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황소 말에서 떨어지다

“상재상, 제도도통검교태위란 놈이 도대체 누구요? 그놈이 어떤 자이 기에 시건방지게 감히 짐에게 이 따위 종이쪼가리를 보낸단 말이오?”

“폐하, 그자는 현재 양주에 머물고 있는데 당 황제가 우리 대제국을 장 안에서 추방하라고 임명한 관군의 총사령관으로 이름은 고변이라 합니 다. 그자가 무슨 일로 폐하께 문서를 보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일단 받아 보시지요.”

“상재상이 확인해 보시구려.”

상양이 문서 봉투를 뜯고 격문을 읽어보다가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 리면서 사시나무처럼 떨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가슴을 쥐고 헛 구역질을 해댔다.

주온이 이상한 낌새가 들어 그 격문을 읽어보고 그 역 시 얼굴이 하얗게 변하면서 말 위에서 몸을 좌우로 휘청거리다 하마터면 말 등에서 떨어질 뻔했다. 황소는 두 신하가 이상한 행동을 보이자 문서 에 도대체 무엇이 쓰여 있는지 무척 궁금했다.

“왜 그러시오? 그 문서를 이리 줘보시오. 짐이 읽어보겠소이다.”

“폐, 폐하, 아니 되옵니다. 그것을 보시면 아니 되옵니다.”

상양이 말에서 내려 황소에게 다가 갔다.

“허허, 거참. 내가 까막눈인 줄 아시오? 짐이 소싯적에는 과거도 몇 번 보았고 시문을 짓기도 했었소. 무슨 해독하기 어려운 문자가 있기에 그 리 어려워하는 게요? 이리 주시오. 짐이 해석해 보리다.”

“폐하. 보지 마소서,”

이번에는 주온 대장군이 황소가 탄 말 앞으로 다가가 격문을 보지 말라고 강력히 권했다.

“경들은 짐을 어린애 취급하는 거요? 얼른 이리 주시오.”

주온은 황소의 재촉에 할 수 없이 격문을 건넸다. 황소는 격문을 펼치 는 순간 ‘헉’하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가슴을 움켜잡고 눈물을 흘렸다. 그를 바라보던 신하들이 황소에게 달려들었다. 황소는 가슴의 통증을 참 으려는 듯 인상을 쓰며 머리를 숙여 말갈기에 얼굴을 묻고 움직이지 않 았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괘, 괜찮소. 짐은 멀쩡하오. 잠시 정신이 오락가락 했을 뿐이오.” 황소가 가슴을 치면서 일어나 다시 격문을 펼쳤다. 황소의 얼굴 역시 창백해져 있었는데 금방 죽을 사람같이 보였다. 그는 심호흡을 서너 번 하고서 다시 격문을 읽어내려 갔다.

“격황소서, 광명 이년 칠월 팔일에 제도도통검교태위 모관(某官)은 황 소에게 고한다. 짐에게 보내는 격서가 아닌가? 이런 발칙한 놈을 보았 나. 감히 대제(大齊)의 황제인 짐에게 이 따위 요망한 글을 보내다니 찢 어 죽일 종자로다.”

황소는 격문을 보자마자 펄펄 뛰면서도 그것을 읽었다.

“폐하, 폐하의 두 눈에서 피가 흐르고 있사옵니다.”

주온이 놀라 황소에게 마른 수건을 건넸다. 황소도 수건으로 피눈물을 훔치고 크게 놀랐다.

“폐하, 그 문서를 소신들에게 주시고 어서 서둘러 환궁하소서. 그 글에 요기(妖氣)가 서린 듯 하옵니다.”

상양이 큰소리로 아뢰자 황소는 큰소리로 웃고 대범한 척하며 계속 격 문을 읽어 내려갔다. 신하들은 선홍빛 피눈물을 연신 닦아내며, 말 위에 서 격문을 읽고 읽는 황소가 위태로워 보였는지 말에서 내려 황소 곁으 로 다가갔다.

不唯天下之人皆思顯戮 仰亦地中之鬼已議陰誅 縱饒假氣遊魂早合 亡神奪魄(불유천하지인개사현륙 앙역지중지귀이의음주 종요가기유 혼조합망신탈백)

‘천하 백성들 모두가 짐을 공공연히 죽이려 마음먹고 있을 뿐만 아니 라, 땅속의 귀신들조차도 짐을 죽이려고 모의하였을 것이다. 짐이 숨을 쉬니 혼이 붙어 있다고는 하지만 벌써 넋은 도망갔을 것이다.’ 황소가 큰 소리로 격문을 중간 쯤 읽을 때였다. 맑은 하늘에서 갑자기 뇌성벽력이 일었다. 말이 놀라 날뛰자 황소는 피를 토하고 말에서 떨어지며 땅바닥 에 처박혔다.

“앗, 황제 폐하께서 말에서 떨어지셨다.”

“이년들, 이 요망한 요귀년들, 어서 저리 가지 못할까? 저년들, 저년들을 단칼에 베어라. 어서. 베지 않고 무얼 하느냐?”

주온과 상양이 땅바닥에 누워 숨을 헐떡거리며 버둥대는 황소를 잡고 흔들었다. 황소의 얼굴은 온통 피투성이가 되었고 겨우 숨을 내쉬면서 허공에 손을 휘젓고 헛소리를 질러댔다.

“빨리, 황제 폐하를 모시고 환궁하라.”

주온이 칼을 빼들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뇌성벽력은 계속해서 천지를 뒤흔들었다. 황소를 호위하던 병사들이 벼락에 맞아 몸이 새카맣게 타 죽거나 머리가 터져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 되기도 했다. 황소와 함께 사냥에 나선 모든 사람들이 넋이 나가 우왕좌왕 하였다. 황소는 들 것에 실려 급히 장안으로 돌아와 자리에 눕고 말았다.

“황소 황제께서 제도도통검교태위 고변이 보내온 격문을 읽다가 피를 토하며 말에서 떨어졌다네. 그리고 두 눈에서 피가 나고 헛소리를 하는 등 지금 제정신이 아니래. 용하다는 의원들이 진찰을 해보아도 병명을 모른다네.”

“그 격문의 내용이 천하의 명문이라면서? 과연 고변 태위는 하늘이 보 낸 사자로구먼. 칼도 아닌 붓으로 황소 황제를 말에서 떨어트리고 단번 에 기절시켜 병이 들게 만들다니, 붓이 칼보다 세다는 말이 맞는구먼.” 황소 휘하의 관리들은 삼삼오오 모여 급변을 두고 설왕설래하였다. *계속

 

저작권자 © 남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