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구국의 혼(魂), 의녀 시무비

초비는 고문을 참지 못하고 혀를 깨물고 자진하고 말았다. 왕원은 천 옥과 초비로부터 자백을 받아내는 데에는 실패하였지만 연희를 증인으 로 하여 사건의 전말을 마무리 하고자 했다.

더 이상 사건을 길게 끌어 왕과 또 다른 세력들의 반격이 있을 경우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자마마, 이번 변고의 중심에는 무비가 있고 국내파들이 다수 포함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모두 처단할 수는 없습니다. 나중에 세자마마께서 보위에 오르실 때를 생각해서 주동자 서너 명만 선별하여 본보 기로 처단하심이 좋을 듯합니다. 원의 다루가치(達魯花赤)가 세자마마 의 처결을 세밀하게 지켜보고 있을 것입니다. 그에게 잔인하다는 인상을 주면 절대 안 됩니다.”

인후는 충심어린 말로 왕원을 설득하였다.

“인대부의 말대로 하리다.”

왕원은 나머지 죄인들에 대한 추국은 형조의 중신들에게 맡기고 부왕 을 찾았다. 왕원은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왕을 억지로 깨워 대면하 였다. 왕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 네가 웬일이냐?”

“어마마마께서 돌아가신 이유를 알아냈습니다.”

왕원은 무비와 국내파들을 잡아들여 문초한 내용을 고하였으나 왕은 조금도 놀라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왕원은 무비와 그녀의 측근들을 왕비 를 죽인 죄인들이라며 조속한 처벌을 청하였다.

“아직, 네 어미의 장례도 치르지 않았다. 장례를 치르고 삼년상을 마친 후에 그 문제에 대하여 다시 논의하자. 과인이 요즘 국사를 처결하느라 무척 피곤하니 그만 물러가라.”

“아바마마, 모후의 삼년상을 마친 후에 다시 논의 하자니요? 당장 처 벌해야 합니다. 그들을 살려두고 모후의 장례를 치를 수는 없습니다.”

“어허, 네가 뭘 안다고 나서느냐? 어린 나인의 말만 믿고 어찌 그 같은 일을 벌이려 하느냐. 어서 물러가라고 했다.”

왕원은 이미 부왕이 무비와 그녀의 측근들을 벌할 마음이 없음을 간파 하고 친원파 중신들을 불렀다. 이대로 있다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왕원은 부왕이 무슨 조치를 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치고자 하였다. 그는 모후의 장례식 전에 왕비를 죽게 했다고 믿는 무비와 그들의 측근들을 처단하고 싶어 했다.

“부왕은 이미 원나라 황실로부터 신임을 잃어 고려국을 통치할 실권 을 잃었소이다. 원제국 황제는 어마마마의 조카입니다. 내가 고려로 올 때 황제께서 나에게 밀명을 내리셨습니다.

하여, 지금부터 나 왕원이 왕 권을 행사하겠소이다. 시무비, 도성기, 김근, 최세연, 전숙, 방종저를 지 금 즉시 참수하여 목을 성문 밖에 내 걸어 일벌백계로 삼도록 하시오. 또 한 그 죄의 정도가 높은 자들은 원지에 부처하시오.”

“세자마마, 전하께서 윤허하지 않으셨는데…….”

장순용이 왕원의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경은 고려의 신하요? 아니면 원나라의 신하요? 어머니의 겁령구로 원에서 왔으면 주인인 어머니를 위하여 목숨을 바쳐 지켜드렸어야 했거 늘 고려왕이 벼슬을 줬다고 본분을 망각하고 이제는 고려인이 된 것이 오?”

왕원이 신경질을 내자 장순용은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찧으며 울먹였다.

“세자마마, 소신을 죽여주소서.”

현재의 상태에서는 고려의 왕보다 쿠빌라이의 손자이면서 고려의 세자 인 왕원의 권위가 왕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장순용이었다.

“경에게 다시 한 번 명하겠소. 이건 원나라 황제의 명령이나 같소. 지금 즉시 감옥에 갇혀 있는 자들 중에서 시무비, 도성기, 김근, 최세연, 전 숙, 방종저를 끌어내 참수하시오.”

왕원의 명령이 떨어진 다음 날 새벽, 시무비를 비롯한 여섯 명은 형조 앞마당으로 끌려나왔다. 왕으로부터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던 무비는 낌새를 알아차리고 생을 단념하였다. 형조의 관리들을 대신하여 인후 가 세자의 뜻을 전했다.

“시무비는 들어라. 너는 천출의 신분임에도 전하의 총애를 믿고 오만 방자하게도 불충하고 악행을 저질러 왕비마마를 돌아가시게 하였다. 이에 세자께서는 너를 참수하여 일벌백계로 삼고자 하신다.”

“폐하를 뵙게 해주시오. 폐하를 뵙기 전에 나는 형벌을 받을 수 없소.”

“지금 고려를 다스리는 분은 왕이 아니라, 왕원 세자이시다. 왕을 만나 도 소용없다. 고려에서 너를 보호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처벌 을 달게 받을 지어다.”

“고려국왕의 총애를 받는 몸으로서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겠소. 폐하께 전해주시오. 이 총비는 억울하게 죽지만 저승에 들더라도 폐하의 안위와 고려 백성들의 안녕을 위하여 일념으로 빌고 또 빌 것이오.

그리고 왕원 에게 전하시오. 고려의 왕세자면 왕세자답게 고려 백성을 위하여 나라에 충성하고 원나라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궁리를 하라고 하시오. 역사는 반드시 왕원의 그릇된 행위에 대하여 기록할 것이고 그는 영원히 이 땅의 후손들에게 못난 왕자로 기억될 것이오.”

무비의 청은 묵살되었다. 동이 막 터올 무렵 고려의 의인(義人) 시무 비는 망나니가 휘두른 칼에 목이 잘리고 말았다. 무비를 비롯한 6인의 목이 만월궁 앞 공터에 세워진 여섯 개의 긴 장대에 걸렸다. 그 아래에는 대역부도(大逆不道)라는 붉은 글자가 쓰여 있었다.

그리고 감옥에 잡혀 왔던 국내파 인사들 중에 마음을 돌려 이실직고한 자들은 무죄 방면하고 죄가 무겁다고 판단된 40여명은 절도(絶島)로 유배를 가거나 오지에 부 처(付處)되었다.

뒤늦게 무비가 세자에 의해 참수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왕은 식음을 전폐한 채 열흘 밤낮을 울면서 무비의 이름을 불렀다. 왕은 왕비 홀도로 게리미실의 장례를 치루고 왕위를 아들 왕원에게 양위한 뒤에 태상왕으 로 물러났다. 태상왕은 가까운 사찰을 찾아 시무비의 명복을 빌었다. 원나라 황제는 고려국 왕비 홀도로게리미실에게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를 추봉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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