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문천교

“원효스님이 다리를 건너신다.”

거지 아이가 소리 쳤다.

“나무아미타불. 원효스님을 뵙습니다.”

“나무석가모니불. 스님을 뵙습니다. 그간 여여하셨는지요?”

문천교 아래에 사는 거지 왕초가 거지들 서넛을 데리고 나가 막 문천교에 들어선 원효스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놈들, 어느 안전이라고 길을 막느냐. 어서 썩 비키지 못할까?”

“군관, 가만두시오. 나를 맞이하러온 신라의 불쌍한 백성이오.”

“스님, 건강하신지요? 저희들은 그냥 스님 얼굴이나 한번 뵈었으면 해서 이렇게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절 받으십시오.”

거지들이 일제히 원효스님에게 큰 절을 올리자 다리 양쪽에 서서 구경을 하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아미타불, 이들에게 부터님의 자비가 있으시길.”

원효스님은 입고 있던 가사와 장삼을 거지들에게 벗어주고 바랑 안에 있던 주먹밥을 거지들에게 건네주었다. 스님은 속옷 차림이 되었다.

“스님, 고맙습니다요. 아직은 이른 봄이라 날씨가 쌀쌀한데 보잘것없는 천한 거지들에게 옷을 내주시다니요.”

“스님, 감기 드세요.”

“아미타파, 나에게는 그 옷이 거추장스러울 뿐입니다. 그 옷을 가져가서 아이들에게 옷을 만들어 입히세요. 이제 소승이 가지고 있는 것은 보잘 것 없는 이 속옷 한 벌이 전부랍니다.”

원효스님이 문천교 다리 위에서 옷을 벗어 거지들에게 건네자 사람들은 놀라운 광경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과연, 원효스님은 살아있는 부처님이 틀림없구나. 우리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해.”

“우리들은 배불리 잘 먹고 잘 살면서도 저 거지들을 구박만 했지 한번 도와주지 못했다.”

“저 거지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고, 신라의 백성이다. 오늘 스님이 우리들에게 큰 깨달음을 주셨다. 그동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스님을 비방한 내 자신이 부끄럽구나.”

구경하던 사람들 틈에서 자성과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스님-, 저희들은 그저 스님 얼굴만 뵙고 싶었을 뿐입니다.”

거지들은 고개를 조아렸다. 원효스님은 속옷 차림으로 목탁을 두드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원효스님이 다리 한가운데 이르자 갑자기 군관이 다른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원효스님을 순식간에 밀어 다리 아래로 떨어트렸다.

“앗-, 스님이 다리 아래로 떨어지셨다.”

“저런. 스님이 다리 아래로 떨어지셨구나.”

“얘들아, 어서 물에 뛰어들어 스님을 구하자.”

원효스님이 다리 아래로 떨어져 물속에서 허우적거리자 거지들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병사들이나 구경꾼들은 소리만 지를 뿐 누구하나 물속으로 뛰어들지 않았다. 거지들이 원효스님을 물 밖으로 안전하게 모셨다.

“스님, 괜찮으세요. 어디 다친 데는 없으세요?”

군관이 다가와 무척 놀란 표정으로 원효스님에게 물었다.

“아미타불-. 소승은 괜찮습니다.”

원효스님 모습이 물에 빠진 새앙쥐처럼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여봐라, 너희들이 스님을 요석궁까지 안전하게 모시거라. 내가 너희들에게 수고비는 넉넉하게 주겠다.”

“나으리, 수고비는 필요없습니다.”

등치가 제법 크고 젊은 거지가 원효스님을 들춰 업고 뛰기 시작하였다. 문천교 주변에 몰려들었던 서라벌 사람들은 방금 전 자신들의 눈앞에서 벌어졌던 믿기 어려운 장면에 잔잔한 감동을 받은 듯 모두 말이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원효스님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합장한 자세로 ‘나무아미타불’을 연호하였다.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스님을 뵙습니다.”

“아미타파. 공주님을 뵙습니다.”

원효스님과 요석공주는 요석궁에서 대면하였다.

“스님, 문천교에서 떨어지셨다면서요?”

“나무아미타불. 소승이 한눈을 팔다가 그만-.”

“스님, 물을 따뜻하게 덥혀놓았습니다. 목욕부터 하세요.”

원효스님은 요석공주의 육체와 비단옷에서 풍겨져 나오는 향긋한 냄새에 취해 정신이 몽롱하였다.

“스님,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오늘밤 자루 빠진 도끼에 아주 단단하고 실한 자루를 박아주셔야 합니다.”

“아미타파, 여부가 있겠나이까. 소승이 신라의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썩은 기둥을 잘라내고 천년만년 이 나라 하늘을 지탱해 줄 금강석 보다 단단 기둥을 깎아드릴 것입니다.”

“스님, 무척 기대가 됩니다.”

“기대하셔도 됩니다. 소승 이미 단단한 자루를 준비하였습니다.”

두 사람의 말속에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외설스러우면서도 결코 그렇지도 않은 듯 했다.

“스님, 잠시 가만히 서 계셔요.”

요석공주는 흙탕물로 범벅이 되다시피 한 원효스님의 속옷을 벗겼다. 초면도 아니고 이미 수년전부터 궁궐 안에서 개최되는 법회나 분황사 혹은 다른 사찰의 야단법석(野壇法席)에서 수도 없이 봐 왔던 관계였다. 또한 최근에는 요석공주가 원효스님에게 모란꽃과 법복을 선물하기도 하였으며, 모후 보희부인과 함께 분황사로 원효스님을 찾아뵙기도 하였다.

알몸이 된 원효스님은 요석공주 앞에서도 전혀 부끄러워하거나 어색해 하지 않았다. 요석공주는 마른 수건을 원효스님에게 건네며 목욕물이 준

비된 방으로 안내하였다. 원효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합장으로 요석공주의 배려에 고마움을 표시하였다. 원효스님은 욕조가 준비된 장소로 발길을 옮기기 전에 요석공주의 방을 빙 둘러보았다.

방의 크기는 대략 성인 50여명이 앉아서 담소를 나눌 정도였으며, 벽은 붉은색과 황금색 그리고 보라색 벽지에 아름다운 선녀들이 춤을 추는 그림이 그려진 벽지로 장식되어 있고 바닥은 당나라에서 수입한 서역(西域)의 붉은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방 한쪽에 성인 두세 명이 누워도 넉넉해 보이는 상아로 장식된 침대가 있었는데 위로 노란 사(紗)로 된 장막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붉은 비단 이불과 다정하게 놓여 있는 베개 두개가 첫날밤을 준비한 동방(洞房)이 틀림없어 보였다. 침대 양쪽으로 어른 키만한 황촛대에 촛불이 너울거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방 한가운데는 둥근 탁자가 있었는데 10명이 빙 둘러 앉을 정도로 커보였다. 탁자 위에는 보통 사람들이 구경할 수 없는 산해진미가 태산처럼 쌓여 있었고 오방색으로 치장된 술병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술들로 가득 담겨져 있었다.

“스님, 어서 씻고 나오셔요. 이 방에는 저와 스님 단 둘 뿐이어요. 오늘밤부터 열흘간 이방에서 스님은 저와 머물러 있어야 해요. 저와 스님 그 누구도 이 방에서 한 발짝도 나가면 안 된답니다. 군사들이 문 앞을 지키고 서서 아무도 나가지 못하게 할 거에요. 이 모두가 부왕의 명령이랍니다.”

“아미타불. 부처님의 뜻이겠지요.”

“아버님의 뜻이던, 부처님의 뜻이던 아무려면 어때요?”

“두 분의 뜻이라면 소승은 이제 꼼작 못하게 되었습니다.”

“스님, 목이 말라요. 어서 목욕을 하고 나오셔요.”

“아미타불.”

원효스님이 목욕재계를 마치고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요석공주는 원효스님을 왕실의 옷으로 갈아입히고 마주 앉았다.

“스님, 너무 근사하세요. 이렇게 촛불아래에서 단 둘이 있으니 지아비와 지어미가 다정히 정담을 나누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합환주(合歡酒)를 준비하였습니다.”

“합환주는 혼례를 치른 신랑과 신부가 초야(初夜)에 마시는 술인데 소승과 공주님은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소승은 그저 옷이나 말려 입고 바로 나갈 참이었습니다.”

“아잉-. 스님, 너무 재미없으셔요. 정녕 그럴 뜻이 아니면서 그렇게 말씀하시기 에요?”

유리로 된 잔에 요석공주가 붉은색이 감도는 당나라에서 수입한 술을 가득 따라 원효스님에게 건넸다.

“아미타파.”

“스님, 오늘밤만은 제발 아미타불 좀 그만 찾으세요. 그 동안 수억 번도 더 그분을 호명하셨으니 극락에 계시는 아미타불께서 충분히 스님의 마음을 아셨을 거예요. 그러니 오늘밤에는 저 이외에는 아무도 찾지 마셔요. 아셨죠?”

“아미타불.”

“스님, 요석궁까지 오시느라 힘드셨지요. 이제는 아무 걱정 하지마시고 제 품안에서 평안히 쉬셔요. 일체가 유심조라고 스님께서 갈파하셨듯이 제 치맛속이 극락이라고 생각하셔요. 마음먹기에 따라서 지옥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여인의 진향 살 내음이 고된 산 생활에 찌든 원효스님의 오감을 서서히 무기력하게 만들기 시작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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