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고려인도 몽고인도 아닌 세자

“세자마마, 아니 되옵니다. 소첩의 조상들도 신라 때부터 벼슬을 했었 습니다. 한번 폭군(暴君)이라는 오명이 붙으면 역사에 남아 영원히 지울 수 없습니다. 개경에 가시더라도 반드시 철저한 조사를 해보신 뒤에 도 저히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지은자만 선별하여 처벌하셔야 합니다.

보위에 오르시기도 전에 백성들에게 무서운 인상을 남기시면 나중에 정사를 돌보기가 어렵습니다. 참으셔야 합니다. 아셨죠?”

“네 말대로 하마. 개경에 가면 그놈들을 다 죽이려고 했다.”

벌써 불콰해진 왕원은 초란을 끌어안고 육신을 탐하려 했다. “세자마마, 소첩이 이런 말씀드린다고 역정 내시면 안 됩니다.”

초란은 왕원의 뺨에 입술을 대고 속살거렸다.

세자마마는 장차 고려국 을 다스리실 존귀한 분이십니다. 부왕의 뒤를 이어 고려를 다스릴 분이 시라고요. 개경의 왕비마마를 죽음에 이르게 한 세력들이 정말로 존재한 다면 그들이야 말로 진정한 고려의 충신들입니다.

나중에 귀국하시어 보 위에 오르신다면 친원파의 말만 듣지 마시고 친원파 들과 척을 지고 있는 자들의 말도 들어보셔야 합니다. 세자마마께서는 오랫동안 원나라에 머물러 계시니 몽고인들의 속성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들을 믿으시면 안 됩니다.

고려는 빨리 비열한 몽고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야 합니 다. 칠백 년전 몽고족들은 고구려 제국의 일개 부족민이었습니다. 지금 자신들의 인구보다 수십 배나 많은 한족을 단지 무력으로 다스리려고 획 책하는 몽고인들의 나라는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세자마마께서 몽고인들이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간 뒤의 일을 준비하셔야 합니다. 단순히 왕비마마님의 원수를 갚는 데에만 몰두하지 마시고 먼 미래를 생각하셔요. 어쩌면 이 같은 상황이 세자마마에게는 기회일 수도 있습니 다.

원제국의 절대적인 힘을 이용하여 심양 지역을 포함한 광활한 대륙 을 고려의 땅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소첩은 세자마마의 능력을 믿습 니다. 이번에 고려에 가시면 술과 계집들의 치마폭에 쌓여 정사를 돌보 지 않는 허깨비 같은 고려왕을 퇴위시키고 즉시 보위에 오르세요. 테무 르 황제와 상의 하시면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왕원은 초란에게 술이 깨는 소리를 듣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네가, 나의 스승이로구나. 과연 초란이다. 장차 내가 보위에 오르면 너를 개경으로 불러들여 후궁으로 앉히고 책사(策士)로 삼을 것이야.”

세자와 초란은 새벽녘이 돼서야 술판을 끝내고 동침하였다. 원나라 황 제 테무르는 고모인 고려왕비의 장례식에 참가할 조문사절단을 꾸리고 왕원과 함께 고려로 파견하였다. 마음이 급한 왕원은 쉬지 않고 남쪽을 향해 말을 달려 열흘 만에 개경에 도착하였다.

“어머니, 왕원입니다. 어머니를 지켜드리지 못한 불효를 용서하소서. 소자가 반드시 어머니의 원한을 풀어드리겠습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세요.”

왕원은 왕비의 빈청(殯廳)에 엎드려 오랫동안 목 놓아 울었다. 그는 원나라에 가있느라 어머니를 가까이서 모시지 못한 송구스러움에 할 말 이 없었다.

“세자마마, 왕비마마님의 측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원나라 조문단과 함께 개경에 도착한 왕원은 마치 정복군주처럼 행동하며 마구망발 날뛰었다. 그는 어머니 홀도로게리미실이 어떤 보이지 않 는 거대한 저주와 악기(惡氣)로 인하여 사망하였다는 이야기를 원나라 에 있을 때부터 황제의 어의를 통하여 듣고 있던 터였다. 왕원은 삼가 장 순용, 홀라대 인후를 비롯한 겁령구 들과 고려인 친원파 세력들을 불러 엄명을 내렸다.

“나는 원나라 세조황제의 손자이며 고려의 왕세자입니다. 지금부터 나 의 말이 곧 이 나라의 법입니다. 경들은 어마마마의 가신(家臣)이며 동 시에 나의 충복(忠僕)입니다. 어마마마가 서른아홉 젊은 나이에 돌아가 신 배후에는 어머니를 반대하는 악의 세력들과 부왕의 총애를 믿고 날뛰 는 계집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어마마마 장례 준비로 바쁠 것입니다.

그 러나 우리가 할 일은 해야 합니다. 한 달 내로 어머니를 돌아가시게 한 원흉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원흉들을 찾아서 내 앞에 무릎 꿇리지 못하 면 그대들의 목을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그대들이 나를 실망시키지 않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겁령구 들과 친원파 중신들은 세자 왕원에게 하냥다짐하고 두 눈에 불 을 켰다. 그들은 밤낮으로 왕비를 죽음에 이르게 한 세력들과 증거를 찾 느라 혈안이 되었다. 세자와 친원파 들의 부산한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던 국내파들은 숨죽이고 납작 엎드려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도장군, 이참에 군부와 협력하여 세자와 친원파 들을 모두 척살하는게 어떻습니까?”

송린의 집에 국내파 인사들이 모였다. 송린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 거리면서도 우려하는 눈치였다. 침묵하고 있던 도성기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당장 친원파 들을 처단한다고 하여 원나라의 간섭을 막을 수는 없습 니다. 그들을 척살하고 나면 원나라가 대규모로 군대를 보내 전쟁을 하 려 들것입니다. 그리될 경우 고려는 지금보다 몇 배는 더 힘든 상황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무비가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도장군님의 말씀에 일리가 있습니다. 고려가 원나라의 복속에서 해방되는 시점은 자 중지란으로 원나라의 세력이 약화되거나 송나라 잔존 세력들이 원나라 에 대항하여 반기를 들 때입니다. 지금은 친원파 들을 모두 몰아내는 것 보다 몽고 출신 왕비의 죽음을 계기로 친원파 들의 세력 확장을 차단하 고 더 이상 고려 조정에서 발호(跋扈)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친원파 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으신 폐하의 건재함을 유지하 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 왕원의 명령에 의하여 친원파 들이 우리 국내파 의 뒤를 캐고 있습니다. 무녀 천옥과 초비는 저들이 알지 못하는 곳으로 빼돌렸습니다. 지금 몽고녀의 상중(喪中)이니 우리는 당분간 숨을 죽이 고 있어야 합니다. 절대로 경거망동하면 안 됩니다.

비록 여인의 몸이지 만 무비는 정세를 판단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무비의 의견에 국내파들은 동조하면서도 답답한 마음을 풀길이 없었 다. 한 달이 지났지만 친원파 세력들은 왕비의 죽음과 관련하여 특이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왕원은 친원파 들에게 최후의 통첩을 하기에 이르렀다. 왕비의 장지는 개경에서 서쪽으로 50여리 떨어 진 개풍의 여릉 지역으로 정하고 고릉(高陵)이라 하였으며, 9월에 장례 를 치르기로 하였다. 고려 조정에서는 그녀에게 장목인명왕후(莊穆仁明 王后)라는 시호를 내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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