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선녀가 된 쌍분녀 자매

고운이 비틀대며 밖으로 나가더니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았 다. 자매와 더불어 재회의 기쁨을 만끽하며 술을 마시던 해운은 자매에 게 궁금한 것이 많았다.

그러나 고운과 같이한 연석(宴席)이고 고운은 4 년 전 해운이 겪은 기이한 이야기를 전혀 모르는지라 일단 오늘은 술만 마시기로 하였다. 그러나 팔낭과 구낭은 어서 고운이 술이 취해 떨어지 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재님, 고운님께서 혹시 밑 빠진 독 아니세요?”

“아닙니다. 고운이 술을 즐기기는 하지만 밑은 빠지지 않았습니다.”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를 할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구낭이 속이 상한 듯 투덜거렸다. 잠시후 고운이 휘청거리며 들어왔다. 다른 객실 손님들이 모두 돌아갔는지 객실 밖은 조용했다.

“오늘 내가 해운을 이곳에 데리고 온 이유는 해운이 잠도 자지 않고 격문을 작성하느라 많이 지쳐 있어서야. 내가 그 노고를 치하하고 객고 도 좀 풀어 줄 겸 해서 온 걸세.”

“소녀들도 해운님이 쓰신 격황소서(檄黃巢書)를 보았습니다.”

“뭐라, 그대들이 해운이 지은 격서를 보았다고?”

고운은 자매가 농담을 하는 줄 알고 믿지 않으려 하였다.

“해운님께서 지으신 그 격문 중 일곱 번째 문장에 ‘不唯天下之人皆思 顯戮(불유천하지인개사현륙), 仰亦地中之鬼已議陰誅(앙역지중지귀이의음주)’란 구절에 격문의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팔낭이 의기양양해 하며 고운의 빈 잔에 술을 따랐다.

‘아니, 팔낭자가 그걸 어떻게 알았지?’

고운은 화등잔처럼 두 눈을 뜨고 팔낭자를 쏘아 보았다. 그러나 대취 한 그의 눈씨는 힘이 없어 보였고 눈동자의 초점도 흐렸다. 고운은 정신 을 차리려고 자꾸만 냉수를 들이켰다.

“즉, 당나라 온 백성이 너를 죽이려고 벼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하 세계의 귀신들까지 너의 목을 베려고 음모를 논의 하리라. 이 구절을 황 소가 읽게 되면 아무리 담력이 좋은 인사라 할지라도 졸지에 경풍(驚風) 이 들어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될 것입니다.”

이번에는 구낭이 격황소서 문장을 풀이하며 미소를 짓자 고운은 해운을 의심하였다.

“해운, 자네 내가 잠시 소피 보러간 사이에 격문 내용을 말해주었는가?”

“고운, 두 분은 이승 분들이 아니라네.”

해운은 간단히 대답하고 크게 웃었다. 해운이 웃자 자매도 따라 웃으 며 고운을 바라보았다. 해운의 대답에 고운은 더욱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도무지 세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고운이 술을 깨려고 계속해서 물을 마셔댔으나 물을 마신 양만큼 또 술을 마셨다. 맛 있는 안주는 거의 손을 대지 않은 상태였다.

해운은 고운에게 4년 전 선 주 율수의 현위로 있을 때 쌍녀분에 시를 지어 붙이면서 장씨 성을 가진 자매와 있었던 기이한 인연을 소개하였다. 술에 취한 고운은 해운의 이 야기를 들으면서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해운이 자매와 짜 고 자신을 놀리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팔낭과 구낭이 명부(冥府)에서 오신 혼령들이란 말인가?”

“저승이 아니라 천상에서 강림하신 여선(女仙)이시네.”

“자네,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는구먼.”

“아니네. 나는 자네에게 내가 경험한 기이한 일과 지금 진행되고 있는아름다운 이승의 순간들을 알려주려는 걸세.”

고운은 술잔을 비우면서도 자매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고운과 자매 가 시선을 마주칠 때마다 고운은 고개를 좌우로 돌리면서 눈을 비비고 또 다시 쳐다보았다.

‘분명히 사람인데 해운이 자꾸만 선녀라고 하니 도대체 내가 취한 것인가 세상이 취한 것인가? 분간이 안 가네.’

고운이 아무리 살펴보아도 팔낭과 구낭은 분명 사람이었고 당나라에 서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고운의 눈에 천정이 빙빙 돌면서 두 미인의 얼 굴이 활짝 핀 복숭아꽃 같기도 하였다. 이제는 술이 고운을 마시고 있었 다. 자매는 고운이 졸린 기색을 보이자 서로 바라보며 눈을 찡끗거렸다. 그러나 고운은 정신을 차리려고 무진 애를 썼다.

“해운, 선녀면 어떻고 요지의 기녀면 어떤가? 오늘 하룻밤 즐겁게 지내면 되는 거 아닌가?”

“대인, 맞습니다. 이승과 저승의 구별이 어디 있나요? 이승이 곧 저승 이고 천상이 곧 명부인 걸요. 지금 소녀의 눈에 보이는 두 분은 과거에 혼령이었다가 전생에 복덕을 많이 쌓아 인간 세계에 오신 분들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하나의 시간 흐름 속에 존재하고 있답니다.”

팔낭의 말에 고운은 점점 더 정신이 혼미해졌다. 아까운 시간이 빨리 흐르고 있었다.

“알았네, 알았어. 이제야 팔낭과 구낭의 말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네. 그런데 자네들이 생각해도 방금 전에 언급한 부분이 명문장 아닌가?”

고운이 자매의 소견을 물었다. 구낭이 고운의 빈 잔에 술을 따랐다. 술 에서 진한 향기가 풍겨 나오니 고운은 한 번에 술잔을 비우고 말았다. 팔 낭이 배시시 웃으며 고운의 잔에 술을 가득 따르고 말하였다. 팔낭의 교 용( 姣 容)에 고운의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해운님의 격황소서의 전체적인 문맥은 옥수가 고요한 달밤에 계곡을 흐르듯 매끄럽습니다. 진(晉)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유요(劉曜)와 왕돈(王敦)의 고사나 수나라 대신 양사공(楊司空) 그리고 도덕경과 춘추전 등의 글귀를 전거로 삼는 것은 문장에 신뢰를 줍니다.

전고(典故)를 적 절히 삽입한 구절은 가히 천상의 문장가들도 따라갈 수 없는 경지입니다.

또한 문장 첫머리에 도(道)와 권(權)을 들어 세상이 돌아가는 운행 의 이치를 밝히고 당 제국의 강성함과 난적 무리들의 무모함을 대비하여 그들이 사태를 직시하고 항복토록 권유함은 가히 세상 모든 격문의 모범 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해운님의 격문은 사륙변려문(四六騈儷文)으로 형식 미와 대장법(對仗法)은 독보적인 것이며, 수사적으로 미적 감각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마치 한 쌍의 말이 마차를 끄는 것 같이 아름다운 문장 입니다. 이백이나 두보 또는 유종원도 감히 해운님의 경지를 넘을 수 없 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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