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백천만겁난조우

원효스님은 한참 동안 바닥에 엎드려 통곡하였다. 술마시러온 손님들은 기이한 광경을 보고 무척 재미있어 하였다.

“허어-. 그 유명한 원효가 기녀 하나 죽었다고 목을 놓아 울다니. 참으로 신기하고 기이한 일이로다.”

사내들은 스님을 훔쳐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사람아, 중도 사람이야. 남자이기도 하고. 자신을 짝사랑하던 여인이 죽었는데 중이라고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어쩌면 깊은 산속에 들어 앉아 수도하는 스님들이 보통 사람보다 사람의 정이 더 그리울 거야.”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내가 원효스님을 바라보고 한마디 하였다.

“자네 말이 지당함세. 중이라고 벙어리, 봉사가 아니지. 에헴-.”

“따지고 보면 중들도 여인의 몸에서 나온 거 아닌가?”

“예끼, 이 사람아. 세상에 여인의 음문(陰門)에서 태어나지 않은 자가 어디 있누?”

“그런가?”

이번에는 나이가 가장 어려보이는 사내가 주모를 한번 돌아보고 일부러 큰 소리로 떠들어 댔다.

“이 나라를 건국한 박혁거세는 알에서 나왔다고 하던데?”

“어디 그분뿐인가? 고구려를 세운 추모왕(鄒牟王) 주몽도 알에서 나왔다고 하지 않는가?”

“그럼, 영웅들은 모두 알에서 나오고, 우리같이 천한 것들은 여인의 거시기에서 나오나?”

술꾼들은 술잔을 들고 배꼽을 잡으면서 원효스님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나 원효스님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원효스님은 바랑을 뒤지더니 목탁을 꺼내 들었다.

무상심심미묘법 백천만겁난조우 아금문견득수지 원해여래진실의 옴 아라남 아라다 옴 아라남 아라다 옴 아라남 아라다 츰부츰부 츰츰부...

원효스님은 목탁을 두드리며, 게송(偈頌)과 츰부다라니를 외치면서 자신으로 인하여 목숨을 버린 은지의 넋을 위로하였다. 저승까지 들릴 것 같은 목탁소리와 낭랑한 염불소리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주점 안에 울려 퍼졌다. 원효스님의 염불소리에 주점은 잠시 숙연해 졌다. 그러나 누구 한사람 불평을 늘어놓지 않았다.

“과연, 큰 스님이시다. 천하디 천한 기녀의 죽음에도 통곡하며 염불을 하다니. 정말로 큰 스님이 맞구나. 보통 땡중 같았으면 당장 내쫓았을 텐데. 원효스님의 염불을 들으니 속이 다 후련하면서도 슬프고 가슴 속에 바위처럼 박혀 있던 백년 묵은 응어리가 단번에 눈 녹듯 하니 이게 대체 무슨 조화인가?”

“이 사람아, 그러니 신라백성들이 대덕(大德)이니 생불(生佛)이니 따르며 존경하지 않는가?”

“저런 분이 공주와 혼인을 하다니 참말로 아깝도다. 신라 만백성을 부처님말씀으로 계도(啓導)해야 하는데.”

“소승이 눈치도 없이 자리를 시끄럽게 하여 송구합니다. 나무아미타불지장보살마하살.”

“스님. 아닙니다요. 이놈, 큰스님 염불소리 듣고 감격했습니다요.”

은지를 위한 염불이 끝나자 원효스님은 술꾼들에게 일일이 술잔을 돌리며, 위로하였다. 조금 전에 원효스님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술꾼들도 헌헌장부가 발설하는 염불에 넋을 잃고 말았다. 어떤 사내는 눈물을 훔치기도 하였다.

자연스러운 법계(法界)의 진리란, 진리가 없으면서도 진리 아님이 없고 문이 아니면서도 문이 아닌 것이 없다고 할 수 있겠다. 큰 것도 없지만 작은 것도 없고 모자란 것도 아니지만 넘치는 것도 아니고 하나도 아니지만 많은 것도 아니다. 크지 않은 까닭에 남음이 없고 작지 않은 까닭에 우주의 텅 빔으로 하여 넉넉함이 있다.

소걸음으로 가는 까닭에 능히 삼세(三世)의 세월을 품으며, 늘어나지 않기 때문에 전체를 순식간 밀어 넣는다. 고요함도 움직임도 아니므로 삶과 죽음이 열반(涅槃)이 되고 열반이 생사가 된다. 하나도 아니고 많은 것도 아닌 까닭에 하나의 진리가 일체의 진리가 되고 일체의 진리가 곧 하나의 진리가 된다.

삼라가 하나에 들어있기 때문에 하나 가운데서 한량이 없음을 알 수 있고 하나가 모든 것에 들어 있기에 한량없는 가운데서 하나를 알 수 있다. 서로 간에 걸림이 없는 없다는 것 즉, 팔상(相入)은 서로가 돌고 돌아 거울이 그림자를 비추듯 실제로 생기게 하지 않음으로 장애가 없다.

암수가 만나서 결합을 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고 그 법칙 중에서 첫째에 해당 한다. 자연은 그렇게 해서 연속되어가면서 유지가 되는 까닭이다. 음양이 결합하는 것은 모든 자연계에서 항상 이뤄지고 있는 것이니 인간이라고 해서 별다른 법이 적용될 수가 없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삼라만상이 모두 자연의 이치에 따라서 서로 결합하고 탄생시켜가면서 유지된다,

음양의 결합이 바로 궁(宮)의 합(合)인 것이다. 이 말은 같은 말로 이해를 하여도 된다. 그러니까 자연의 음양이 서로 결합을 하고 동물의 자웅(雌雄)도 서로 결합을 한다. 미물인 곤충들도 서로 자신의 종족을 유지하라는 조물자(造物者)의 설계대로 궁합한다. 물고기들이 암수결합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경이스럽다.

더욱 놀라운 것은 물고기들이 상대를 고른다는 점이다. 수컷은 누가 낳았는지도 모르는 알에 함부로 정액을 뿌리지 않는다. 참으로 오묘한 일이다. 물고기도 궁합을 따진다. 결국은 가장 힘이 세고 영리한 물고기가 종족 번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식(食)과 색(色)은 양면성이 있다. 식이 있어야 색이 있고 색이 있어야 식도 있다. 먹어야 살고 색이 있어야 자식을 낳으며, 대를 이어갈 수 있다. 음식남녀(飮食男女)는 인간의 가장 큰 욕망이다. 큰 욕망이라고 정의한 이유는 근원적인 단절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식색(食色)이 근절할 수 없는 욕망이라면 어느 정도 긍정할 것인가. 시대에 따라 지역문화권에 따라 통제가 다르다. 색에 대한 규제가 특히 그렇다. 색에 대한 절제는 성인(聖人)의 말씀이지만, 인간의 욕정은 하늘이 준 선물이다. 성인보다 하늘이 더 높다. 사랑채와 안채를 분리하는 이유는 과색(過色)에 대한 통제로 이해된다. *계속

 

 

 

저작권자 © 남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