다는 그 미친 땡중놈 말이로군. 나라가 망조가 들려나. 은지야, 여기 술 한 동이 더 내오거라. 대안, 대안, 대안-.”

“대사님, 벌써 대취하셨어요. 그만 드시어요.”

“나무광세음보살. 허허-. 고년 참. 내오라면 내올 것이지 웬 잔말이 많은 고. 대안, 대안, 대안-.”

서라벌 중심가에 신라에서 제일가는 기루(妓樓)와 유곽(遊廓)이 밀집되어 있었다. 살아있는 존자(尊者)로 백성들로부터 추앙받던 대안대사(大安大師)가 낮부터 '극락'이라는 주점에서 작부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대안대사는 괴이한 옷차림을 하고서 항상 저자거리에서 구리 밥그릇을 두드리며 '편안하라'는 뜻의 ‘대안-’을 외치고 다닌다하여 그의 이름이 유래하였다.

“원효스님은 대사님 제자가 아니던가요? 대사님께서 말려보세요. 만약에 원효스님이 공주님에게 장가를 가면 나는 어쩌나?”

“호호. 네가 원효를 짝사랑이라 하는가 보구나. 대안, 대안, 대안-”

“은지야, 원효는 부처님의 제자지 나의 제자가 아니란다. 그러니 부처님이 말려야지. 대안, 대안, 대안-.”

은지는 입을 삐쭉 내밀며 대안대사의 빈 잔에 독주를 가득 따랐다.

“아잉-. 난 몰라. 정말로 원효스님이 장가가면 저는 팍 죽어버릴거에요. 대사니임-, 원효스님이 장가 못가도록 말려주세요. 아니면 저 정말로 죽을거에요.”

“그 무슨 망말인고. 천지신명이 주신 목숨을 함부로 버리려 하다니? 대안, 대안, 대안-.”

주독(酒毒)으로 얼굴이 불그스름하게 변색된 대안대사는 풍덕한 은지의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김춘추가 반전론자(反戰論者)인 원효의 입을 막으려고 수작을 부리는 거 아닌가? 본인이 몰가부(沒柯斧)란 노래를 지어 서라벌에 퍼뜨리더니 김춘추가 이때다 싶어 원효에게 족쇄를 채우려는 속셈이 분명할거야. 김춘추와 김유신이 신라 민중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원효를 두고 백제와 고구려를 상대로 전쟁을 수행하기 어려우니까 미리 꼼수를 쓰는 게야.

그렇지 않으면 원효가 스스로 망가져서 민중에게 널리 포교(布敎)를 위하여 기행을 할 수도 있어. 서라벌에서 기행은 나 혼자로도 충분한데 원효까지 가세한다면 나의 입지가 좁아지겠구나. 신라왕실과 고관대작 위주로 포교를 해온 그의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느낀 것일까. 정토(淨土) 불교를 실천하기 위하여 신분의 고하를 따지지 않고 부처님을 널리 알리려 하는 조치라면 천만다행이지만.

그러나 신앙을 떠나서 아무리 계집이 좋아도 한번 시집가서 애를 둘이나 뽑아낸 여자가 뭐가 좋다고 구애를 한단 말인가. 허허. 참말로 원효를 알다가도 모를 사람일세. 하기사, 신라 제일의 미인을 품어보는 일도 꽤 의미가 있는 일이기도 하지. 그것도 신라 지존의 딸을 말이야. 아무튼 원효 그 사람 재주도 좋구먼. 오랜 세월 금욕을 했을 텐데 하초가 제 기능이나 할까?’

대안 대사는 술이 가득 들어있는 잔을 단숨에 마셔버렸다.

“대사님, 제가 봤을 때 원효스님이 그만큼 망가졌으면 되었는데도 스스로 파계(破戒)까지 하면서 굳이 공주님과 혼인을 하는 이유가 뭘까요? 저는 그게 궁금해 죽겠어요.”

“은지야, 네가 진정으로 원효를 은애하는가 보구나?”

“요즘은 원효스님도 저희 주루(酒樓)를 찾지 않으세요. 제가 보고 싶지도 않은가 봐요. 하루가 멀다 하고 오시더니. 원효 스님은 우리 주루에 오시면 저만 예뻐해 주시는 데.”

서라벌에서 내로라하는 은지였다. 원효 스님은 기행을 시작하면서 은지를 속세의 여인으로 두고 있었다. 절세가인으로 소문난 은지였다. 대안대사와 원효스님은 주점 '극락'에 들면 은지에게 세속의 욕망을 해소하곤 했다.

“여보게 개똥어멈, 소식 들었어?”

“소똥어멈, 뭔 소식을 말하는 거여?”

“어머? 이 여편네는 귀를 틀어막고 사는가보네. 아이고, 이리 세상 소식에 어두워 어찌 할꼬.”

“이 여편네야. 뭔 소릴 듣고 그러는 거여? 간밤에 어느 집 과부가 머슴하고 정분이라도 통했다는 거여 아니면 귀신이 개똥네 씨나락이라도 까먹었단말여?”

빨래터에 모인 아낙네들은 빨래를 내팽개쳐놓고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글씨, 나라님 둘째딸인 요석공주가 원효스님에게 시집간대.”

“뭐여? 이 여편네가 나를 무시해도 분수가 있지. 내가 무식하다고 지금 나를 놀리는 거여?”

“이 멍청한 여편네야, 어제 조정에서 나온 관리들이 서라벌 거리마다 요석공주님과 원효스님의 혼인 소식을 알리는 방(榜)을 붙여 놓았대.”

“시방 그 말이 참말이지? 나를 놀리면 경을 칠거여.”

서라벌의 평범한 남녀노소는 모이면 요석공주 시집가는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진정으로 착한 사람이 되고자한다면 세상의 모든 조직으로 부터 완전히 해방돼야 한다. 어떤 일이든 걸림이 없으면 그것을 곧 무애(無碍)라 말한다. 온전한 사람이라면 온갖 허망한 사슬과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자유는 곧 허구의 자아(自我)로 부터 이탈이라고 말 할 수 있겠다. 자아가 너무 강하다면 천상의 아름다운 소리도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불행이 있다.

원효스님은 자아로부터 탈출한 완전한 자유인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신앙으로부터, 지식으로부터, 계율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웠다. 주색가(酒色家)에 자유로이 드나들며 술을 마셨고, 기녀하고도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또한 남루하고 이상한 행색으로 길거리에서 춤추고 박을 치고 다니다 사람들로부터 욕을 얻어먹기도 하였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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