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농옥과 소사

“서당랑, 혹시 항아에게 마음을 두고 있는 거 아니시죠?”

“공주, 당치도 않소. 내 곁에 공주가 있는데 어떻게-.”

설랑은 입맛을 다시며 자꾸만 항아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서당랑, 우린 오늘 초야(初夜)입니다. 행여 다른 여선에게 시선을 빼앗긴다면 저는 슬퍼질 겁니다. 제 눈에서 눈물이 나오지 않게 해주셔요.”

“당연하지요. 험-.”

설랑은 그만 머쓱해져서 빈 잔만 만지작거리며 헛기침을 해댔다. 소사와 농옥의 퉁소연주가 끝나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왕자교가 신성들에게 인사를 하고 허공을 날며, 생황(笙篁)을 불었다. 요지 하늘을 날던 모든 새들이 모여들어 생황 소리에 맞춰 춤을 추었다. 퉁소 연주를 마친 농옥(弄玉)이 설랑에게 살며시 다가와 반절로 인사를 하더니 춤을 함께 추자고 청했다.

“소선은 아직 춤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제 손을 잡고만 있으시면 되는 걸요. 소녀와 한번 춤을 추시어요.”

설랑은 요석공주의 눈치를 살폈다.

“설랑, 한번 추시지요.”

설랑은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하자 농옥의 남편 소사가 큰 소리로 빨리 춤추지 않고 뭐하느냐며 크게 웃는다. 모든 진인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좋아라 웃었다. 요석공주도 설랑의 등을 떼밀었다.

“그럼. 딱 한번-.”

“서당, 저는 신경 쓰지 마셔요,”

공주의 말에 설랑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었다. 설랑이 농옥의 허리를 감으니 여신선 들의 탄성이 터졌다. 설랑은 가슴이 떨리고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다. 여선들과 진인들은 질투와 시샘의 시선을 보내고 서왕모와 태상노군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설랑님, 꿈만 같습니다. 지금 이 현실이-.”

농옥이 강하게 몸을 밀착하며 팔에 힘을 주자 설랑은 거북했다. 설랑이 이상한 주문을 외더니 설랑과 농옥은 한 쌍 원앙이 되어 천길 높이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원앙이 새들과 어울려 춤을 추자 수많은 신선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하였다.

“농옥님, 소문대로 절세가인이십니다.”

서랑은 농옥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허공에서 춤을 추면서도 설랑은 아래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요석공주에게 신경이 쓰였다.

“소녀는 오랫동안 불법과 도교에 정통하신 해동의 선랑님을 존경해 왔답니다. 이곳에 오래 머물며 소녀에게 남녀 간에 공존해야 하는 참 진리를 깨닫게 해주셔요.”

“그대에게 소사가 있거늘-.”

“그이는 밤낮으로 퉁소만 불고 있답니다. 저보다 악기를 더 애지중지 하시는 걸요.”

“이제 곧 내려가야 하겠습니다. 소선의 팔을 꽉 잡으세요.”

주연장의 신선들은 허공에서 춤을 추고 있는 두 사람을 올려다보며 술을 마셔댔다.

“소선은 갈현이라 합니다. 신라국 공주님을 뵙습니다.”

여인보다 더 아름다운 남선 갈현이 옥으로 만든 된 술병을 들고 와서 요석공주에게 술을 따르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갈현님, 영광입니다. 가까이 보니 요희보다 더 예쁜 얼굴이네요.”

요석공주는 갈현의 출현에 입이 함지박만큼 벌어졌다.

“요즘 이곳 요지에서도 신라국 소식을 자주 듣는 답니다. 조만간 귀국이 삼한을 통일할 거라 믿습니다. 그리되면 두 분께서 무척 바쁘실 듯 합니다. 부디 두 분이 합심하여 신라의 하늘을 떠받칠 단단한 기둥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두 분이 일심동체가 되심을 진심으로 경하합니다.”

“갈현님, 고맙습니다.”

“제 술 한잔 받으세요.”

요석공주는 수줍음에 그만 두 뺨이 붉게 물들고 말았다. 갈현의 얼굴이 어찌된 일인지 요희보다 더 빼어나 보였다. 백옥 같은 피부, 촉촉하고 붉은 입술, 샛별보다 맑고 영롱한 눈동자, 갈현은 공주와 시선이 마주치면 살짝 눈을 흘기며 미소를 지었다. 요석공주는 금방 갈현의 두 눈동자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기회가 된다면 소선이 공주를 초대하여 한담을 나누며 한잔 마시고 싶습니다. 이곳에 오래 머물며, 신라에서 맛보지 못한 지극한 쾌락을 즐기십시오. 소선이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네에. 그리하도록 노려해 보겠습니다.”

“그럼, 소선은 이만-.”

갈현은 허공에서 춤을 추고 있는 설랑을 힐끔 쳐다보고 요석공주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제 자리로 재빨리 돌아갔다.

‘정말로 빼어난 미남자로다. 지금껏 저렇게 잘 생긴 남자는 처음이로다. 어쩌면 남자가 여자보다 더 예쁘게 생겼을까? 서라벌에 저런 남자가 단 한명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꼬.’

공주는 마른 입술을 깨물며, 공중에서 농옥을 껴안고 춤을 추고 있는 설랑을 올려다보았다. 금방 설랑이 요석공주 곁으로 다가와 앉으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설랑과 공주가 술잔을 주고받으며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꽃들조차 질투를 하는 절세미인 태진부인이 시녀를 거느리고 설랑을 찾아왔다. 부인의 손에는 달에서 따온 계수나무 잎으로 담근 감로주 병이 들려 있었다. 한잔만 마시도 능히 천년을 산다는 아주 귀한 술이었다.

“오늘 금모(金母)께서 주청(奏請)을 하고 태상노군께서 심사 후, 옥황(玉皇)께서 그대를 신선의 네 번째 품계인 비천진인(飛天眞人)으로 임명하시었습니다.”

“소선을 비천진인에요?”

설랑은 무척 놀라워하였다.

“두 분은 공손한 자세로 하사품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 하사품으로 신라의 하늘을 떠받칠 하늘 기둥을 만드세요.”

설랑과 요석공주는 얼른 일어나 의관을 정제하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태진부인은 임명장과 함께 사악한 기운을 제어할 수 있는 파천검(破穿劍) 한 자루, 천상의 구름을 부르고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백우선(白羽煽) 한 개, 천리 밖 상황을 볼 수 있는 백명주(白明珠) 한개, 신령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오제육갑좌우령비부(五帝六甲左右靈飛符) 한권을 설랑에게 전했다. 물건을 전하면서 부디 신라국이 삼한을 통일하는데 유용하게 사용하시기 바란다는 말도 전했다.

“이제 두 분은 침전으로 드시어 푹 쉬셔야 할 시간입니다. 내일 그리고 모레, 글피. 시간은 많습니다. 멀리서 오시느라 피곤하실 터이니 그만 쉬도록 하세요. 그리고 이것은, 이것은 공주에게 특별히 드리는 책과 엽자(葉子)입니다. 초야를 보내는데 아주 유용하게 사용될 것입니다.”

태진부인은 요석공주에게 책을 내밀며 얼굴을 붉혔다.

“고맙습니다. 세세한 일까지 신경 써주시니 몸 둘 바를-.”

요석공주가 목례로 태진부인게 예를 표시하였다.

‘아직 더 놀다 잠자리에 들어도 되는데 벌써 자라고 하니. 이것 참-.’

설랑과 공주는 태진부인의 호의를 무시할 수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 시녀들을 따가 침궁으로 향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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