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정당 정부.의회 독식..지방의회, 견제 상실
정당공천제 폐지ㆍ현명한 유권자판단 절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방의원이 당의 조직원으로 활용되는 구조인데 무슨 견제기능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민선 자치시대가 열리면서 광역 및 기초의회가 함께 출범했지만, 자치단체를 견제하는 지방의회의 기능이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김기석 강원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렇게 진단했다.

전국적으로 주요 지역의 경우 특정 정당이 지방 정부와 의회를 독식하고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의 하부구조에 해당하는 상황에서 지방 정부에 대한 지방 의회의 견제가 제대로 이뤄지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격이라는 지적인 셈이다.

견제 기능을 잃어버린 지방의회의 폐단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없지는 않았지만, 별다른 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채 또다시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정당 공천제를 폐지해야 하며, 그렇게 될 때까지 유권자들은 정당 공천과 관계없이 지역의 유능하고 대표성 있는 인물을 뽑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라고 충고한다.


◇ "한통속인데 견제는 무슨.."
광주광역시의회는 18일 본회의를 열어 의장 직권상정으로 기초의회 4인 선거구제를 2인 선거구제로 분할하는 내용의 기초의원 정수 조례안을 처리했다.

시의회는 이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일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의원들의 회의장 입장을 저지하자 경찰을 투입해 강제 해산시켰으며 이 과정에서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져 아수라장이 됐다.

애초 선거구 획정위원회는 4인 선거구제를 시의회에 제시했지만, 민주당 일색인 시의회가 자당(自黨) 출신 기초의원 배출 가능성이 큰 2인 선거구로 쪼개는 안을 밀어붙인 것이다.

민노당 장원섭 광주시장 예비후보는 "민주당이 경찰까지 동원해 반대 여론을 제압한 것은 한나라당과 다를 바 없는 다수당의 폭거"라며 "민주당의 독재정치 시도에 시민단체와 함께 공동 대응하겠다"고 반발했다.

전남과 전북의회의 경우도 민주당이 각각 94%(47명)와 94.6%(35명)를 차지하고 있으며 민주노동당 및 무소속 1∼2명에 한나라당 소속은 아예 없다.

거꾸로 경남지역은 광역.기초 지자체장 및 의원 대부분이 한나라당 소속이어서 지방정부에 대한 의회 차원의 제동 장치가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얼마 전 불출마를 선언한 한나라당 소속 김태호 전 도지사는 물론이고, 경남도의회 재적의원 52명 가운데 민주당 2명과 민노당 2명을 제외한 48명(92.3%)이 한나라당 소속이다.

경남지역 20개 시장.군수도 무소속 3곳을 제외하면 모두 한나라당 소속인데다 시군 의장.부의장, 각 상임위원장도 거의 한나라당이 독식하고 있다.

경북도의회와 대구시 의회 역시 한나라당이 전체 의석의 94.5%와 96.6%를 각각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 텃밭이어서 의회의 견제 장치가 작동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창원시의회에서 여성으로 첫 부의장을 지냈던 민주노동당 소속 이종엽 의원은 "의회 본연의 견제와 감시 기능을 가질 수 있도록 의회 내부에서도 경쟁 관계를 갖춰야 올바른 제동장치를 확보할 수 있다"며 "특정 정당이 아닌 시민을 바라보고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해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비교적 지역색이 강하지 않다는 강원 지역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도지사를 비롯해 18개 시장.군수와 지방의원 대부분이 한나라당 공천으로 당선돼 상호 견제기능은 퇴화했다.

강원도의회는 2006년 12월 여론에 떼밀려 도의 민.외자 투자유치사업에 대한 행정사무조사권을 발동해 춘천 복합다기능국제컨벤션센터개발사업(WTC) 등 민.외자 유치 사업에 문제점이 없는지 점검하기로 했다.

하지만, 도의원 40명 중 36명이 김진선 도지사와 같은 한나라당 소속으로 정치적 역학관계를 맺고 있어 도의회 개원 이래 처음 발동한 행정사무조사권은 결국 아무런 결론 없이 흐지부지 끝났다.


◇정당 공천 폐단 극복은 유권자의 몫
이런 폐단은 지방의원들이 중앙 정치인의 지시사항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구조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지방의원들은 주민들에게 좋은 점수를 얻어 공천을 받는 것이 아니라 유력 정당의 공천으로 출마하기 때문에 정당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는 것이다.

기초의원과 광역의원에 대한 정당 공천 폐지 운동은 2006년 5.31 지방선거 직후부터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봇물 터지듯 시작됐다.

정당 공천제 폐지를 위한 국민운동본부가 결성되고 전국 시.군.구 자치의회 의장협의회는 기초의원 정당공천 폐지를 요구하기도 했다.

국회의원 연구모임인 지방자치발전연구회가 2008년 말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국의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의 73.9%가 정당 공천제 폐지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고 '현행 유지'는 19.3%에 불과했다.

그러나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작년 12월 지방 의원과 단체장에 대한 정당 공천제를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최종 결론을 내 국회의원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작태라는 지적을 받았다.

당시 한 정개특위 의원은 "현행대로 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정당 공천제 유지에는 여야 간 별 이견이 없었다"라고 털어놓았다.

강원대 김기석 교수는 "지방 의회의 견제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가장 큰 문제는 정당 공천제에 있다"고 주장했다.

지방의원의 정당 공천 폐지가 어렵다면 비례대표를 늘리는 쪽으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지방의원 의석의 10%인 비례대표를 20∼30%로 늘리면 지역에 따라 특정 정당이 독식하는 폐단을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일각에서는 제도적인 장치 마련이 물 건너간 만큼 유권자들이 성숙한 판단을 내려 정당 공천제의 폐단을 극복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한다.

일본의 경우 2007년 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의 73%가 무소속으로 당선돼 정당 공천을 받는 것이 당선에 불리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후 일본에서는 지방의원들이 당 공천을 꺼리면서 오히려 각 정당이 어느 의원을 지지한다고 서로 발표하는 상황으로 변했지만, 당선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참신한 인물이 지방 정계에 등장하는 길이 열린 셈이다.
이기우 경실련 정책위원장은 "일본도 중앙 정치의 논리로 지방의회를 식민지화했지만, 주민들이 정당 공천 인물이 아닌 참신한 대표를 뽑으면서 무소속이 대거 등장했다"면서 "우리나라도 유권자가 조금만 더 각성하면 참신한 인물을 당선시켜 지방의회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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