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김춘추, 스님 사위를 보다

“폐하, 폐하께서 손수 요석궁에 납시어 요석공주와 원효스님의 혼례식을 집전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원효스님이 지금 어디에 기거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요?”

김유신은 김춘추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낮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김춘추는 점심 수라상을 받으며, 처남 김유신 그리고 두 왕후와 더불어 조촐한 주연을 즐기고 있었다.

“원효가 짐의 뜻을 알고 있으니 내일 제 발로 요석궁으로 찾아올 것입니다. 혹여 일이 그르칠까 예부의 관리들을 시켜 원효스님을 찾아보라고 이미 지시해 놨습니다. 스님은 천리안(千里眼)을 지녔으니 짐의 뜻을 알아차렸을 겁니다.”

“과연, 폐하십니다. 제 아무리 원효라고 하여도 나라님이 부르는데 안 오고 배기겠습니까?”

김춘추는 신라의 지존이면서 요석공주의 아비로 혼일 날짜를 일방적으로 발표해 놓고 걱정이 많았다. 만약 원효스님이 요석공주와 혼인에 응하지 않는 돌발변수가 발생할 경우 백성들에게 큰 망신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일은 신라왕실과 김춘추의 자존심이 걸린 중차대한 일이었다. 원효스님과 요석공주의 혼인이 김춘추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면 김춘추의 국정운영에도 큰 부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폐하, 소신의 생각인데요.”

“대총관, 말씀해보세요.”

“내일 만약에 원효스님이 요석궁에 든다면 요석궁에는 요석공주만 있게 하는 게 어떨지요?”

“네에? 요석공주 혼자만 있게 하라고요?”

김춘추는 애지중지하는 딸 혼자만 있게 하라는 김유신의 말을 얼른 이해하지 못했다.

“폐하, 오라버님 말씀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혼례식을 치르기 이전에 미리 두 사람이 상견례라도 하라는 취지에서 그리하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혼인날이 앞으로 사흘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문명왕후는 오라비 김유신을 거들었다.

“폐하, 왕후의 생각도 괜찮습니다.”

문명왕후의 제안에 김유신도 흔쾌히 동의하였고 옆에 있던 보희부인은 말없이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원효를 요석궁에 초대해 놓고 요석공주만 머물게 한다? 하긴, 두 사람은 이미 구면이고 자주 만난 사이니 걱정할거야 없지. 야심한 시간에 호젓한 궁에 남녀 둘만 있게 된다면 역사가 일어날 테지. 아무리 법력이 대단한 원효라 할지라도 신라 최고 미녀인 요석공주와 하룻밤 보내면 파계를 하게 될게야.

그리된다면 요석이 듯대로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겠어. 으음-. 그래 오늘밤 원효와 요석공주를 합방시켜보는 거야. 혼례일도 곧 다가오니 미리 상견례 겸 둘이 호젓한 시간을 갖게 해야겠어.’

김춘추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폐하, 뭘 그리 골몰하세요?”

“아, 아무것도 아니오.”

보희부인이 고기 안주를 젓가락으로 집어 김춘추 입안에 넣어주었다. 김춘추는 얼른 안주를 받으며 보희부인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부인, 그 아이가 오늘밤이라도 합궁이 가능하지요?”

“폐하, 걱정 마세요. 달거리 끝난 지 달포가 지난걸요. 어쩌면 앞으로 사나흘 뒤가 그 애가 회임하기 가장 적절한 시기가 아닐까 합니다.”

“그래요. 오늘밤 원효를 불러도 될 것 같군요. 어험.”

두 사람이 귓속말을 주고받자 김유신은 문명왕후 얼굴을 쳐다보며 한쪽 눈을 찡끗하였다.

“오라버니, 한잔 받으시어요. 오늘밤 요석궁에 청사초롱을 밝혀야 겠어요. 오라버니께서 도와주세요.”

“왕후께서는 요석궁 주변에 잡인들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시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차려놓으세요. 맛 좋은 술도 서너 독 준비하셔야 할 겁니다. 나는 요석궁 주변에 혹여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경계를 철저히 하도록 준비시키겠습니다.”

김유신은 원효스님이 요석궁에 들었다는 소문이 나면 왈패들이 몰려들어 두 사람의 만남을 방해할 수도 있을 거라고 판단하였다.

“오라버니, 걱정 마셔요. 이미 병부랑에게 말해 놓았습니다. 쥐새끼 한 마리 들여서도 안 된다고 했어요. 원효스님이 다른 불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저자거리 주점 작부가 자살을 하였다지요? 그 아이가 평소에 원효스님을 흠모하였었나 봅니다. 서라벌 여인네치고 스님을 흠모하지 않는 여인이 있겠어요?”

“그, 그런 일이 있었군요.”

“오라버니, 지소공주가 오라버니를 많이 따르지요?”

“아, 지소공주요? 제가 가장 아까는 조카딸입니다. 지소공주도 조금 더 있다가 짝을 찾아 줘야 할 것 같아요.”

김유신은 두 눈을 껌뻑거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조만간 제가 오라버니에게 큰 선물을 드릴 겁니다.”

“왕후가 나에게 큰 선물을요?”

“요즘 폐하와 그 문제로 상의 중이오니 조만간 결정이 날 겁니다. 오라버니께서 심신을 바쳐 신라의 삼국통일에 전념하고 계시니 저희 왕실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해드려야지요.”

“고맙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문명왕후와 보희부인 그리고 김유신은 신라의 왕실 사람이면서도 늘 가슴 한편에는 허전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진골의 신분으로 신라 최초로 왕위에 오른 김춘추는 경주가 본관이지만 김유신은 김해가 본관이었다. 즉, 금관가야국의 후손인 김유신이 경주토박이 신라왕실의 인척인 된 것으로 많은 진골들의 견제대상이었다.

그러나 진덕여왕이 붕어하자 김유신은 김춘추를 왕으로 추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김유신이었다. 신라왕실의 인척이기는 하지만 그는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김유신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누이동생이며, 김춘추의 정실 왕비인 김문희는 지소공주를 오라비인 김유신에게 하가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김춘추와 김유신의 지상 초대 과제인 고구려와 백제를 신라의 세력권에 복속(服屬)시킨 뒤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소공주를 김유신에게 하가시킨다는 것은 곧 김유신이 진정한 진골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는 당돌한 문명왕후가 김유신의 누이동생이기에 가능한 계획이었고 실행 가능한 일이었다. 김유신은 누이동생 김문희의 의도를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 예전에도 문명왕후는 그 같은 언질을 여러 번 한 적이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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