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균열의 조짐이 보이다

“좀 더 두고 보시지요? 급하게 결정을 봐야 하는 겁니까? 국제정세는 변화무쌍하여 앞날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신라와 백제 그리고 고구려가 지금 *욱리하(郁利河) 주변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각축을 벌이고 있습니다.

조만간에 세 나라 국력의 열세가 확연하게 판가름 날 것입니다. 그때 다시 의논해도 늦지 않습니다.”

가야연맹의 수장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연맹의 수장들이 모이면 각국의 첩자들에 의해 그 소식이 금방 백제, 신라, 고구려 조정에 들어갔다. 회의를 주관하는 반파국에서는 극도로 비밀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다.

 * 욱리하 – 지금의 한강을 고구려는 아리수(阿利水)로 백제는 욱리하(郁利河)로, 신라는 한산 하(漢山河) 또는 북독(北瀆)이라 불렀다.

“성산왕, 세월이 마냥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한데 모이기도 쉽지 않으니, 이번 회의에서 결론을 내야 합니다. 우리 반파국은 어제와 그제 중신과 원로들이 모여 백제국에 의존하기로 결정을 보았습니다. 예전에 신라와 맺었다 결렬된 혼인동맹도 없던 일로 하였습니다.”

이뇌왕이 다시 한 번 회의 목적에 대하여 언급하고, 반파국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반파국의 입장을 말하면서도 순간 양화왕비의 자닝한 모습을 떠올렸다. 지난밤에도 양화왕비는 두 눈에 눈물이 갈쌍갈쌍하여 신라를 나쁘게 몰아붙이지 말라고 부탁을 했었다.

왕비가 신라 출신 공주였지만, 혼인동맹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신라의 처사에 분노하고 있었다. 그녀는 매금왕이 사소한 일을 크게 부풀려 재바르게 결혼동맹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배경에 분명히 의뭉스러운 데가 있다고 보았다.

“우리 고령가야는 수백 년 전부터 신라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매년 신라와 교역하는 물량도 상당합니다. 우리가 신라와 교류를 끊는다면 우리는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하루아침에 신라를 배척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고령은 신라국과 다시 동맹을 맺고 대외관계를 전개했으면 합니다.”

고령가야 왕은 결연한 의지를 보이며 죽어도 신라와 척을 질 수 없다고 버텼다. 고령가야는 남삼한 내륙 깊숙한 곳에 있는데, 서쪽으로 백제, 동쪽으로 신라, 북쪽은 고구려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고구려나 백제보다는 모든 면에서 신라와 가까웠다.

“대왕, 오늘은 결론이 쉽게 나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쉬었다가 다시 속개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한 중신이 휴회(休會)를 건의하자 이뇌왕은 즉시 휴회를 선포하였다. 보통 연맹회의는 사나흘 걸리지만, 긴급을 요구하는 경우는 하루 안에 끝나기도 했다. 연맹회의 분위기는 마치 잔칫날 같았다. 이뇌왕을 제외한 다른 왕들은 현 시국이 얼마나 백척간두의 상태에 있는지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았다.

휴회가 되자 양화왕비, 도설지 태자, 월화공주(月華公主)가 이뇌왕에게 찾아갔다. 그들은 이미 시자(侍子)를 통해 왕의 주장을 보고받고 있었다. 앉아서 결과를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만약에 연맹회의에서 신라가 아닌 백제와 협력을 원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난다면 세 사람의 입지는 매우 난처한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 분명했다.

“대왕, 꼭 그렇게 하셔야 합니까? 반파국이 신라와 적대적으로 돌아선다면 우리는 어찌하란 말입니까? 차라리, 우리 세 사람을 신라로 보내주셔요. 여기 있다가는 가야연맹 사람들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라의 곁가지라는 이유로 비참하게 죽고 싶지 않습니다.”

양화왕비가 이뇌왕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애면글면했지만, 이미 마음을 굳힌 왕은 애써 못 들은 척하였다.

“아버님, 소자와 월화는 아버님께서 신라 매금왕과 맺은 혼인동맹의 증좌(證佐)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습니다. 반파국 원로들을 만나 뜻을 거두게 하시고 친 신라 정책으로 전향하여 주십시오. 가야연맹의 왕들도 아버님의 뜻에 거역하지 못하오니 소자의 뜻을 반영하여주십시오.”

도설지 태자가 엎드려 울음 섞인 목소리로 이뇌왕에게 고했다.

“아버님, 소녀도 어머님과 오라버니의 뜻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버님께서 친 신라 정책으로 국가시책의 방향을 돌려주시면 소녀가 서라벌로 가서 매금왕을 만나보겠습니다. 신라왕을 만나 가야연맹과 신라가 예전처럼 친하게 지내며 왕래할 수 있도록 선처해달라고 하겠습니다.”

월화공주도 부왕에게 모후와 오라비의 편을 들었다. 이뇌왕은 세 사람이 갈마들며 곡진한 자세로 소신을 밝히자 입을 굳게 다물고 답하지 않았다. 이미 연맹회의 석상에서 공표한 사항을 바꿀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연맹의 수장으로서 말을 바꾼다면 자신의 위상이 추락할 뿐만 아니라, 반파국 내에서도 입지가 좁아질 염려가 있었다.

반파국 원로들 사이에서도 친 신라파와 친 백제파로 갈리어 언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이뇌왕의 결단으로 원로들도 친 백제 정책으로 선회하였다. 왕이 잠시 왕비와 태자, 공주의 읍소(泣訴)를 듣고 마음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다시 되돌리기에는 자신이 없었다. 왕은 마음을 다잡고 명령을 내리듯 말했다.

“그 일은 이미 결정 난 일이오. 왕비는 그리 알고 처신에 신중을 기하기 바라오. 태자와 공주는 당분간 바깥출입을 삼가고 매사 조심하기 바란다. 친 백제파의 눈초리가 매섭다.”

결혼동맹은 깨지고 말았지만, 이뇌왕은 여전히 양화왕비와 도설지 태자, 월화공주에 대한 총애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반파국이 친 백제 성향의 국정을 운영하려면 왕비, 태자, 공주가 큰 걸림돌이 되어 여러 가지 마찰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었다. 반파국이 친 백제로 전향하자 친 백제파 중신들과 원로들은 양화왕비와 도설지 태자를 폐(廢)하라는 상소를 올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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