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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격황소서' <3> 북두칠성의 아들
2019년 11월 11일 (월) 09:32:06 최재효 cjhoy6044@korea.kr

<3> 북두칠성의 아들

9세기는 동아시아에 있어서 대격변의 시기였다. 당의 안록산과 사사 명의 난 이후에 전국 각지에서 유행처럼 봉기하는 반란군과 군벌들의 대 립 그리고 환관들의 전횡은 200년 역사의 당나라를 마침내 망국의 길로 들어서게 하였다.

800년 넘게 유지되어온 신라 왕조 역시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길목으로 접어드는 시기이기도 했다. 삼국을 통일한 태종무열왕의 후손들이 왕위를 계승해 오면서 많은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 중 가장 큰 문제는 배타적인 골품제도로 6두품 이하 관 리들의 불만을 쌓이게 하였다. 신라는 귀족들의 권력투쟁으로 지배 체제가 흔들리고 활리(猾吏)들의 가렴주구가 점차 심해지면서 전국에서 도적 떼와 농민반란이 횡행했다.

오랜 동안 계속되는 가뭄과 기근으로 백성들은 헐벗고 역병으로 죽어나 가는 등 민심이 날로 흉흉해졌다. 김응렴(金膺廉)이 신라 제48대 왕으로 재위하면서부터 신라의 국운은 본격적으로 기울기 시작하였다.

왕은 지방으로 내려간 귀족과 지방 호족들의 반란을 평정하려고 힘썼으나 혼란 을 수습하지 못했다. 6두품인 최견일(崔肩逸)은 신라가 건국될 무렵 6촌 중 하나인 돌산 고허촌(高墟村)의 촌장인 소벌도리(蘇伐都利)의 후손이 었다.

서라벌 사량부(沙梁部)에 살고 있던 그는 귀족 측에는 들지 못했지만 득난(得難)이라 불리는 6두품의 신분으로 대대로 관직 생활을 해 온 세신(世臣)이기도 하였다. 그는 원성왕(元聖王)의 넋을 비는 원찰인 숭복사(崇福寺) 재건에 관여하기도 했다.

숭복사는 선덕왕 이전에 파진 찬(波珍飡) 벼슬을 하던 김원량(金元良)이 서라벌 외곽에 창건하였다. 이 절은 본래 ‘곡사(鵠寺)’라 하였는데 원성왕이 붕어하자 이곳에 그의 능을 만들고 절의 위치를 지금의 장소로 옮겨 숭복사라 하였다. 이때 견 일이 절을 새로이 짓는데 관여하여 큰 공을 세우고 그 사찰을 관리하였다.

857년 헌안왕 1년 최견일은 둘째 아들을 얻었다. 그는 큰아들 현준(賢 俊)이 가문을 빛내 주기를 기대하였으나 그는 문재(文才)를 보여주지 못 해 견일의 속을 태웠다. 그러던 차에 차남이 태어나자 견일은 가문을 빛 낼 아들이라며 내심 기대하는 바가 컸다. 둘째 아들이 태어나기 전에 견 일의 부인이 홀연히 사라진 적이 있었다.

견일은 만삭의 부인을 찾아 나 섰다. 수소문 끝에 견일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거대한 짐승이 부인을 물 고 산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그 괴물이 ‘일알령’이란 산 에 자주 출몰한다는 것을 알아내고 수하들과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는 산 중턱에 커다란 바위가 있고 바위 아래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발견하 였다. 그런데 그 굴속에서 하얀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견일이 굴속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넓은 골짜기가 보이고 숲이 무성하 였다. 사방에 기화요초들이 피어 있었고 아름다운 새들이 날아다니며 지 저귀고 있었다. 견일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굴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 보았다.

“아, 여기는 신선의 세계가 틀림없다.”

주위의 경치에 홀린 견일은 계속해서 굴속을 걸으며 부인의 행적을 찾 았으나 쉽게 발견할 수 없었다. 10여리 쯤 더 들어갔을 때 화려한 저택이 나타났다. 지붕을 덮고 있는 기와가 온통 금빛이었고 기둥은 붉은 색이었으며, 정원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들이 있는데 가지에는 처음 보 는 과일이 탐스럽게 열려 있었다. 견일은 숨을 죽이며 저택 안을 살펴보 다가 깜짝 놀랐다. 거대한 황금빛 돼지가 웬 여인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었다.

그 여인의 주위에는 선녀들이 근심어린 표정으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견일이 자세히 보니 그 여인은 바로 그토록 애타게 찾던 부인이 었다. 황금돼지는 천년을 산 요물로 사람으로 둔갑한 상태였다.

‘서방님이 나를 찾아 오셨구나. 그러나 이 괴물이 나의 무릎을 베고 있 으니 어찌 피해야 한단 말인가? 자칫 잘못하다가는 나와 태중의 아기뿐 만 아니라 서방님 목숨까지 위태로울 수 있다.’

견일 역시 잠든 돼지를 깨우면 부인이 위험해 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 고 있었기에 조심하였다. 견일은 부인을 보며 애를 태웠다. 그때 수하 중 한 명이 견일에게 속삭였다.

“돼지는 사슴을 무서워합니다. 마침 제 허리끈이 사슴가죽으로 만들어 졌으니 이것을 부인께 던져 잠든 돼지 입안으로 쑤셔 넣으라 하십시오. 가죽 끈이 입안으로 들어가면 녹으며 돼지의 기도를 막을 것입니다.”

견일은 수하가 건넨 사슴가죽 끈을 부인에게 건네고 손짓으로 돼지 입 안으로 집어넣으라고 하였다. 견일의 부인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사슴가죽 끈을 돼지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황금 돼지는 잠을 자면서도 부인이 먹이를 주는 줄 알고 사슴 가죽 끈을 질겅질겅 씹어 먹었다. 잠시 후에 ‘꽤액’하는 소리와 함께 돼지가 발버둥 치다가 그만 죽고 말았다. 견일은 무사히 부인을 집으로 데리고 왔고 얼마 후에 옥동자를 낳 았다.

견일은 부인이 돼지와 잠을 잤다는 괴소문이 왜자하자 아기를 바 다에 버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와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극진히 보살피는 게 아닌가. 그 소문이 견일에게 전해졌다. “그 아기는 하늘이 내린 아이입니다. 버리시면 천벌을 받습니다.” 견일은 아기를 버리고 크게 후회하고 있던 터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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