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몽중 신선이 되다

“하늘이 우리 두 사람의 합방을 축하하나 봅니다. 우리 두 사람은 이미 전생과 현생 그리고 미래세를 경험을 했습니다. 이제 부터는 전혀 다른 세상을 두루 구경을 하십시다. 공주께서 요지를 가고 싶어 하시니 소승이 인도하겠습니다. 이제부터 소승의 두 손을 꼭 잡고 절대로 놓지 마십시오.”

스님은 공주를 마치 악기 다루듯 하며 공주를 열락의 세상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공주를 무릎에 앉히고 접문(接吻)하며 무슨 주문을 외고 있는 듯 했다.

“서방님, 무척 가슴이 설레고 기대가 된답니다. 지금 이 곳은 서라벌 요석궁이 아니라 곤륜산 자락 요지가 맞는 거죠?”

“그럼요. 벌써 요지 가까이 들어왔습니다. 소승의 이끄는 대로 따라하셔야 합니다.”

이번에는 원효스님이 뒤에서 공주의 상체를 꼭 끌어안았다. 공주는 숨이 막힐 지경까지 되자 숨을 헐떡거렸다. 그러나 원효스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큰소리로 주문을 외쳤다. 주문은 어느 나라 말인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스님, 숨이 막힐 것 같아요.”

“참아야 합니다. 극락은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니 참아야 합니다. 두 몸이 일심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자, 준비 되었지요. 이제부터 오색구름으로 만든 운거(雲車)를 타고 전광석화보다 빠른 속도로 곤륜산을 향해 날아가겠습니다. 절대로 눈을 뜨시면 안 됩니다.”

“잘 알겠어요. 어서 빨리 요지에 들어 극락의 맛을 보고 싶어요. 스님, 아니 서방님.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나 봐요. 그리고 잠이 와요. 정신이 없네요.”

약간 거리를 두고 두 남녀의 율동을 보면 움직이는 것인지 아니면 전혀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이진 분간할 수 없었다. 그 같은 상태로 두 사람은 한 식경 쯤 가량 석상(石像)처럼 있었다. 원효스님은 쉬지 않고 주문을 외며, 공주에게 최면을 거는 듯 하였다. 이윽고 공주가 가수면(假睡眠) 상태가 되자 공주를 덥석 안아 침상으로 올라 비단요 위에 눕혔다. 스님의 명령에 공주는 마치 꼭두각시처럼 움직였다.

“어머나. 어떻게 저런 자세를-.”

“언니, 왜 그래? 스님이 무얼 어쨌는데? 나도 좀 보자.”

“조금만. 더 보고. 이제부터 두 분이 본격적인 행동에 돌입하나봐. 요석공주님이 너무 부럽다.”

문틈으로 내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훔쳐보고 있는 궁녀들은 침을 삼켰다. 처음 보는 환상적인 행위가 이어질 때마다 궁녀들은 신음을 토해내기도 하였다. 그녀들은 내실에서 두 사람이 벌이는 요지경 속 같은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요석궁은 억수처럼 퍼붓는 빗물에 떠내려 갈 것만 같았다. 시퍼런 불빛을 뿜어내며 하늘이 서라벌을 집어 삼킬 듯 폭우를 쏟아 부었다.

“어머, 저를 어째. 저런 희한한 자세를 스님이 어디서 터득하신 걸까.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네.”

어떤 궁녀는 비에 젖은 생쥐모양으로 내실을 훔쳐보며, 몸을 비비 꼬기도 하고 작은 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궁녀들은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더 몸이 달아 빨리 자리를 비켜달라고 재촉하였다.

“스님이 도만 닦는 줄 알았는데 속세를 떠나 있는 분이 어떻게 저리 능수능란하게 방사를 치룰 수 있단 말인가?”

“정말로 죽여주시네. 내가 이제까지 봐온 수많은 사내들 영물은 영물 축에도 끼지 못할 거야. 저리 우뚝한 영물이니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깎을 수 있을 테지. 상구보리 하화중생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을 스님이 언제 방중술을 터득하셨을까. 정말로 기가 막히구나.”

“얘, 너희들은 몰랐니? 고승들은 불법(佛法)뿐만 아니라 황제의 소녀경(素女經)도 터득한다잖아.”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짝이 있게 마련이다. 인연이란 짝을 만나면 서로 끌려 허락하는 것이니 뭇 짐승들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을 만날 때 ‘인연’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인연이란 말은 좋은 뜻으로 쓰는 경우가 많으나 사실 인연은 좋고 나쁨과 관계가 없다. 좋은 만남도 인연이며, 나쁨 만남도 인연이다. 인은 원인을 말하며, 연은 원인에 따라 가는 것이다.

인(因)만 있어서는 결과가 있을 수 없으며, 연(緣)만 있어서도 그 결실은 없는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사물일지라도 인연으로 일어나 인연으로 사라지지 않는 것은 없다. 즉 인과 연은 함께 존재하는 것이며, 악이 연을 만나면 악과(惡果)를 얻을 것이며, 선이 연을 만나면 선과(善果)를 이루게 된다.

부부의 연도 이와 같다. 만나야 할 사람이 만난 것이고, 그 만남이 좋은 결실이 되든지 때론 악연이 되든지 하는 것은 그 후의 인연과에 의해서 밝혀진다. 불타(佛陀)는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작은 인연이라 할지라도 하나도 헛된 것이 없다고 했다. 힘 센 자가 자기와 인연이 없는 사람을 아무리 탐한다 해도 그 인연은 결코 맺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남녀 간의 행동에서 하나의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감관의 문이다. 인간에게는 오욕(五慾)의 문이 있다. 이중에서도 가장 강한 것이 바로 감관의 문 앞에 놓인 음욕이다. 불타는 남녀의 애욕을 끊으라고 한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지 말고, 미워하는 사람도 만나지 말라’고 하신 말씀에는 헌신적 사랑을 할 수 없다면 시작하지 말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공주님, 저 아래 요지가 보이시죠?”

“네에. 잘 보여요. 이미 소문을 들어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저리 아름다운 곳인지 미처 몰랐답니다. 아아-, 모두가 옥(玉)으로 되어 있군요.”

요석공주는 신천지를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무척 들떠 있었다.

“저기 저 산은 곤륜산 서쪽에 있다는 군옥산(群玉山)이며, 서왕모의 궁전이 이곳에 세워져 있습니다. 요지(瑤池)는 군옥산이 둘러싸고 있는데 이름 그대로 그 연못물이 깊고 넓고 맑아 마치 투명하고 빛나는 아름다운 옥과 같습니다. 요지 주변에 선도복숭아 꽃 등 온갖 기화요초가 만발하여 인간의 언어로 그 절경을 감히 표현할 수 없답니다.”

“오늘이 무슨 날이기에 요지에 저리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나요?”

“공주님, 오늘이 아마 요지의 주인이 잔치를 여나 봅니다.”

“요지에서는 서왕모의 생일에 반도승회(蟠桃勝會)를 개최하거나 무슨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연회를 개최한답니다. 잔치에는 수많은 큰 신선들과 각지의 선관(仙官)과 신관(神官)들이 초대된답니다.”

“저기 아래를 자세히 보세요.”

“아-, 여기가 진정한 선계인가 봐요.”

산꼭대기에 네모난 광장이 있고 주위에는 경옥(硬玉)으로 된 난간이 둘러져 있으며, 사방의 구석마다 아홉 개의 우물과 아홉 개의 문이 나 있었다. 이 아홉 개의 문을 지나 들어가면 바로 서왕모가 살고 있는 궁전이 보이는데, 다섯 개의 성곽에 둘러 싸여 있으며, 열두 개의 높은 누각으로 꾸며져 있다. 누각의 오른 쪽에는 새의 깃털도 가라앉는다는 약수(弱水)가 있고, 그 왼쪽에는 요지가 자리하고 있다.

 

 

-계속-

 

저작권자 © 남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