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쌍분녀

“이 아이는 팔낭(八娘)이라하고 저 아이는 구낭(九娘)이라 합니다. 우 리 기루에서 최고의 미인입니다. 두 분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그리고 오 늘 밤 이 아이들 머리를 올려주시면 내일 아침까지 기루에서 푹 쉬실 수 있습니다.”

여주인은 깔깔대며 나갔다.

‘팔낭과 구낭? 내가 지금 여우 굴에 들어온 것은 아니지?’

“이보시게, 우리가 지금 생시에서 숨을 쉬고 있는 게 맞지?”

“해운, 벌써 취하셨나?”

고운은 해운의 생뚱맞은 소리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해운의 얼굴을 살폈다.

“소녀, 팔낭이라 하옵니다.”

“소녀, 구낭이라 하옵니다. 저희는 친자매 지간입니다. 오늘밤 두 분 대인들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해운은 두 여인을 보자 반갑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였다. 두 여인이 정 말로 예전에 운우의 정을 나누던 자매인지 몰라 가슴을 움켜쥐고 숨을 고르면서 두 여인을 뚫어지게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고운이라 하고 이 분은 멀리 신라에서 오신 해운 최치원 선생이 시네. 오늘 우리 네 명이 좋은 인연을 만들어 보자고.”

고운이 두 기녀에게 자신과 해운을 소개하였다. 해운이 빈공진사과에 장원급제하고 2년 후에 율수 현위직을 제수 받았다. 그때 해운은 율수현 과 고순현(高淳縣)의 경계에 있는 초현관에 자주 들리곤 하였다. 그 초 현관 앞 야트막한 언덕에 오래된 초분(草墳) 2기가 있었는데 그곳 사람 들은 그 무덤을 쌍녀분(雙女墳)이라고 불렀다.

하루는 해운이 이곳에 들 렀다가 그 무덤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해운도 이곳 사람들에게 그 무덤에 대한 사연을 듣고 있던 터라 애틋한 마음에 즉석에서 7언 율시를 써 서 묘비석에 붙였다.

誰家二女此遺墳(수가이녀차유분) 뉘 집에서 두 여인의 무덤을 남겼을까

寂寂泉 扃 幾怨春(적적천경기원춘) 적막한 황천에서 얼마나 봄을 원망할까 ……

孤館若逢雲雨會(고관약봉운우회) 초현관에서 운우지정을 나눌 수 있으면

與君繼賦洛川神(여군계부락천신) 그대들과 더불어 낙신부를 지어노래하리

해운이 손수 지은 시를 묘비에 붙이고 초현관에 도착하였을 때 한 여 인이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해운이 그녀의 용모를 자세히 보니 절 세가인이었다. 그녀는 손에 주머니 두 개를 쥐고 있었다. 그녀가 해운을 보더니 다가와 공손히 인사를 하였다.

“저는 취금이라 합니다. 팔낭자와 구낭자께서 ‘아무도 찾지 않는 유택 에 오시어 빼어난 시를 지어주신 수재(秀才)에게 고맙다’는 인사말을 전 하라며 소녀 편에 화답시를 보냈사오니 받아주소서.”

“그 두 낭자들의 성씨가 어떻게 되고 사는 곳이 어디입니까?”

여인이 붉은 비단 주머니와 청색 비단 주머니를 건넸다.

“두 분은 장씨 가문의 딸이고 현재 머무는 곳은 수재께서 오늘 시를 지어 붙인 그 쌍분입니다.”

‘두 무덤? 그렇다면 귀신이 보냈다는 말이냐? 그럼, 이 여인도 귀신이렷다.’

해운은 모골이 송연함을 느끼고 두려움에 다리가 후둘 거렸지만 마음 을 단단히 먹고 붉은 주머니를 열어보았다. 팔낭자라고 하는 여인이 해 운에게 보내는 화답시가 들어있었다.

當時在世長羞客(당시재세장수객) 당시 세상에 있었을 때는 언제 나 낯선 사람보고 부끄러워했지만, 今日含嬌未識人(금일함교미식 인) 오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사랑을 품게 되었답니다.

이어 청색 주머니 안에는 구낭자가 보내는 화답시가 들어 있었다. 해운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켜가며 시를 읽어 내려갔다.

往來誰顧路傍墳(왕래수고로방분) 오가며 누가 길가 무덤을 돌아 보겠는가. 鸞鏡鴛衾盡惹塵(난경원금진야진) 난새 거울과 원앙 이불 에 먼지만 쌓였네.

해운은 두 편의 시를 읽고 눈물을 흘렸다. 저승에 든 두 여인이 얼마나 외롭고 쓸쓸했으면 이방인에게 연모시를 보냈을까. 해운이 눈물을 훔치 고 나서 취금에게 다음과 같은 답시를 써주었다.

斷腸唯願陪歡笑(단장유원배환소) 애끓는 마음은 오직 웃고 즐기는 일로 함께 하고자 하니, 祝禱千靈與萬神(축도천령여만신) 모든 신령들에게 축원 올리고 기도드립니다. 今宵若不逢仙質(금소약불봉 선질) 오늘밤에 만약 선녀들의 모습을 만나지 못한다면 判郤殘生入地求(판극잔생입지구) 반드시 남은 생을 지하에 가서라도 찾아 볼 것입니다.

해운이 시를 건네자 취금이 ‘잠시만 기다리라’며 바람소리와 함께 사 라졌다. 해운은 홀로 시를 읊조리고 있었다. 그러나 두 식경이 지나도 아 무도 나타나지 않자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해운이 기다리다 지쳐 관사 안으로 막 발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갑자기 향기가 풍기고 훈풍이 불 어오더니 두 여인이 다정히 손을 잡고 나타났다. 한 여인은 청색 치마를 입고 또한 여인은 붉은색 치마를 입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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