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 싹을 바라보는 견해들  
고은희

잘라놓은 반 토막 무에서 싹이 돋아 나왔다 .할머니는 처녀적 사립문 같다고 하고 아버지는 막 빠져나오는 송아지 같다고 하고 나는 ,혁명 같다고 했다.

연속 재배하면 벌레 먹고 , 풀이 날개를 치면 한없이 나약해져 버리는 무 . 두더지가 지나간 자리를 싹둑 잘라 두었던 것인데 , 잘린 쪽은 이미 구름으로 덥혀져 있다 .

구름의 본성은 땅으로 스며들고 스며든 본성이 하늘을 닮아간다는 것 , 부채살 같이 퍼진 무의 속을 보면 알 수 있다 .무는 흰 구름과 파란 하늘이 함께 들어 있는 채소라서 , 무를 여러 번 말하면 맵고 지린 맛이 난다 .

구름에서 속 씨가 웅크리고 있다 . 모든 싹은 처음에는 속잎이었다가 , 속잎이 겉잎이 되는 동안 사립문이 헐리고 철대문이 달리고 , 송아지는 개의 값을 뒤집어쓰고 음매음매 컹컹 짖는다 .

그 사이 ,혁명은 손가락질 받았다.무청은 줄줄이 엮여 내걸리고 , 반 토막 무만 남아 필사적으로 싹을 틔우고 있다 . 철 대문에서 싹이 자라고 , 싹이 노란 송아지가 컹컹 짖는다.

한 개의 무를 할머니는 구름 쪽을 먼저 썰고 , 나는 파란 하늘 쪽을 먼저 썰자고 한다 .매운 입술이 내미는 혁명의 싹 , 반쪽 남은 무를 두고도 분분한 의견이 한 집에서 산다. 

이 한 편의 시만으로도 시인의 깊이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시다.

공부를 더 해야 하는 필자가 감히 건방지게 표현을 하자면 이 시는 무순을 엮어 매달 듯 썩은 무에서 난 싹을 두고 사립문과 송아지와 혁명과 그리고 구름과 하늘을 줄줄이 잘 반죽하여 솜씨 좋게 잘 엮은 것과 구절구절 시적 표현이 무청만큼이나 영양가 있는 훌륭한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세 줄만 쓰면 쓸 말이 없다고 한숨짓는 어르신들과 청년 학생들께 나는 언제나 ‘글이란 10 프로의 사실에 90 프로의 상상으로 글을 쓰는 것이기에 글감은 무궁무진하다.’라고 강조를 하고 있다. 말이 쉽지 그럴듯하게 상상한다는 것은 머리가 지날 일이다.

작곡이든 그림든 창작이라는 것은 대단한 상상력을 요구하고 있다.

명서영이 이 시를 두고 시적 표현으로 말하자면 창작이란 어려서는 엮이고 싶어도 엮일 수가 없는 무순이 오랜 인고의 기간을 겪어야만 가능한, 거꾸로 매달려야만 얻게 되는 또 다른 위대한 영양가의 탄생과 같다라고 말하고 싶다.

부지런하신 아버님께서는 해마다 가을이면 나무 울타리를 헐고 새 울타리를 만드셨다. 얼마 후에 어떤 나무는 새순이 돋는 경우도 있었다. 썩은 무가 마지막까지 싹을 틔우듯이 분명히 톱에 잘린 죽은 나무가 새끼줄에 엮이고 땅에 꽂혀 꽃을 피우는 생명의 위대함도 보았다.

옛날에는 흑과 백의 논리가 명확하였으나 요즘은 무엇이 옳은지조차 헷갈릴 때가 많다. 혁명이란 무엇이냐? ‘기존의 사회체재를 변혁하기 위하여 이제까지 국가 권력을 장악하였던 계층을 대신하여 그 권력을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탈취하는 권력 교체의 형식’을 혁명이라’고 사전엔 명명되고 있다.

한 마디로 그 나라의 주인은 군인이나 공무원이나 정치인이나 그런 권력자가 아닌 백성인 것이다. 언제나 국민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썩은 무에서 파란 희망이 돋아나듯이 언제 어느 때나 잘못된 일에 반기를 드는 혁명이 죽지 않고 늘 샘솟았으면 싶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아닌 혁명이었으면 좋겠다. 5.18이 다가오는 이즘에 우리 모두 자각할 일이라 생각하며 시인의 시적 상상력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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