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밴자민*
명서영

결혼기념일에 받은 인삼밴자민

화려하고 묵직한 도자기화분 인물에 반해

20년 만에 분갈이를 한다

커다란 화분에 작은 나무, 몇 십 년은 거뜬 할거야 

거뜬하도록 화분 안은 온통 스티로폼 뿐

덩그렇게 말라비틀어진 햇살

하얗게 퇴화된 한줌의 흙

뿌리 몇 개가 몇 개의 흙을 꽉 잡고 까치발로 서있다

이 집 귀신으로 뿌리 내릴 것이야 인삼밴자민

아직도 깨지 않은 잠이 흔들리고 있다

인삼과 밴자민이 하나

한 집에 짓이겨진다는 것

그러고 보면 처음 이 집에 올 때부터

배배 꼬여 뒤틀려 있던 나무줄기

여기저기 잘린 나뭇가지들

나무눈**을 잃은 나무, 눈에 뵈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더듬더듬 똥구멍까지 힘주어 잔뿌리 몇 개 내고   

이쪽저쪽 싹 틔운, 갈팡질팡 길 튼 흔적들

누가 알까 ?

밤마다 흠뻑 사레들리다 나체로 깬다는 걸

강산이 두 번 변하도록 실컷 물 먹었다는 걸

나무 헛물켜다 대궐 같은 화분에서 쫓겨났다

화분 위에 있던 바싹 마른 잎들,

사리들이 우수수 추풍낙엽으로 굴러 떨어진다.

목마른 하늘에 인삼향기가 쓰디쓰다

 * 식물과로 분재

*봄철에 나뭇가지에 싹이 트는 보풀보풀한 부분

 오랜만에 시 한편을 썼다. 해설도 필요 없을 만큼 내용이 다 읽히지는 시라 생각한다. 오래전에 다음카페에서 나는‘빙점’이란 닉을 사용하였다. 이메일과 채팅으로 대화를 많이 주고받았던 법조인 친구가 있었는데 첫날 질문을 하였다.

‘왜 닉을 차가운 이미지로 하였는지? 이왕이면 따뜻한 이미지의 닉으로 바꿀 생각은 없는지?’물었었다. 나는 순발력을 이용하여 빙점은 어는점이기도 하지만 녹는점이기도 되기에 후자로 쓴 것이다. 라고 둘러대어 그분의 환심을 얻었던 기억이 있다.

사실은 고등학교 때 감명 깊게 읽었던 일본소설의 첵 제목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이시를 쓰고 보니 그 책이 떠오른다. 비평가들은 빙점이란 책에 대하여 잘못이 전혀 없는 주인공이 살인자의 딸이란 원죄로 미움을 받고 있기에 기독교적이라느니 불교적이라느니 말이 많지만 나는 가장 인간다운, 부족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본다.

복수를 위하여 자가 자녀의 살인자의 딸을 입양한다는 것은 평생 자신은 더 힘들 것을 알면서 시작한 일로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인간의 한계라고 본다. 배우자의 외도를 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를 배신이 얼마나 미련한 지를 단적으로 들어낸 책이었다.

살다보면 피가 섞인 형제도 충돌 되는데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남녀란 이름으로 한집에 산다는 것 자체가 소설이요 영화인 것이다. 어떻게 요리하고 얼마나 지혜롭게 살는지는 각자의 숙제인 것이다. 30년쯤 지나니 부부도 가족도 이웃도 모두 소중하고 아릅답다. 늘 지나고 보면 아래 글귀가 와 닿는다.

‘지혜로운 자는 집을 세우지만 미련한 자는 집을 헌다’-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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