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진정한 자유인

원효스님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아는 것보다는 즐기는 것이 낫고, 즐기는 것보다는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는 몸소 실천하였다. 불제자이면서도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다보니 다른 사문(沙門)들로부터 시기와 지탄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사람의 진정한 자유를 이론적으로 쉽게 규명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삶으로 이를 구현해 냈다.

자유는 인간에게 생명수와도 같다. 불문(佛門)에서는 마음의 자유, 자아로부터의 해탈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주위에서 아무 간섭도 없고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 놓여 졌을 때 편안할 것 같지만 막상 자기 번뇌와 망상에 얽매이기 시작할 때 그것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없을 것이다.

이를 어떻게 벗어나느냐가 중요한데 원효 스님은 자아로부터의 해탈을 위해 일정한 범위나 틀 속에 안주하기를 거부하였다. 그 주체적인 방법으로 원효스님은 유방외(遊方外)를 제시하였다. 사람들은 자신의 범위를 설정한다. 그러나 원효스님은 어떤 범위도 넘어서서 구도자로 활동하였다. 원효스님이 ‘유방외(遊方外)’, ‘초출방외(超出方外)’ 등의 표현을 즐겨 썼던 것도 또한 무애의 자유인으로 행동했던 것도 이런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一切無碍人一道出生死(일체무애인일도출생사) - 일체에 걸림이 없는 사람은 한 길로 생사를 벗어나리.

원효스님의 말은 약간은 난폭하고 예의에 벗어나기도 했으며, 행동도 가끔은 범부의 상식선을 넘기도 하였다. 사당에서 거문고를 타면서 즐기고 혹은 여염에서 유숙하기도 하였고 혹은 산수에 들어 선좌(坐禪)하는 등 계기를 따라 행동하기도 했다. 시중 잡배들과도 어울려 노래하고 춤추고 유곽에 자유로이 드나들기도 하였으며, 천촌만락을 돌아다니며 하화중생(下化衆生)하였다.

“스님, 스님께서 요석공주를 원하셨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나무아미타불광세음보살. 서라벌에는 별의별 망언(妄言)들이 춤을 추고 있구나.”

“그렇죠? 스님이 요석공주님을 원하신 적이 없으신 거죠?”

극락의 기녀 은지는 보슬비가 내리는 늦은 시간에 찾아온 원효스님을 맞고 있었다.

“허허-.”

“아잉. 스님, 대답 좀 해보세요. 저는 스님 없으면 팍-, 죽어버릴 거에요. 정말이라고요. 정말로 스님이 공주하고 혼인하면 이년 정말로 칼을 입에 물고 죽을 거라고요.”

“아름다운 세상에 태어나 하늘이 주신 천수를 다 누리고 죽어야지 이제 겨우 스물을 넘기고 죽긴 왜 죽는다고 하는고?”

여러 달 만에 나타난 원효스님에게 은지는 빨간 입술을 오물거리며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은지야, 나는 하늘 아래 그 누구도 원한 적이 없구나. 내가 원한 분이 있다면 부처님 한 분 뿐일 게야. 아미타불관세음보살.”

“그렇죠? 스님, 정말로 공주님을 달라고 한 적이 없는 거죠? 그런데 왜 조정에서는 서라벌 골목마다 방을 붙여 스님과 요석공주가 곧 혼인식을 올린다고 했나요? 조정의 속내를 모르겠어요. 스님, 진실을 말해주세요. 저는 스님이 공주님과 혼인하면 정말로 죽을 거라니까요?”

“서라벌 사람들이 내가 부른 몰가부라는 노래를 잘못 해독한 게로구나. 나무아미타불관자재보살.”

원효스님은 독한 술 한 동이를 순식간에 비우고 투박한 옷소매로 검붉은 입술을 쓰윽 문질렀다.

“스님, 여기 고기 안주 있어요. 자아, 입을 크게 벌려보세요. 스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어렵게 구한 황구(黃狗)를 밤새 푸욱 삶은 거에요.”

은지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고깃덩이를 나물에 싸서 원효스님의

입안에 넣어주었다.

“네가 내 입맛을 아주 잘도 알고 있구나. 내가 이걸 좋아하는 지 어찌 알았누? 네가 나에게 무슨 소리를 듣고 싶은 게냐? 너도 자루 빠진 도끼가 분명하렷다. 시아본사석가모니불.”

“이년은 스님이 공주님하고 혼인을 하지 않는다는 대답만 들으면 된답니다. 스님은 저에게 해와 보름달 같은 분이라고요. 그런 분이 요석공주님의 비단치마 속으로 사라지면 저는 이 세상에 의지할 사람이 없어요. 망망대해에 버려진 쪽배나 같은 신세랍니다.”

원효스님과 대작을 한 탓으로 은지 역시 입에서 술 냄새를 솔솔 풍기고 있었다. 은지의 하얀 치아와 붉은 입술은 사내의 욕정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은지야,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봐라. 네가 알아듣든 말든 그것은 온전히 네 몫이라 할 수 있구나. 나무샤카무니불.”

취한 은지가 색기를 뚝뚝 흘리며 원효스님 곁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스님, 쉬운 말로 하세요. 스님 말씀은 너무 어려워서 제가 금방 알아들을 수 없다고요. 스님이 말씀하실 때는 알아들을 것도 같은데 말씀이 끝나고 나면 이년 머릿속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은지는 원효스님에게 귓속말로 속삭이고 나소 술 한 동이와 고기 안주를 푸짐하게 더 가져왔다.

“나의 몰가부 노래가 그리 어려운가? 마치, 나를 여인의 몸을 탐하는 파락호로 보고 있다는 현실에 마음이 무겁구나. 안 되겠어. 내가 잠시 지리산에 은거해 있어야 겠어.”

“스님, 그럼 왕실에서 난리가 날 텐데요?”

“난리가 나든 말든 내 알바 아니다.”

원효스님은 술 한 동이를 단숨에 비우고 은지의 풍만한 엉덩이를 톡톡 치며 호탕하게 웃었다. 신라는 오랜 세월 골품제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북부여(北夫餘) 계통의 혈통을 이어받고 새나라의 왕통을 세운 박혁거세로부터 시작한 진한(辰韓)의 사로국(斯盧國)은 600여년을 이어오면서 박씨에서 석씨(昔氏) 그리고 현재의 김씨 왕조로 이어지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소수의 집단이 사로국 즉, 신라를 통치하고 있었는데 그 통치이념의 기저에는 누구도 어쩌지 못할 혈통이 있었다.

신라의 골품제도는 왕족을 대상으로 한 골제(骨制)와 일반 귀족을 대상으로 한 두품제(頭品制)가 각기 별도의 체계를 이루고 있었으나 법흥왕 때 하나의 체계로 통합되었다. 그 결과 골품제도는 성골(聖骨)과 진골(眞骨)이라는 두개의 골과 6두품으로부터 1두품에 이르는 6개의 두품을 포함해 모두 8개의 신분계급으로 나누어 졌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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