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운기를 부검하다
        임은주

그는 차디찬 쇳덩이로 돌아갔다

움직이지 못할 때의 무게는 더 큰 허공이다

돌발적인 사건을 끌고 온 아침의 얼굴이 쾡하다

피를 묻힌 장갑이 단서를 찾고 일순 열손가락이 긴장한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망치와 드릴이 달려들어

서둘러 몸을 빠져나간 속도를 심문한다

평생 기름밥을 먹은 늙은 부검의 앞에 놓인 식은 몸을

 

날이 선 늦가을 바람과 졸음이 각을 뜨는 순간,

그의 흔적이 남아있는 진흙탕과 좁은 논둑길이 나타난다

 

미궁을 건너온 사인(死因)에 집중한다

붉게 녹슨 등짝엔 논밭을 뒤집고 들판을 실어 나른

흔적이 보인다 심장충격기에도 반응이 없는 엔진

오랫동안 노동에 시달린 혹사의 흔적이 발견되고

 

 탈, 탈, 탈, 더 털릴 들판도 없이 홀로 2만Km를 달려 온 바퀴엔

  갈라진 뒤꿈치의 무늬가 찍혀있다

 

가만히 지나간 시간을 만지면

 그 속에 갇힌 울음이 시커멓게 묻어나온다

  소의 목에서 흘러나온 선지 같은 기름이 왈칵 쏟아진다

 

  임종의 안쪽에는 어느새 검은 멍이 튼튼히 자리 잡았다

  길이 간절할 때마다 울음이 작동되지 못하고 툴툴거린 흔적이다

   죽어도 사흘 동안 귀는 열려 있다는 말을 꼭 움켜쥔

   얼굴의 피멍이 희미한 눈빛부터 쓸어내렸다

 

   이제 습골(拾骨)의 시간이다

   정든 과수원 나무들이 마지막 악수를 청했는지

    뼈마디마다 주저흔이 보인다고 기름 묻은 손이 넌지시 일러주었다.

 

이 시는 어디서 많이 본 것처럼 화법이나 배경이 흔하고 친숙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인만의 시적 장치가 곳곳에 깔려 있어 신춘문예당선작품에 걸맞음을 증명하고 있다.

오랜만에 고향에 갔는데 옆 마을에 94살 윤씨 어르신이 돌아 가셨다고 마을 사람들이 조문을 가고 있었다. 그 어르신의 아드님은 나보다 1년 후배남자 아이이었는데 나와 친구들이 하굣길에 그 마을을 지나서 집에 오는 길이면 길가에서 지켜 서 있다가 우리를 구타하였었다. 이유는 자기네 마을을 밟고 간다는 일종의 텃세였다.

도망 다니던 어느 날 나는 그 후배아이가 던진 돌멩이에 맞아 팔에 멍이 들었다. 다른 여자찬구들은 뛰어 집으로 갔지만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서 그 아이 집으로 향하였다.

내가 맞은 사실을 아이의 아버지께 고하고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경운기를 내려놓으시던 아저씨는 이름은 무엇이며 아버님 성함은 무엇인지 질문을 하였고 내 앞에서 후배 아이를 야단치시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나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앓던 이가 빠진 듯 나는 모두 해결하였다고 생각하고 집에 와서 아무 말도 안하였는데 며칠 후 아버지께서 꼭 껴안아 주시면서 어머니께 후배 아이의 아버지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따님이 얼마나 똑똑한지 사막에 갖다놔도 살겠더군요.’ 라고 하였다.

지난 일이 생각나서 동내사람들 틈에 끼어 방금 돌아가신 어르신의 장례식장을 찾아간다. 후배 윤은 나를 몰라본다. 지난 이야기를 하였더니 나이 50이 넘어 주름 가득한데도 얼굴이 붉어졌다. 좋은 시를 읽으니 옛 생각에 젖으며 고향이 아름답단 생각도 함께 한다.

경운기 한 대가 또 시동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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