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병법에 달통한 최치원

고변은 금군의 장교에서 출발하여 안남도호, 정해군절도사, 천평군절도사, 서천절도사, 형남절도사를 역임하고, 당항(黨項)과 남소(南詔)의 토벌에 공을 세웠다.

황소가 난을 일으켜 장안을 향해 파죽지세로 북상할 때는 절동에서 황소군을 격파하여 복건과 광동으로 향하던 반란군의 진출을 막았다.

그 공으로 그는 황제로부터 동부지방 군총사령관인 제도행영병마도통에 제 수되었다. 그러나 황소가 장안성에 입성하여 황제를 자처하고 두문불출 하고 있자 전선은 교착상태로 빠져 들었다.

“황제의 특사가 다녀갔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절도사 휘하의 군관들과 는 다릅니다. 나는 황제가 특별히 임명한 제도행영병마도통입니다. 장안 성에 틀어 박혀있는 황소를 제거하고 당 황실을 재건해야 할 의무가 있 습니다.

황제께서 앞으로 석 달 안으로 장안성을 접수하고 황소의 머리 를 가져오라 하십니다. 제장들은 고견이 있으면 말해보시오.”

고변의 말에 군관들은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좌군장입니다. 석 달은 너무 촉박합니다.”

“중군장입니다. 좌군장 말이 맞습니다. 장안성을 함락시키려면 최소 다섯 달은 소요될 겁니다. 또한 우리군만 움직인다고 될 일도 아닙니 다.”

“선무군관입니다. 두 군관의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우리군은 황소의 육십만 대군의 반도 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장안까지 이동하려면 최소 한 달은 걸립니다. 이미 한여름이라 병력을 이동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입니다.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합니다.”

선무군관의 말에 제장들의 얼굴은 근심으로 가득 찼다.

“우군장입니다. 장안성을 치기 전에 전투 경험이 많은 낙양의 제갈석, 허채의 진종권, 치청의 왕경무 절도사와 연합을 도모하면 황소의 대군 을 능히 대적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군장의 의견이 참으로 좋습니다. 그러나 무슨 방법으로 석 달 내로 그들을 움직여야 할지 난감합니다. 그밖에 또 다른 의견 있습니까?”

고변의 말에 군관들은 고개만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도통순관 겸 승무랑 겸 전중시어사 겸 내공봉인 최해운공의 의견도 들어 보시지요? 해운공은 경서(經書) 뿐만 아니라 병서(兵書)를 연구하 여 병법에도 능통합니다.”

고변의 참모장 역할을 하고 있던 고운이 해운 최치원을 지목하였다. 고변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옆에서 말없이 회의록을 작성하고 있는 해운 을 바라보았다.

“해운이 문재에만 탁월한 줄 알았는데, 손무(孫武)와 오자서(伍子胥) 하고도 친한 줄 미처 몰랐소. 여러분, 도통순관의 고견을 듣고자 합니다.”

고변의 말에 회의실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새치름하게 앉아 있는 해운에게 쏠렸다. 고운은 해운이 어떤 비책을 내놓기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잠시 뜸을 들이던 해운이 입을 열었다.

평시에 천자는 인덕으로 백성을 다스려야 하나 지금은 준전시 상황입 니다. 이런 경우에는 패도(覇道)로 나라를 다스려 조속히 환란을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적과 싸우는 방법에는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아군 의 수가 적군보다 열배 많으면 적을 포위하고 다섯 배 많으면 즉시 공격 하며, 배가 많으면 적을 분열시켜 각개 격파해야 합니다.

또한 아군이 적 과 동수이면 사력을 다해 싸워야 하고 아군이 적보다 열세하면 방어만 하고 싸우지 아니하며, 아군이 적보다 아주 열세의 입장이면 도망쳐야 합니다. 전쟁의 가장 기본은 싸우지 않고 적을 이기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싸우지 않고 적을 이길 수 있을까요?

손무가 말하기를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고, 부지피이지기일승일부(不知彼而知己一勝一負), 적을 모르고 나만 알면 한번 싸우고 한번 지며, 부지피부지기매전필패(不知彼不知己每戰必敗),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싸울 때마다 진다’고 하였습니다.

정확히 우리 아군은 지금 황소의 육십만 대군의 삼분지 일 밖에 안 됩 니다. 우군장 의견처럼 도통께서 조속히 황제의 밀조를 빌미로 낙양의 제갈석, 허채의 진종권, 치청의 왕경무 절도사와 연합전선을 구축해야 합니다.

연합 전선이 형성되기 전까지는 이곳에서 사태를 관망하며 백성 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합니다. 백성들을 움직이는 방법은 격문을 써서 그 필사본을 대량으로 만들어 전국에 살포하면 그 효과가 엄청 날 것입 니다.

해운의 달변에 고변과 군관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고변은 정신이 나간 듯 멍하니 해운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과연, 신라의 최해운입니다.”

고운이 박수를 치자 다른 군관들도 일제히 큰 박수로 해운의 의견에 찬동하였다. 어떤 군관은 해운을 존경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열렬한 지지를 보내기도 하였고 또 어떤 군관은 해운을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었다. 한참 지나서 정신이 든 듯 고변은 만면에 미소를 띠고 혼자 박수를 쳐댔다.

“해운은 시에만 능통한 줄 알았습니다. 등하불명이라더니 나를 두고 한말 같습니다. 내 곁에 제갈량과 장자방을 두고도 몰라봤습니다. 도통 순관 의견에 따라 제갈석, 진종권, 왕경무 절도사에게 특사를 파견하겠 습니다. 그럼, 황소의 죄를 꾸짖고 전국의 백성들과 군웅들 가슴에 의협 심을 불러일으킬 훌륭한 격문을 누가 쓰시겠소?”

고변이 좌중을 둘러보았다.

“당연히 최해운 도통순관이 써야지요? 해운의 필력은 이미 황제와 조정의 만조백관들이 인정하지 않았습니까?”

고운이 해운을 지목하고 나섰다. 다른 군관도 고운의 말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지요. 이 사람도 해운의 문장을 벌써 인정하였습니다. 그럼, 최도통순관이 빠른 시일 내에 격문을 써주시오. 부탁하오.”

“알겠습니다. 이틀 안으로 작성하지요.”

이번에도 고변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경이로운 시선으로 해운을 바 라보았다. 고운은 문우이며 과거급제 동기생인 최치원의 시원한 답변에 통쾌한 기분을 느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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