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요지경 속에 빠지다

어머니께서 술과 안주 그리고 악사들과 무희들을 준비하였으니 이곳 요지에 머무시는 동안 극락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특히 신라에서 오신 두 분은 좋은 인연을 맺은 기념으로 이곳에 오셨으니 지상의 일은 모두 잊으시고 마음껏 복락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누구 눈치 볼 것 없으니 돌아가시면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유희를 즐기세요. 마음에 드시는 분이 있으면 저에게 말씀하세요. 그럼 제가 인연의 끈을 이어주겠습니다.”

“운화부인 최고입니다. 잘 놀겠습니다.”

요희의 소개가 끝나자 남녀 신선들은 무리를 지어 대청 안으로 들어 자리를 잡았다.

“요희입니다. 설랑은 신라국에서 고명하시다 들었습니다. 제가 한잔 올리겠습니다.”

요희의 얼굴은 백옥보다 희고 고왔다. 두 눈은 깊은 맑은 가을 호수와

같아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배시시 웃을 때마다 하얀 치아가 오색 빛을 발산하였고 알 수 없는 향기가 주변을 감쌌다. 요희가 요염한 모습으로 설랑에게 술을 따르자 요석공주의 눈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저희가 요지에 온 것은 금모에게 저희 두 사람이 천년가약을 맺었음을 고하고 저희 조국 신라가 삼한일통을 하는데 힘을 보태달라고 청을 하고자 함입니다. 신라에는 아직 태상노군님의 뜻을 받드는 이가 없으나 장차 좋은 뜻을 골라 장차 우리 신라국이 삼한을 통합하고 난 뒤에 혼란에 겪게 될 삼한의 백성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설랑의 말에 거침이 없었다. 요희는 이미 설랑의 외모에 반한 듯 반쯤 정신이 나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설랑께서는 이미 싯다르타의 말씀을 모두 깨달았다고 들었습니다. 능인(能仁)의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남삼한의 만백성들을 정토(淨土)로 안내하실 수 있다고 봅니다. 자신의 해탈에만 정진하는 다른 사문들에 비하면 설랑은 하늘이 내린 분이 분명합니다. 반드시 신라국이 삼한을 일통할 수 있도록 어머니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두 분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제가 방해를 한 것 같습니다.”

요희는 요석공주의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서당랑, 이제 우리 두 사람만의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요희가 서당랑에게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요희를 질투하시나 봅니다? 아무려면 내가 요희에게 마음을 주겠습니까? 공주께서 요희 보다 백배는 더 아름다운 것을요.”

“정말이죠. 정말로 제가 운화부인보다 예쁘죠?”

“그럼요. 옆에 있는 신선들에게 물어보세요.”

“아이 좋아라.”

요석공주는 박수를 치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였다.

“우리 두 사람은 지금부터 벌어지는 요지의 주연을 구경하며, 잔을 주고받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보시지요.”

“네에. 서당랑 아니지 서방님.”

대청 앞 광장에서는 술에 거나한 신선들이 나와 각자의 장기를 뽐내고 있었다. 왕상 신선이 여러 신선들에게 공손히 고개 숙여 인사를 한 후에 청룡으로 변신하여 하늘 높이 솟구쳐 오르더니 오색 구름조각을 만들어 뿌리고 바람을 불게 하였다. 내빈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하였다.

그때 요희가 이에 질세라 조화를 부려 거대한 붕새로 변하더니 하늘로 날아올랐다. 용과 붕새가 하늘을 이리저리 날며 신기한 재주를 선보였다. 붕새가 묘한 소리로 노래를 부르자 붉은빛 도화(桃花) 수백만 송이가 눈처럼 날리며 전각 지붕에 소복이 쌓였다.

이어 진인 장사평이 머리카락을 뽑아 공중으로 훅하고 불자 머리카락은 공작과 앵무새로 변해 허공으로 날았다. 새들이 날며 노래를 하자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었다. 진인과 동군의 오묘한 조화에 신선들은 소리를 지르며 환호하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며 집단으로 춤을 추기도 하였다.

주연 석에 좌정하고 있던 서왕모께서 일어나 재주를 선보인 신선들에게 친히 술을 따라 건네며 노고를 치하 하였다. 서왕모 옆에 앉아 있던 태상노군도 매우 유쾌한 듯 흡족한 표정이었다. 다음은 여선 중에서 가장 춤 솜씨가 좋다고 소문 난 여선 허비경이 손짓을 하자 검푸른 피부에 파란 눈의 서역인들로 보이는 남자 삼백여명이 칼을 빼들고 검무를 추며, 무대 위 아래로 드나들었다.

검무가 끝나자 얼굴을 붉은 사(絲)로 살짝 가리고 배꼽을 훤히 내놓은 오백여명의 무희(舞姬)들이 풍만한 엉덩이와 한 아름도 안 되는 야들야들한 허리를 돌리며, 주연이 벌어지고 있는 대청 안과 밖으로 빙빙 돌았다. 무희들의 현란한 몸짓에 시선들은 일시에 숨을 죽이고 무희들의 춤에 시선을 빼앗겼는데 이따금 남선들의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만 들렸다. 무희들의 춤사위는 모든 신선들의 혼을 빼놓았다. 무희들이 퇴장하자 남녀가 무대에 올랐다.

“방금 진나라에서 소사(蕭史)와 농옥(弄玉)이 도착하였습니다. 이들은 부부로 오늘 특별히 신라국에서 오신 설랑과 요석공주의 가약(佳約)을 축하하기 위하여 특별히 음악을 준비하였다 합니다. 여러분 두 분 신선을 큰 박수로 맞아주세요.”

대취한 동방삭이 비틀거리며 좌중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소사와 농옥을 소개하였다.

“저희 부부가 동방의 나라 신라에서 오신 설랑과 요석공주를 위하여 축하 음악을 준비하였습니다.”

소사가 설랑과 요석공주를 바라보았다.

“초면이온데 저희가 이런 호사를 누립니다. 고맙습니다.”

설랑이 일어나 합장하여 소사와 농옥 부부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였다.

“아울러 여러 진인들과 군자들을 모시게 됨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동안 저희 부부가 갈고 닦은 퉁소를 선보이겠습니다. 이쪽은 제 처 농옥입니다.”

“소녀, 진나라 공주로 태어나 낭군(郎君) 소사를 만나 신선이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의 초대에 응해주신 금모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멀리 신라국에서 오신 설랑과 요석공주의 가약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백합보다 예쁘고 이미 속세를 초월한 듯한 농옥의 자색은 현란하기 그지없었다. 농옥이 꾀꼬리 목소리로 인사를 하였다.

“어서, 두 분의 퉁소 소리를 듣고 싶소이다.”

술에 취한 남선들이 소리쳤다. 소사와 농옥이 다정한 모습으로 퉁소를 불기시작 하였다. 그때 주변을 날던 봉황, 백조, 황새, 공작(孔雀)이 가까이 날아와 퉁소소리에 맞춰 허공을 선회하면서 춤을 추었고 주변의 기화요초들 조차 향기를 뿜어대며, 소사와 농옥의 연주에 흥을 돋웠다. 서녘으로 흐르던 해와 달이 보라색 구름 속으로 모습을 감추자 오색의 꽃비가 내렸다.

“설랑님을 뵙습니다. 소녀, 항아라 하옵니다. 설랑의 고명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퉁소 소리가 청아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항아가 다른 원군들의 눈치를 살피며, 설랑 곁에 앉았다.

“항아님을 뵙습니다. 이분은 저의 반려로 신라국 요석공주입니다.”

요석공주는 눈을 반쯤 흘기며 항아를 노려보았다.

“항아님, 요즘에도 월궁에서 자숙하고 있는지요? 남편의 불사약까지 모두 드셨으니 영원히 죽지 않고 사시겠네요.”

“공주, 제가 저지른 일에 깊이 반성하고 있으며, 왕모께서 소녀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런 시선으로 보지 마셔요. 섭섭합니다.”

“오늘은 우리 부부가 초야를 맞는 날입니다.”

요석공주의 말에 항아는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았다.

“두 분에게 술 한 잔씩 올립니다. 진심으로 합궁을 축하해요.”

“항아님, 고맙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월궁에 한번 놀러 가겠습니다.”

“정말이지요? 두 분 같이 오셔요. 언제든 환영합니다.”

붉은 입술 사이로 비치는 항아의 하얀 치아가 잘 익은 석류알 같았다. 항아는 요석공주의 눈빛에 부담을 느꼈는지 금방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랑은 무척 아쉬운 표정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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