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의식한 행정, 비리ㆍ방만운영으로 이어져
비리연루자 뽑지말자..깨어있는 주민의식 절실

"현재의 정치 구조에서는 자치단체장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한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만약 옛날로 돌아간다면 정치에 뛰어들지 않을 겁니다".

관선 군수를 여러 차례 지내고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에는 전북지역의 민선 단체장으로 4년간 일했던 A씨는 "주민을 위한 행정을 고민하기보다는 '표'를 위한 정치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했다"고 회고했다.

선거에 대한 부담을 전혀 가질 필요가 없는 관선시절과 달리 표로 먹고살아야 하는 민선시대에는 표를 의식한 '전시적 행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지방자치제 도입 이전에는 법과 원칙, 관례 등을 금과옥조로 여기고 행정을 했지만,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부터는 당선을 위해 이를 무시하는 일이 흔했다고 고백했다.

곳간(재정)이 비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무리하게 보여주기식 사업을 추진하고 특별한 필요성도 없는 축제들을 무분별하게 만들어 개최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A씨는 "어지간해서는 일을 해도 잘 표시가 나지 않고 능력을 인정받기 어려워서 단기간에 내놓을 수 있는 '업적'을 찾는 데 눈길을 돌리게 된다"며 "솔직히 내 돈도 아니고 누가 책임을 추궁하는 것도 아닌데, 빚내는 것을 무서워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이 과정에서 전임 단체장이 추진했던 좋은 사업이 사장되는 일도 흔하다고 했다. 특히 전임자와 정적(政敵) 관계일 때는 '자칫 고생만 하고 남 좋은 일 시킬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의도적으로 뭉개거나 흠집을 내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는 "이러면서 행정의 연속성이 깨지고, 막대한 행정력과 예산이 낭비된다"며 "결국 단체장의 정치적 목적 때문에 주민이 피해를 보게 되는 꼴"이라고 말했다.

일부 주민의 후진적인 정치의식에도 그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A씨는 "많이 좋아지고 있지만, 일부 농촌에서는 아직도 선거기간에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고, 돈을 풀지 않으면 곧바로 표로 '응징'을 한다"며 "돈을 쓰지 않으면 당선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어떻게 돈을 쓰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특히 규모가 작은 농촌지역의 단체장일수록 주민의 경조사를 지극 정성으로 챙기며 불법으로 부조금을 내는 것도 이런 분위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돈이 필요한 구조이기 때문에 단체장이 어떻게 해서든 이 돈을 마련해야 하고, 그것이 비리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면서 "지방자치제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주민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지방자치제가 도입되면서 단체장뿐만 아니라 공무원들도 이제는 주민 무서운 줄 알게 됐고 주민을 위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행정을 하게 됐다"며 "이것만으로도 지방자치제는 성공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앞으로 지방자치의 발전 방안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관선 대전시장과 충남지사를 거쳐 민선 대전시장을 2차례 역임한 홍선기(74) 전 대전시장도 "자치단체장으로 일하다 보면 많은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고, 저도 그런 유혹에서 자유로웠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하지만, 스스로를 질책하면서 위기를 극복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지방자치제가 아름다운 꽃을 활짝 피우려면 '사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홍 전 시장은 "지극히 원론적인 얘기이지만 지방자치를 이끌어가는 것은 바로 단체장과 지방의원"이라며 "도덕성과 전문성을 갖추고 봉사정신이 투철한 사람을 뽑아야 지방자치제가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된다"고 조언했다.

외형적인 틀을 갖춘 지방자치제에 알찬 내용을 차곡차곡 채우려면 능력 있고 생각이 올바른 사람이 소신 있게 일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비리 연루자를 지방자치 일꾼으로 뽑아선 절대 안 된다. 비리 연루자들의 상당수가 또다시 사고 치는 것을 목격하지 않았느냐"며 "능력 있는 인재가 돈 안 드는 선거를 통해 주민에게 봉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하며, 이를 위해선 깨어 있는 시민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흔들리는 지방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제로는 지방자치에 대한 주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꼽았다.

그는 "지방자치단체장이 되면 누구나 재임 중 번듯한 실적을 남기고 싶어 하고, 사업의 당위성을 확보하려고 온갖 논리를 들이대며 주민들을 설득하려 한다. 결국, 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주민들의 견제와 감시뿐"이라고 덧붙였다.

부족한 지방재정에 대한 중앙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홍 전 시장은 "충남에서도 천안과 청양의 재정 형편은 하늘과 땅 차이"라며 "지방재정을 확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하며, 그 첫 번째로 지방적 성격이 강한 세목을 과감하게 지방에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의회가 지자체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는 지방의원의 정당공천제 폐지를 꼽았다.

홍 전 시장은 "지방의원들이 정당 공천을 받다 보니 민생을 챙기는 일보다는 정당의 눈치를 보는 데 급급하다"며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면 지방의원들이 집행부를 견제하면서 생활정치를 실천하기가 쉬워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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