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위한 기도
이해인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더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더러는 다른 이의 가슴속에서
좋은 열매로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언어의 나무
내가 지닌 언어의 나무에도 멀고 가까운 이웃들이 주고 간
크고 작은 말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습니다

둥근 것, 모난 것 밝은 것, 어두운 것 향기로운 것, 반짝이는 것
그 주인의 얼굴은 잊었어도 말은 죽지 않고 살아서 나와 함께 머뭅니다
살아있는 동안 내가 할 말은 참 많은 것도 같고, 적은 것도 같고
그러나 말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세상살이
매일매일 돌처럼 차고 단단한 결심을 해도 슬기로운 말의 주인 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중략-

이 시를 읽으니 기도를 드리는 수녀님의 정갈한 모습을 보는 듯하다. 이렇게 맑은 마음이 부럽다. 하나님이 많은 사물과 사람을 만들었는데‘사람 중에는 진짜 사람다운 사람은 한 두 명뿐이고 70프로는 동물에 가깝더라’라고 하였다.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행동과 기본만 지켜도 사실 다툼은 적을 것이나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같을 수가 없기 때문에 마찰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동물까지 거닐고 사는 사람이 지능이 좋아질수록 더욱 사악해 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기주는 [언어의 온도]란 책에서 “말과 글은 머리에만 남겨지는 게 아닙니다, 가슴에도 새겨집니다, 마음 깊숙이 꽃힌 언어는 지지 않는 꽃입니다. 우린 그 꽃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진심어린 사과는‘널 아프게 해서 나도 아파’라는 뉘앙스가 스며들어 있다.‘진짜 사과는 아픈 것이다” 라고 하였다.

동물은 싸울 때 자기 몸으로만 싸웠지만 머리 좋은 인간은 도구 이용은 물론 권모술수權謀術數까지 하여 모두 무찔렀다. 원초적으로 남을 이용하고 속이는 것은 인간을 따를 자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 스스로 병을 얻었다. 얼마나 사람에 대하여 염증이 났으면 첩첩 산중으로 섬으로 떠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지겠는가?

80대 노교수님께서 건강하게 잘 사는 법에 대하여 쓴 글을 보았다. 요약하면 노여움과 원한에 대하여 자유로운 것이 건강하게 잘사는 비법이라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준 상처에 대하여 그 사람을 용서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노여움이나 서운함까지도 깨끗이 응어리를 없애는 것이 진정한 용서라고 하였다.

말이란 마음에서 머리에서 생각한 것에 대한 단순히 전달이며 표출이라고 본다. 내가 마음을 어떻게 갖느냐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말이 나오고 원수가 되고 용서가 되기 때문이다.

암도 당뇨도 가장 큰 원인이 스트래스라고 한다. 사람과 더불어 살다보니 갈등도 겪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또 상처를 받았어도 빨리 마음속에서 노여움을 지워서 200년 거뜬히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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