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보시(布施)

“마음장상이 뭘까? 이년은 그게 무슨 듯인지 전혀 모르겠어요. 공주님, 알려주세요. 그게 무슨 뜻인지.”

“나도 아직 그 뜻을 명확히 모르고 있단다. 오늘밤 그 정체를 확인해 볼 거야. 내일 날이 밝으면 그 오묘한 이야기를 해주마. 기대하렴.”

“어머나, 공주님. 정말이지요?”

간전이는 따뜻한 물수건으로 요석공주의 몸을 살살 밀었다.

“간전아, 내 몸에 때는 없을 테니 너무 아프게 밀지 말고 구석구석 잘 닦으렴. 저녁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으니 자칫 몸에 멍자국이나 상처가 나면 큰일을 망칠 수 있단다.”

“염려 마시어요. 이 년이 공주님 목욕을 어디 한두 번 해보나요. 평생 동안 한 일인걸요.”

“간전아, 내 몸이 예전 같지 않지?”

요석공주는 동경(銅鏡)으로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공주님, 이 서라벌에서 공주님 몸매 따라갈 여인네가 아직은 없는걸요. 지소공주님도 빼어난 미모라고는 하나 아직은 젖냄새가 난답니다. 여자는 혼인하여 애를 한두 명쯤 뽑아내야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나올 데 나오고 들어갈 데 들어가야 남정네들이 탐내는 육덕이 된답니다.

공주님은 이미 딸 둘을 뽑으셔서 가슴이며, 엉덩이에 적당하게 살이 오르고 키도 크시니 서라벌 남정네들이 공주님이 서라벌 저자거리를 행차하실 때 마다 공주님을 훔쳐보기 위하여 구름처럼 몰린답니다.”

간전이는 요석공주의 하얀 피부에 살살 물을 뿌리며 재잘거렸다.

“네 말이 일리가 있구나. 나도 혼인하기 전에는 가슴과 엉덩이에 살이 별로 없어 걱정을 많이 하였단다. 그러나 김흠운과 혼인하여 딸 둘을 낳고 난 뒤로는 네 말대로 나올 데 나오고 들어갈 데 들어가더구나. 이제는 이렇게 찰지고 풍덕한 육신에 진정한 주인이 없으니 그것이 아쉬울 뿐이구나.”

“공주님, 흠운 장군님 돌아가신 뒤로 서라벌에서 이름난 화랑이나 미남자들을 많이도 만나서 밤낮으로 즐기시지 않으셨습니까?”

간전이는 자신의 말에 스스로 놀라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랬지. 그러나 진정한 사내는 아직 한명도 만나질 못했구나. 하나같이 풀죽만 먹고 살았는지 사내구실을 제대로 못하더구나. 신라의 사내들 중에 누가 나를 흡족하게 해줄 수 있을지.”

“공주님, 오늘밤은 공주님의 인생이 달라질 거라 믿어요. 법력이 태산같이 높고 오래 수련한 스님들은 운우(雲雨)도 대단할 것 같아요. 아마도 이 요석궁이 두 분이 쏟아내는 빗물에 휩쓸려 내려가지 않을까 걱정이랍니다.”

“그래. 당연히 그럴 테지. 안 그러면 나는 크게 실망할거야. 신라 최고의 불제자를 오늘밤 맞이하는 나는 벌써부터 심장 쿵쾅거리는구나.”

요석공주는 과연 원효스님이 부처님처럼 마음장상의 신체를 지닌 상태인지가 무척 궁금하였다.

“스님, 저 문천교(蚊川橋)만 건너면 요석궁까지 가는데 수월할 겁니다.”

원효스님이 요석공주와 오늘밤 신방(新房)을 꾸민다는 소문이 서라벌 저자거리에 파다하게 퍼졌다. 서라벌 홍등가는 물론 여염(閭閻)의 거리조차도 벌집을 쑤신 것처럼 시끄러웠다. 서라벌 사람들은 땅거미가 지기 전부터 원효스님이 지나갈 만한 길거리에 몰려들었다. 그중에서도 문천교는 벌써부터 원효스님이 지나갈 거라는 소문이 있었다.

“저기 원효스님이 온다.”

“드디어 땡중이 모습을 나타냈구나.”

“우와, 소문이 정말이었네.”

“이 길은 요석궁으로 가는 지름길인데 오늘밤 원효가 정말로 요석공주를 품어볼 요량인가 보네. 험-.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 것인지 원.”

“젠장, 우리 같은 버러지들은 언감생심이여.”

“중이 어떻게 공주를 품는단 말이여.”

“부럽다. 부러워. 중이 신라 제일의 미색(美色)인 요석공주를 다 안다니. 그렇게 법력이 태산 같다는 원효가 스스로 파계를 한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아. 말세로구나. 말세야. 중이 여인을 탐하려 스스로 부처님을 배신하다니.”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드디어 원효가 미쳐가는구나. 불제자로서 세속의 여인을 품다니. 이제 신라의 불성(佛性)은 끝나는가.”

“나무석가모니불. 아아, 원효스님이 부럽구나. 나는 언제 나라님의 부름을 받아 공주를 안아보나.”

“억울하면 원효처럼 불법을 공부해. 나라님에게는 지소공주도 있잖아.”

문천교 근처로 몰려든 서라벌 백성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으면서 원효스님을 가까이서 보려고 서로 밀고 떼밀며 안간힘을 썼다. 문천교 아래를 흐르는 물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다리 양쪽에 구름처럼 몰려든 서라벌 백성들의 시선을 의식한 원효스님은 마음이 무거웠다. 서라벌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부처로 칭송받고 있는 자신이 하룻밤 정욕(情慾)의 노예가 되어 믿고 따르는 서라벌 백성들의 눈을 피해가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보시오 군관.”

“스님, 부르셨소?”

“내가 목탁을 두드리며 저 문천교를 건너갈 거요. 내가 다리 한가운데 쯤 도달하면 나를 사정없이 저 다리 아래로 밀어서 내가 물에 빠지도록 해주시오.”

원효스님의 말에 군관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문천교는 서라벌 한 가운데를 흐르는 큰 내를 가로지르는 다리였다. 다리의 규모도 제법 커서 다리 아래에는 거지들이 살고 있었다. 원효스님은 문천교 아래 움막을 짓고 사는 거지들과도 잘 아는 사이였다. 먹을 것이 생기면 스님은 손수 움막 안으로 들어가 굶주린 거지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며 용기를 심어주었고 그런 원효스님을 거지들은 존경하며 따랐다.

소문을 듣고 문천교 아래 움막에 사는 거지 떼들이 문천교 위로 올라와 원효스님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행여 원효스님이 먹을 것이라도 주지 않을까 무척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저 멀리 원효스님이 군사들의 호위 속에 다가오자 거지들은 상심하였다.

“에이. 오늘은 스님에게 얻어먹을 게 없을 것 같다. 군사들과 함께 오니 다가설 수가 없겠구나. 얘들아, 움막 안으로 들어가자. 괜히 군사들에게 붙잡히면 경을 칠라.”

“왕초, 스님이 먹을 것을 안 주셔도 인사는 해야지요. 우리들을 얼마나 예뻐해 주시는데요."

“왕초, 맞아요. 스님에게 절을 올려야지요. 예전에 우리들에게 음식과 입을 옷을 얼마나 많이 주셨는데요. 아무리 거지지만 사람의 도리는 해야 하잖아요.”

거지들은 구경나온 사람들과 섞여 문천교 위에서 원효스님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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