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황제가 된 소금장수

당 황제를 몰아내고 장안에 입성한 황소는 연일 주연을 베풀며, 자신 을 믿고 따른 군관들과 병사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그는 상양(尙讓)을 재상으로 하고 주온(朱溫)을 대장군으로 임명하는 등 통치 체제를 정비 하였다.

또한 그는 당 왕조 시절 고위 관료를 지낸 자들과 당 황제에게 아부하면서 축재한 음황한 부호들의 재산을 모두 적몰하여 가난한 백성 에게 나눠 주고 반항하는 자들은 가차 없이 참수하는 등 들떠있는 민심을 안정시키는 데 전력하였다.

그러나 백성들의 인기를 얻는데 급급한 황소는 장기적인 국가건설을 위한 철저한 계획을 세우지 않고 그때그때 인기 영합정책에 의존하여 나라를 통치하였다. 오랜 전란으로 백성들의 생활과 밀접한 생산시설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물자 수송도 어려워지자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아 백성들은 못살겠다고 아우성이었다.

관료생활을 해본 경험이 전혀 없는 황소와 그의 부하들은 백성들의 불만을 어 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할지 모르고 가리산지리산할 뿐이었다.

황소는 점차 음심을 드러내면서 백성들 위에 군림하려 들었다. 그는 당 황제가 버린 후궁들과 황실의 여인들을 차례로 불러 밤마다 음욕을 채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수백 명이나 되는 미인들에게 홀려 정사(政事) 는 신하들에게 맡기고 그는 어떻게 하면 여인들과 좀 더 자극적인 환락 과 음황을 즐길 수 있을까 골몰하였다.

음탕한 짓을 하기에는 낮밤이 오 히려 짧아 황소는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원망하였다. 그의 곁에는 항상 미인들이 줄서 있었다. 도망간 당 황제의 손길에 길들여진 여인들 이어서 그런지 남자 후리는데 이골이 나 있었다.

황소는 얼근한 몸으로 밤마다 여인들의 육덕을 주무르며 격한 숨을 토해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광활한 당 나라의 국토 중에서 황소가 차지한 지역은 겨우 수도 장안과 그 일대 뿐이었다. 나머지 대부분의 국토는 여전히 당 나라 황제가 임명 한 절도사들이 다스리고 있었고 그들 중 일부는 사천으로 도망친 황제의 명을 따르고 있었다.

당 황제가 도읍지인 장안을 황소에게 빼앗겼다고 하여 당 나라가 멸망한 것은 아니었다. 여러 달이 지나도록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새로운 나라 대제의 황제가 된 황소에 대한 기대가 너무나 큰 탓이었는지 몰라도 백성들은 황소 황제의 행동에 점차 의구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폐하, 사천으로 도망친 당 황제 이현을 잡아서 처단해야 후환이 없을것입니다. 속히 추격대를 편성하여 파견하소서.”

“폐하, 주온 대장군 말이 옳습니다. 속히 황제 이현을 잡아 죽여야 합 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자가 나중에 군사를 일으켜 장안성으로 향할 수 있사옵니다. 한시가 급합니다.”

대장군 주온과 재상 상양이 황제 황소에게 주청하였다.

“주장군과 재상은 너무 걱정하지 말라. 제깟놈이 무슨 재주로 군사를 몰아 장안으로 온단 말인가? 짐이 장안에 있는 한 절대 올 수 없다. 그냥 내버려 두어도 그놈은 백성들 손에 맞아 죽고 말 것이야.”

황소는 간밤에 마신 술이 덜 깬 상태라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신하들 이 주지육림에 빠져 허욱적 대는 황소 황제를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바라 보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일관하며 신하들의 말에 귀를 기 울이지 않았다.

“폐하, 작은 우환 거리가 나중에 걷잡을 수 없는 사태를 부르는 법이옵 니다. 도망친 당 황제 이현을 빨리 잡아 죽이시고 전국 각지의 절도사들 을 폐하의 사람으로 교체하셔야 하옵니다.”

주온이 황소에게 재차 간언하였지만 황소 황제는 귀찮은 듯 건성으로 듣고 대답이 없었다.

‘황제가 주색에 빠져 헤어날 줄 모르니 이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대장군 주온은 속으로 한탄하였다.

“상재상, 오늘밤 주연에는 어떤 계집들을 부를 거요?”

“폐하, 당 황제가 총애하던 후궁 두 명을 불러 드리겠습니다. 밤새도록 즐기십시오. 그들은 장안의 유명한 기녀출신으로 요분질에 있어서 당나 라에서 최고라고 합니다.”

“아무리 그 짓에 일가견이 있다하여도 두 명은 너무 적은 것 같소. 너 댓 명 부르고 맛 좋은 명주와 기린고기를 안주로 올리라 하시오. 계집들 은 알몸으로 들게 해야 짐의 기분이 좀 풀릴 거요.”

“폐하, 그리하겠습니다. 기대하십시오.”

황소는 기골이 장대하고 두주불사인지라 그의 신하들 중에서 술로 황 소를 당할 자가 없었다. 황소는 낮이면 밤에 어떤 여인을 불러 넘쳐나는 음욕을 해소할 지 고민하고 있었다. 나라의 창고는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관리들이 이러저러한 명목으로 강제로 세금을 걷어 들이기는 하 였으나 오랜 전란으로 워낙 피폐해진 백성들의 살림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당장 일용할 양식도 없는 상태에서 강제로 세금을 걷어가는 관 리들을 보면서 백성들은 황소를 원망하기 시작하였다.

“황소가 백성들을 위할 줄 알았는데 밤낮 술에 취해 당황제가 버리고 간 후궁들 샅이나 빨아대고 있으니 큰일일세.”

“당 왕조나 황소의 나라나 마찬가지야. 그놈이 그놈이란 말일세.” “차라리, 당나라 백성으로 있는 게 좋을 뻔했네 그려.”

“소금 장수가 황제가 되더니 눈에 뵈는 게 없는가? 인간 망종이야, 망종.”

장안의 백성들이 서서히 황소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다는 소식이 사천 으로 피신한 당 황제 이현의 귀에도 전해지고 있었다. 그는 회심의 미소 를 지으며 장안으로 돌아가 후궁들의 실팍한 육신을 안아 볼 꿈을 꾸었 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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