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천지조화

음양이 잘 조화될 때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조화되지 않고 깨지거나 역행하면 세상에 큰 혼란이 일어난다. 방술은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 안정되고 번영하게 돕는다.

사람도 남녀가 조화를 이루면 지극한 즐거움이 생긴다. 방술은 음양의 도를 중시한다. 남자는 양이니 양의 성질이 있고 여자는 음이니 음의 성질이 있어 천지가 화합하듯 교합하면 인간은 영원을 추구할 수 있다. 남녀의 은밀한 정사는 음양의 이치에 따라 진행이 되어야 그 뜻을 이룰 수 있다.

남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하늘과 땅은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어도 소통을 하니 서로에게 기운을 전달하여 천지의 조화를 이룬다.

남녀도 몸과 마음이 달라도 합궁을 통해 진정한 소통을 하게 된다. 그 소통은 단지 몸만 통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함께 소통이 되어야 한다. 마음의 소통이란 남녀가 진정한 애정을 가지고 관계해야 한다. 원치 않는 방사는 좋은 정(精)을 얻을 수 없으니 이것은 가뭄에 이슬비만 내리는 것과 같다.

“폐하, 비가 그쳤습니다.”

“요석공주와 원효스님은 아직도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느냐?”

“폐하, 방금 전에 두 분이 긴 취침에서 일어나셨다고 합니다.”

“어찌된 사람들이 삼일 밤낮 동안 잠을 잔단 말이야. 짐이 요석궁으로 가 볼 터이니 채비를 하라. 그리고 왕후는 두 사람이 일어났다고 하니 서둘러 혼례식 준비를 하도록 하세요.”

원효스님과 요석공주가 요석궁 침실에 든 지 삼일 만에 일어났다는 소문이 궁성 낭에 순식간에 퍼지고 말았다. 소문은 금방 서라벌에도 퍼지면서 호사가들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김춘추를 비롯한 왕실 사람들도 요석궁의 일을 두고 왈가왈부하며, 화제의 중심에 두고 상상의 날개를 펼쳤다.

“간전 언니, 그게 정말이에요? 공주님과 원효스님이 사흘 밤낮을 주무시고 일어나셨다는 이야기 말이에요.”

“너희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어야 해. 사실이야. 사흘 밤낮을 주무시고 방금 전에 기침하셨어.”

“그럼. 두 분이 잠만 주무신 거예요?”

요석궁에 궁녀들이 모여들었다. 하나같이 원효스님과 요석공주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너희들은 무엇이 알고 싶은 거니?”

“언니가 사흘 밤낮 동안 본 장면들을 모두 말해주세요. 엄청 재미가 있을 것 같은데요.”

“언니, 어서 언니가 본 일들을 말씀해 주세요.”

“간전 언니, 두 분이 어떻게 첫날밤을 보냈는지 무척 궁금해요.”

궁녀들은 간전이에게 매달렸다.

“내가 사흘 밤낮 동안 본 장면은 참마 입으로 다 말할 수 없어 미안하다. 나중에 내가 두고두고 이야기해 줄게. 너무 흥미진진하고 환상적인 이야기가 될 거야. 나도 너무 많은 장면을 훔쳐봐서 머릿속으로 일단 정리를 해야 해. 그러니 기다리거라.”

요석궁의 모든 살림살이를 책임지고 있는 간전이는 갑자기 궁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삼일 내내 요석궁 내실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나무아미타불. 폐하, 두 분 왕후님. 소승의 인사가 너무 늦었습니다. 용서하소서.”

“용서라니요? 이제 스님은 짐의 사위이며, 신라왕실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요석공주와 백년해로할 일만 남았습니다. 오늘은 두 사람이 새롭게 출발하는 날입니다.”

김춘추는 원효스님과 요석공주를 번갈아 보았다.

“나무석가모니불. 스님, 경하 드립니다. 우리 요석공주를 잘 부탁드려요. 두 사람의 인연은 곧 우리 신라 왕실의 경사입니다.”

문명왕후 김문희는 금방이라도 웃음보가 터질 것 같았다.

“나무관세음보살. 스님, 참으로 잘 오셨습니다. 요석공주의 생모로서 앞으로 요석공주와 스님의 앞날에 영광이 있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또한 스님의 법력으로 인하여 우리 신라왕실이 천년 제국으로 통일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폐하의 대업에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스님, 요석동생과 부부의 연을 맺게 되심을 진심으로 감축 드립니다.”

태자 법민은 유쾌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공주야, 사흘 밤낮 동안 신라의 하늘을 떠받칠 튼튼한 기둥을 만드느라 고생이 많았다. 사흘을 굶었을 테니 혼례식 끝나면 맛있는 거 많이 먹도록 하여라. 스님도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아버님, 고생이라뇨. 소녀 조금도 고생하지 않았어요. 소녀는 백일동안 잠을 자려고 했답니다. 요지에서는 소녀를 마음에 두고 있는 신선들이 여러 명 있었는 걸요. 아아, 언제 다시 갈현 신선을 만나 보려나.”

“공주야, 갑자기 요지가 무슨 소리더냐. 갈현 신선은 또 뭐고?”

“아미타불. 폐하, 소승을 이리 배려해주시기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혼신을 다해 폐하의 대의에 보탬이 되도록 하겠나이다.”

“공주야, 사흘밤낮이 모자랐던 게로구나. 앞으로 시간이 많으니 백일 아니라 천일이라도 자려무나. 네가 요지경 속을 다녀온 게로구나. 자주 다녀오거라. 네가 마음에 들어 하는 갈현인가 뭔가하는 신선도 만나보고. 스님, 짐의 대업을 돕겠다니 무척 기대가 됩니다. 신라 왕실에 큰 경사입니다. 짐이 삼한을 일통하면 뒷수습을 할 인재 하나만 생산하도록 도와주시면 된답니다.”

“나무아미타불. 폐하, 염려하지 마십시오. 부처님께서도 도와주시리라 소승은 굳게 믿고 있습니다. 하루 빨리 백성들을 전장에서 벗어나게 해야 합니다. 백성들이 많이 지쳐있습니다.”

원효스님은 김춘추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합장을 하였다.

“스님, 신라는 부처님의 나라입니다. 지금 북방의 당나라 오랑캐와 바다건너 왜적들은 삼한을 집어 삼키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곧 우리 신라가 삼한을 통일 할 거라 믿습니다. 짐과 법민이 통일을 위하여 양손에 피를 묻힐 것입니다. 통일 후에는 민생을 안정시키고 백성들은 흐트러진 마음을 다독거려 줄 문필(文筆)이 필요합니다.”

김춘추의 주문에 원효스님은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나무아미타불. 소승이 이미 왕실과 신라를 떠받칠 천주(天柱)를 준비하였습니다.”

“듣던 중 고마운 소리입니다. 짐은 스님만 믿겠습니다.”

“폐하, 곧 혼례식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사흘 동안 내린 비로 서라벌은 자칫 물에 잠길 뻔하였다. 사람들은 요석궁에서 시작한 비가 신라 전역에 내렸다면서 엉뚱한 이유를 댔다.

“폐하, 만세.”

“요석공주 천세.”

“신라국 만세-.”

요석궁에서 성대한 혼례식이 거행되었다. 신라 왕실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조정의 만조백관들이 모두 요석궁에 모여 요석공주의 새 출발을 축하하였다. 김춘추는 흉악범을 제외하고 대사면령을 내려 죄인들을 풀어주었다.

“경들은 들으시오. 오늘부터 백일 동안 서라벌 전역에서 축제를 열 것이오. 이 기간 동안 짐을 비롯한 왕실과 진골, 육두품, 오두품 인사들은 백성들과 어울려 흥겨운 시간을 가지도록 하시오. 또한 축제기간 동안 서라벌 안에 있는 모든 주점과 기루에서는 술값의 반만 받도록 할 것이오. 술값의 나머지 반은 왕실에서 댈 것입니다. 이는 신라 하늘을 떠받칠 든든한 기둥을 세우는 의미에서 짐이 제안하는 일이니 만백성은 시름을 잊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록 하시오.”

신라의 지엄한 왕 김춘추의 포고에 서라벌 저자거리는 흥분의 도가니가 되어 들썩거렸다.

“과연 김춘추는 대인의 면모를 지녔도다.”

“원효스님이 과연 어떤 기둥을 만들어 주실까.”

“원효가 드디어 방하착하였구나.”

“우리 같은 백성들은 나라님이 주시는 술이나 퍼마시면서 박수나 쳐대면 그만이오. 내 배 부르고 등 따시면 최고 아니겠소.”

서라벌 백성들은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흥청망청 먹고 마시며, 대왕 김춘추를 칭송하였지만 원효스님의 파계에 대하여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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