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보은 고을에 터를 잡다

공주일행은 동학사를 출발하여 이틀 동안 걷고 걸어서 보은군 속리산 자락의 어느 산촌에 도착하였다. 산촌이라고 해야 고작 민가 대여섯 채가 전부였다. 산세가 험해 논농사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멀리 천황봉이 아득하게 보이고 병풍처럼 산이 둘러싸고 있어 사람 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아보였다.

서서히 날이 저물고 있었다. 빨리 하룻밤 묵을 장소를 정해야 했다. 사내가 가장 커 보이는 민가로 다가 갔다. 마침 앞마당에서 촌로들이 농기구를 수리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내가 헛기침을 하면서 촌로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어르신,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

그러나 노인들은 본체만체 하였다. 최근 들어 시국이 어수선하다보니 외부 사람들이 자주 나타나고 어떤 날은 외지인들이 다녀간 뒤 곧 바로 관군이 들이 닥쳐 촌노들에게 다짜고짜 외지인들이 간 곳을 대라고 윽박질러대기 일쑤였다.

“어르신, 몇 가지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이 동네는 보시다 시피 민가 두 채 밖에 없수. 재워줄 수도 없고 먹을 것도 없으니 지나가는 나그네면 어서 가던 길을 가슈. 우린 바쁘우.“

촌노들은 사내가 묻기도 전에 몇 마디 던지고 휑하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대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사내는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으며 촌노가 들어간 대문을 두드렸다.

“어르신, 잠시 말씀 좀 묻겠습니다.”

“…….”

그러나 집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해가 산 정상에 걸리면서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봄바람 치고 너무 차가웠다. 멀리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공주와 유모가 걱정되었다. 만약 여기서 촌노들의 협조를 구하지 못하면 지리도 모르는 산길을 더 걸어야 하기 때문에 사내는 어떻게 해서든지 노인들에게 엽전을 몇 푼 집어 주고서라도 촌노들에게 환심을 사서 하룻밤 묵어야 했다.

할 수 없이 대문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마음먹고 살며시 대문을 밀었다. 빗장이 질러져 있지 않아 다행이었다. 안채에서 마당을 쓸던 노인이 무단 침입한 사내를 보자 질겁하였다.

“아니, 주인 허락도 없이 남의 집안으로 들어오다니. 어서 나가슈. 어서.”

“어르신, 저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제 말씀 좀 들어 보세요.”

“들어보고 말고 할 거 없수. 난 지나가는 과객에게 은혜를 베풀 위인이 못되니 어서 가던 길을 가슈.“

사내는 말로는 통할 것 같지 않아 엽전 한 꾸러미를 슬쩍 내보였다.

“우린 이 마을에 살러 온 사람들입니다. 오늘은 날이 저물었으니 어르신 댁에서 하룻밤 묵고자 합니다. 그냥 재워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엽전 꾸러미를 본 노인의 태도가 금방 달라졌다.

“방이 있긴 하오만 누추해서…….”

“괜찮습니다. 바람만 막을 수 있으면 됩니다.”

“험, 험. 그러면 저 방으로 드시구려.”

노인이 가리키는 방은 소 외양간 옆에 붙은 작은 방이었다. 초가집이지만 안에서 보니 그런대로 집이 괜찮아보였다. 사내가 얼른 공주와 유모를 데리고 들어왔다. 세 사람이 좁은 방에서 기거하기는 곤란했다. 사내가 노인에게 사정하여 간신히 방 하나를 더 구했다. 방은 좁았지만 두 사람이 하룻밤 묵기에는 충분해 보였다. 아랫목에 검정색 무명으로 지은 솜이불이 깔려있어 방안에 온기를 조절해 주고 있었다.

“공주, 오늘은 이곳에서 묵으며 앞날을 의논 해 봅시다.”

“서방님, 공주라는 호칭은 쓰지마셔요. 그냥, 여보라고 하던지. 세희라고 불러주세요. 누가 들을까 두렵습니다.”

“네에. 그렇게 하겠습니다.”

곧 이어 산채와 옥수수로 된 저녁상을 촌노의 부인으로 보이는 여인이 들였다.

“찬은 변변치 않으나 그런대로 요기는 될 거유.”

시골 인심도 변해 엽전이라도 몇 푼 집어줘야 뜻이 통했다. 그동안 이집을 다녀갔을 무수한 과객들의 낙서가 벽에 가득했다. 한시(漢詩)를 써놓거나 자신의 신세를 한탄 하는 내용 등 다양한 과객들의 고된 삶이 벽에 고스란히 그려져 있었다.

“미안해요. 나를 믿고 이곳까지 와서 이런 음식을 들게 해서요.”

“서방님,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서방님과 함께라면 모래를 씹어도 저는 괜찮습니다. 그러니 개의치마세요. 밥맛이 좋습니다.“

“공주, 아니 세희, 고마워요.”

이틀을 쉬지 않고 걸은 덕분에 발이 퉁퉁 부르텄다. 공주는 미지근한 물을 떠와서 사내의 발을 씻어주었다. 공주의 부드러운 손이 사내의 발과 종아리에 따뜻한 정을 소록소록 전하고 있었다.

“세희, 고맙소. 내가 할 테니 좀 쉬어요.”

“아닙니다. 서방님. 제가 서방님의 피로를 풀어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지난 며칠이 긴 동굴 속을 헤맨 것 같았다. 공주와의 갑작스러운 혼사와 지나오던 길에 접한 조선 국모의 친서(親書) 등 사내는 잠자리에 들었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자요?”

“아니요. 서방님, 잠이 안 오세요?”

“너무 피곤해도 잠이 오지 않나 봅니다.”

“내일을 위해서라도 주무세요.”

“아니요. 오면서 가만히 살펴보니 우리가 정착해 살 곳이 여기 같습니다. 이곳은 처음 와 본 곳인데도 왠지 낯설지가 않아요.“

“서방님, 그럼 이곳에 터를 잡아요. 내일 집주인에게 며칠 더 묵겠다고 양해를 구한 뒤 살 집을 알아보셔요.“

“그래야 할 것 같소.”

“세희, 이제 그만 잡시다.”

사내가 공주를 살며시 안아주었다. 아무리 피곤하다고 하지만 젊은 육신은 그냥 자는 것을 거부하였다. 사내의 억센 손이 공주의 젖가슴을 지분거리더니 이내 풍덕한 공주의 둔부를 쓰다듬었다.

“서방님, 피곤하실 텐데…….”

“…….”

사내의 육중한 나신(裸身)이 공주의 연약한 육신을 위에서 지그시 누르며 뜨거운 혀를 공주의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공주, 사랑하오.”

사내가 공주의 귓불을 잘근잘근 깨물며 속삭였다.

“서, 서방님. 소첩, 정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공주…….”

사내가 공주 품을 파고들었다. 방안은 금방 한 여름보다 더한 열기에 휩싸였다. 사내는 천천히 남성을 과시하며 공주를 열락으로 인도하였다. 공주의 나지막한 신음소리가 문 밖으로 흘러나갔다. 하늘에 반달이 은은하게 떠서 속리산 자락을 은빛으로 물들여 놓고 소쩍새는 산촌마을 가까이 내려와서 밤새도록 울었다.

다음날 사내는 주인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 며칠 더 묵겠다고 하자 주인은 흔쾌히 승낙하였다. 엽전의 위력이 다시 한 번 입증되었다. 사내는 주인과 함께 인근 동네를 돌아다니며 집을 구하러 다녔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빈집이 있었다. 거의 헐값에 집을 구한 공주일행은 보름동안 집을 청소하고 수리하여 그럴듯하게 단장시켜 놓았다. 내친김에 패물을 정리하여 논과 밭을 마련하였다. 사내가 동네 사람들을 불러 조촐한 잔치를 열어 자신과 공주를 농사지으러 산촌으로 들어 온 사람들이라고 소개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공주와 사내의 귀티 나면서 고상한 모습에 박수로 환영하며 좋아했다.

사내는 마을 대소사마다 참석하여 마을 사람들의 인심을 샀다. 관아에서 몇 차례 호구조사차 다녀갔지만 그때마다 공주의 기지로 잘 넘어갔다. 그렇게 몇 년이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흘러갔다. 공주는 아들과 딸을 낳았고 사내는 산골 사람이 되어 대처의 시름을 잊어가고 있었다.

“고맙소. 당신덕분에 끊어질 뻔한 가문의 대를 잇는구려.”

“김씨 문중에 시집을 왔으니 당연한 일인걸요. 모두 서방님의 홍복입니다.”

조정에서는 살벌한 피바람의 상흔을 잊기 위히여 다양한 위민정책을 내놓았고, 상감은 내치(內治)에 정성을 쏟았다. 중전과 함께하는 술자리에서 상감은 자주 세희공주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런 상감을 곁에서 지켜보는 정희왕후 역시 가슴이 아려왔다. 당장 세희공주가 살아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좀 더 세월이 흐른 뒤 상감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상감은 중신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왕권 강화책으로 백성들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폐기된 호패법을 다시 복원했으며, 또한 '동국통감'을 편찬해 전대의 역사를 조선 왕조의 입장에서 재조명하고, '국조보감'을 편수해 태조부터 문종에 이르는 4대의 법과 규약 등을 편집하여 후왕의 통치 법칙으로 삼았다. 또한 최항으로 하여금 '경제육전'을 정비하게 했으며, 왕조일대의 총체적 법전인 '경국대전'의 찬술을 시작했다.

정희왕후는 세희공주의 소식이 궁금했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지내고 있었다. 오래전 옥천현감이 자신에게 은밀히 보내온 보고 문서를 접한 뒤 공주가 보은이나 괴산 또는 상주의 어느 고을에 터를 잡고 살고 있을 것이라 짐작을 하였다.

그러나 날로 악화 되가는 상감의 안질(眼疾) 때문에 정희왕후는 늘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중전이 어의(御醫)와 상의하여 충청도 괴산 땅 초정리로 피접을 가기로 하였다. 그곳에서 나는 약수가 안질에 좋다고 소문이 났기 때문이었다.

“상감, 내달에 충청도 괴산 초정리라는 곳에 안질에 좋은 약수가 있다고 하니 피접(避接)을 가심이 어떠하신지요?”

“정사(政事)를 봐야하는 짐이 그 멀리까지 어떻게 피접을 간단 말이요?”

“상감, 정사도 중요하지만 소첩에게는 상감의 옥체보존이 더 중요합니다. 더 이상 안질을 방치하시다가는 더 악화하여 앞을 못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짐이 앞을 못 본다고요?”

“네에, 상감. 어의가 그리 진단을 하였어요. 그러니 다음 달 피접을 다녀오세요. 소첩도 상감과 동행하겠습니다.”

“중전, 고맙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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