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지나갔다
김혜영

별이 빛나는 하늘이 차다

흐릿한 눈을 뜬 촛불이 걸어간다

책상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계절이 지나갔다

이불을 덮어 쓰고

귀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었다

얼굴이 지나갔다

컴퓨터 모니터를 켰다

불합격이란 단어가 튀어나왔다

울지 않았고

웃음을 지었다

빨간 고무장갑이

가만히 어깨를 두드린다

지독한 수렁에

발이 푹푹 빠지던 나날

컴퓨터 모니터를 차버리고

바닷가로 나간다

벌레가 기어 다니는 낡은 하숙집에서

다친 무릎을 안고 있는 소년

 미안해, 엄마

소년의 뺨을 어루만지는 저녁달

 초취한 하숙집에 어둠을 탄 입시생, 취업생의 풍경이 보인다.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이 지나가다 못해 꾹꾹 가득 눌러 담긴 바닷가의 그림도 보인다.

[별이 빛나는 하늘이 차다]란 문장은 사실 내용은 너무 흔하지만 첫 행부터 맘에 들었기에 올린다. 보통 별과 달은 따뜻한 이미지이나 ‘차갑다’라는 시적언어로 인하여 그 뒤에 나오는 모든 내용을 함축적 암시로 보여주고 있다.

이분의 시를 2007년도 쯤 처음 본 것도 같다. [젊은 시인들]이란 동인지를 읽으면서 지속적으로 화려한 시세계에 빠져 있는 시인들이 참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누구보다 정열적이고 적극적이지만 어느 선상에 가면 차갑게 식기 때문이다. 시든 책이든 사람이든 운동이든 취미도 직업도 그 어떤 것에도 정열과 무관심이 내 안에는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대 시들이 너무 독보적이다 못하여 독창적이기에 혼자 중얼거림이 될 수도 있는데 그 선상에서 [젊은 시인들]의 시들이 새로움을 추구하면서도 해석이나 이해의 폭을 넓히려고 노력한다는 느낌을 받아 좋다.

예술은 그 시대의 인류의 깃발이므로 앞서가면서도 최대한 폭넓은 층과 함께 해야 하는 숙제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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