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기울어가는 당제국의 운명

두 지역 봉기군의 기세가 점점 드세지자 황제 이현은 토벌군을 소집하 고 번진의 절도사들에게 봉기군을 진압하도록 명하였다. 그러나 절도사 들은 황제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당 왕조는 이미 절도사들에 대한 통제력을 잃은 상태였다.

“폐하, 절도사들이 움직이지 않으려 하옵니다.”

“전령자, 이 일을 어찌해야 하오?”

환관 전령자를 아버지처럼 받드는 황제는 대신들이 아닌 전령자에게 해결책을 물었다.

“소신의 생각으로는 절도사들이 명령을 듣지 않으니 우선 황소와 왕선지에게 벼슬을 하사하시고 나중을 도모하소서.”

다급해진 황제는 봉기군 수장들에 대한 회유책을 강구하게 되었다. 황제는 왕선지에게 좌신책군압아 겸 감찰어사를 제안하였다.

“황제가 일개 소금밀매업자였던 나에게 압아와 어사직을 내리겠다고? 나의 평생소원이 벼슬을 하는 것이었는데 참으로 잘되었어.”

왕선지는 당 황제의 제안을 받고 기뻐하였다.

“왕장군, 그 벼슬은 황제의 기만술책입니다. 하찮은 벼슬을 내리고 우리 봉기군을 잠재우려는 야비한 수작이란 말입니다.”

황소는 왕선지 보다 한수 위였다. 왕선지는 동요하였지만 황소는 당 조정이 자신들에게 보잘 것 없는 관직을 주어 봉기군을 제압하려는 속 셈을 눈치 챘다. 왕선지와 황소는 황제의 회유책을 거절하고 군사행동에 돌입하였다.

“나 황소는 왕선지 장군과 보조를 맞춰 당 왕조를 멸망시킬 것입니다. 나와 제장들은 멸사봉공하는 자세로 임하겠소이다. 이 황소를 믿고 따라 주시오. 자, 장안성을 향해 진격합시다. 황제와 탐관오리들에게 짓밟혀 죽지 못해 사는 백성들을 해방시킵시다.”

왕선지는 장안의 서쪽으로 황소는 동쪽으로 각각 진격하였다. 왕선지 는 복주와 조주를 공격했다. 왕선지는 기세를 몰아 기주를 점령하고 악 주를 함락시켰으며, 이어 송주와 안주, 복주, 영주와 형남 등 각지에서 전투를 벌이면서 승승장구 하였다.

그러나 호북지역으로 출전했던 왕선 지는 황매(黃梅) 전투에서 당나라 장수 증원유(曾元裕)에게 패해 전사 하고 말았다. 왕선지의 휘하 군관들이 황소를 찾아왔다.

“왕장군이 황매전투에서 관군이 쏜 화살을 맞고 어이없이 죽고 말았 소. 한참 기세를 올려 장안을 향해 진격할 시점이니 주온(朱溫) 부장은 속히 왕선지 장군 휘하에 있던 군사들을 우리 봉기군에 통합시키도록 하 시오.”

황소의 부장 주온은 뛰어난 무술과 전략으로 황소의 군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는 가난한 농부출신이었다. 일찍 아버지를 여위고 형 주존(朱存)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친척뻘 되는 사람의 땅을 빌어 소작하며 살았다. 그는 큰 뜻을 품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농사를 지으 면서도 그는 학문과 무예에 전념하였다. 황소가 산동에서 봉기하자 주온 은 자신에게 때가 왔음을 알고 형 주존과 함께 황소의 봉기군에 가담하 였다. 형제는 용감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투에서 백전백승하는 전과를 올 려 일찌감치 황소의 눈에 들어 승차를 거듭하였다.

“저희들은 황소 장군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왕선지의 부하들은 모두 황소에게 의탁했으며 황소는 충천대장군으로 추대되었다. 왕선지의 대군까지 흡수한 황소는 60만 대군의 두령이 되었 다. 그는 대군을 이끌고 하남, 산동 및 강서, 복건, 광동, 광서, 호남, 호북으로 이동하며, 차례로 황제의 영지를 접수하였고 그 여세를 몰아 낙 양(洛陽)으로 향했다.

“낙양만 함락시키면 장안성은 저절로 우리에게 들어오니 제장들은 전력투구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낙양 부근에 수십만 관군이 집결하여 황소의 봉기군을 토벌하 려 했다. 황소는 급할 게 없었다. 그는 전략을 바꿔 낙양을 뒤로하고 광 주로 진군하여 광주성을 함락시켰다. 서기 880년에 황소는 대군을 이끌 고 다시 낙양을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이어서 그는 당 제국의 수도인 장 안(長安)으로 향했다.

“낙양이 황소에게 떨어졌다고?”

당 황제 이현은 대신들과 서둘러 사천으로 피란을 떠났고 미처 피란을 가지 못한 대신들은 황소에게 투항하였다. 황소는 장안성에 무혈입성 하 였다. 피난 가지 못한 당 조정의 대소신료들과 황실 사람들 그리고 장안 의 모든 백성들이 나와 무혈입성하는 황소를 환영하였다. 백성들은 지긋 지긋한 당 왕조의 가렴주구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에 황소와 봉기 군들을 맞이하였다.

“나는 당 왕조의 착취와 압박으로부터 백성들을 구하기 위하여 군사 를 일으켰습니다. 전장을 누빈지 칠 년 만에 무능하고 주색잡기에 정신 이 나간 황제를 몰아냈습니다.

이제부터 전국의 백성들은 나를 믿고 예 전처럼 생업에 전념하면서 새로운 나라 건설에 적극 협력하여 주시기 바 랍니다. 봉기군들이 백성들의 재물을 탐하거나 인명을 해치면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천지가 개벽되었습니다. 나를 믿고 따라주십시오.”

황소는 장안에 입성한 뒤에 지지자들의 추대를 받아 황제의 자리에 올 라 국호를 대제(大齊)로 정하고 연호를 금통(金統)이라 하였다. 그는 당 왕조의 관료들과 부자들의 재산을 몰수하여 백성에게 나눠 주며 민심을 안정시켰다.

황소가 청년시절 여러 번 과거에 낙방하고 지은 시중에 ‘滿城盡帶黃金鉀(만성진대황금갑)’의 구절이 예언처럼 맞아 떨어진 것이었 다. 백성들은 날마다 ‘황소 만세’를 외쳤다. 그러나 황소는 사천 지역으 로 도망친 황제를 추격하지 않았고 번진과 절도사들의 군대도 무장해제 시키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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