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금관가야 왕자 김무력

“월화야, 지금 우리의 입장이 “월화야, 지금 우리의 입장이 참으로 난처한 상태이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좋은 시절이 올 수도 있어. 참고 견뎌보자. 도설지가 신라로 갔고, 내가 신라왕의 처제이니 반파국에서 우리 모녀(母女)를 어찌하지는 못할 것이야.

지금은 죽었다 하고 숨죽이며 지내자. 앞으로 오 년이 될지 아니면 십 년이 될지 모르지만, 국제관계는 변화무쌍하니 언젠가 우리 모녀에게도 해 뜰 날이 있을 것이야. 너는 부왕을 자주 찾아가 귀여움을 떨고 예쁜 모습을 자주 보여야 한다. 부왕은 마음이 여린 분이라 우리 모녀를 내치거나 위해를 가할 분이 아니다. 그러나 뇌주는 조심해야 한다. 그 애는 우리 모녀뿐만 아니라, 네 오라비를 철천지원수로 여기고 있단다.”

“어머니, 알겠어요. 부왕을 자주 찾아가 뵐게요.”

월화공주는 양화왕비를 꼭 빼닮아 상당한 미색(美色)이었다. 이뇌왕도 월화공주를 다른 자식들에 비해 총애하며, 사소한 잘못이 있더라도 두남두며 늘 가까이 두려 하였다. 월화공주는 도설지가 태어나고 서너 해 뒤에 태어나 이제는 원숙미가 느껴졌다.

이뇌왕은 꽃처럼 자란 딸을 볼 때마다 마뜩해 하였다. 그는 월화공주를 장차 신라나 백제왕에게 시집보낼 궁리를 했으나, 가야연맹 회의 결과에 따라 신라와 관계가 틀어지자 백제왕의 후비(后妃)로 들일 방법에 골몰했다.

“자자, 한잔하세. 이제, 나와 자네는 이 서라벌에서는 서로 친동기간처럼 지내야 하네. 우리 금관가야가 서너 해 전에 신라에 의해 합병되었지만, 나는 차라리 잘된 일이라 보네.

만약, 아버님이 신라에 항거했더라면 우리 금관가야는 세상에서 형체도 없이 사라졌을 거네. 지금은 아버님이나 우리 형제들이 진골에 편입되어 잘 지내고 있다네. 물론 금관가야 백성들도 예전처럼 똑같이 일상생활을 하며 평화롭게 지내지.”

금관가야 마지막 왕인 *구형왕(仇衡王)의 셋째 왕자였던 김무력(金武力)은 도설지를 서라벌에서 잘나가는 천궁(天宮)으로 불러냈다. 천궁은 서라벌 한가운데 있는 고급 기루(妓樓)였다. 천궁에는 신라뿐만 아니라 가야, 백제, 고구려, 왜에서 건너온 가인(佳人)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왕실의 젊은 사내들도 찾아와 기녀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매금왕과 동서지간이기도 한 김무력은 현재 고구려와 대치하고 있는 최전선에 파견 나가 있었다. 그는 신라의 *6부병(六部兵)에 소속된 장군이기도 했다. 도설지가 신라로 귀순하자 김무력은 자연스럽게 도설지를 만나면서 금방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다. 금관가야가 신라에 합병된 배경에는 반파국과 신라가 맺은 혼인동맹이 있었다.

 * 구형왕 - ‘구충왕(仇衝王)’ 또는 ‘구해왕(仇亥王)’, ‘구차휴(仇次休)’라고도 불렀다.

신라 법흥왕 19년에 금관가야의 임금 김구해(金仇亥)가 왕비 및 세

아들인 노종(奴宗), 무덕(武德), 무력(武力)과 신라에 귀순하였다.”고 했다.

* 6부병 – 신라 초기 군사제도로 신라를 형성한 6부에서 장정들을 선발하여 수도

방위의 임무를 맡겼다.

 “형님께서 저를 음으로 양으로 보살펴 주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앞으로도 저를 많이 지도해 주세요. 저는 이제 신라 사람으로 살아가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 있도록 헌신할 것입니다.”

김무력은 끼끗하고 칠칠해 보이는 도설지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같은 가야 출신으로서 서로 많은 것이 통했다. 신라 왕실 사람들뿐만 아니라 중신들 사이에서도 김무력 형제들을 경계하는 분위기였다.

거기에 최근에 도설지까지 신라로 귀순하여 왕으로부터 벼슬을 제수받자 신라 상류층 인사들은 크게 긴장하였다. 그들이 김무력과 도설지가 주루에서 은밀히 만난 것을 알게 되면 서름해 하거나 뜨악해할 것이 분명했다.

김무력은 현재 매금왕의 지시 때문에 *한산하(漢山河) 지역에 진출하여 고구려와 대치하고 있는 신라군의 장군이었다. 그는 몸이 불편하여 서라벌에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신라왕이 그를 먼 곳으로 보낸 이유는 구형왕의 세 아들 중 김무력이 가장 활달하고 친화력이 있어 가야인들과 연계할 경우 예상치 못한 소요사태가 일어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김무력은 왕의 명령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 한산하 – 지금의 한강. 백제에서는 욱리하, 고구려에서는 아리수, 신라는 한산하 또는 북독(北瀆)이라 부름.

 “자네, 내 휘하에서 일할 생각 없는가? 서라벌에 있으면 신라 왕실 사람들이나 중신들에게 많은 견제를 받게 될 걸세. 그들은 자네의 귀순 동기를 의심하면서 끊임없이 자네를 뜨개질하려 들것이야. 그때 만에 하나라도 자네가 그들의 눈에 잘못 비치게 되면 곤란한 일에 말려들 수 있어. ]

그러느니 차라리 나와 함께 전선(戰線)으로 나가 있는 게 속이 편할 걸세.”

도설지가 서라벌에 정착한 뒤로 진골들과 6두품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부담되었다. 그가 하급 관등임에도 신라의 기존 진골들은 도설지를 은근히 하대하는 투로 대했다.

궁성 방비를 위하여 헌신하고 있는 그에게 병사들도 도설지를 하찮은 존재 또는 나라를 버린 배신자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도설지는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임무에 충실하였다.

“신라 상류는 만만치 않네. 나는 아직도 진골들과 조정 중신들을 상대로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는 중이네. 우리 금관가야는 반파국과 신라 사이에 체결되었다 파기된 혼인동맹으로 말미암아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것을 자네도 잘 알고 있을 거네. 따지고 보면 자네가 금관가야를 사라지게 한 증좌이기도 하다네.”

김무력은 잔을 들어 단숨에 비우고 허탈하게 웃었다.

‘무력 형님의 말이 옳다. 지금은 내가 서라벌에 있어 봐야 빛을 볼 수 없다, 차라리 전선에 나가 군공(軍功)을 세워 나의 존재를 굳건히 하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내가 공을 세워야 반파국에 계신 어머님과 월화공주의 입지도 단단해질 수 있다.

내가 신라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으면 가야연맹에서도 나의 존재감을 알고 어머님을 어찌하지 못할 것이야. 또한, 곧 태어날 나의 자식도 안전할 것이고. 좋다. 무력 형님을 따르자.’

도설지는 술잔을 잡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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