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20.08.09.
최종편집 : 2020.8.8 토 21:11
로그인 회원가입 아이디/비밀번호 찾기
> 뉴스 > 오피니언 > 기고 | 최재효의 인터넷 소설
     
소설 '도설지'(道設智·월광태자) <14>철의 여인 지소태후
2020년 08월 01일 (토) 09:59:27 최재효 cjhoy6044@korea.kr

<14>철의 여인 지소태후

“아이고, 잘 사셨습니다. 두 분이 아주 잘 어울립니다. 제가 값을 많이 깎아드렸습니다. 다음에 또 오면 더 많이 팔아주세요. 참, 그런데, 이 동네 사람들이 이 댁을 가야댁이라 부르는데 가야에서 오셨나 봅니다?”

연두가 집안을 둘러보며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그의 눈이 살기로 반짝거렸지만, 두 사람은 눈치 채지 못했다.

“아, 네. 지난해 가야에서 이사 왔답니다.”

항우는 백분 값을 깎아준 연두가 고마워 아무 생각 없이 대꾸했다. 연두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물러가자 백조는 항우에게 연신 고맙다며, 애정의 표시를 하였다. 청조는 안채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도설지가 사는 집을 확인한 연두와 철수는 사탁부를 빠져나와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었다.

“대왕, 우리 신라는 반드시 남삼한을 일통해야 합니다. 그 대업을 하루 이틀 안에 할 수는 없습니다. 대왕이 터를 닦아놓으면 후대들이 알아서 할 거로 봅니다. 그 첫 단계는 가야의 복속입니다. 선대 법흥대왕께서 금관가야를 합병하셨습니다.

조만간 나머지 가야연맹을 모조리 정복하여야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상대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후미에 잔적(殘敵)을 두고 선두로 나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왕의 생모인 지소태후는 선대 법흥대왕의 무남독녀였다. 그녀는 법흥대왕의 친제(親弟)인 갈문왕 김입종의 배우자로 삼 남매를 낳았다. 만약 지아비 입종이 일찍 죽지 않았더라면, 법흥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되고 그녀는 왕비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들을 왕위에 올려놓고 자신이 태후가 되어 섭정(攝政)하는 것으로 그녀는 만족해했다. 그녀는 웬만한 남자 서너 명 몫을 하는 여장부였다. 신라 왕실은 예전부터 여인들의 입김이 강했다. 그녀는 선대왕들이 추구하는 바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어머님의 뜻을 받들고 선대왕들의 유훈을 살펴 소자가 신라 지존의 몸으로 있는 동안에 삼한 일통의 기반을 닦아놓겠습니다. 소자도 어머님의 말씀에 동감합니다. 제일 먼저 가야국들을 정복해야 신라의 배후가 안정될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 백제와 고구려를 정복해야 하나, 그 일은 후손들에게 숙제로 남겨둬야 할 것 같습니다.”

“대왕이 이 어미의 말을 얼른 알아들으니 다행입니다. 백제와 고구려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대륙의 북위(北魏), 양(梁), 송(宋), 저(濟) 같은 나라하고도 교류해야 합니다. 일국의 왕이 되셨으니 사소한 일에 마음을 두면 안 됩니다. 특히, 이사부와 *구지포례(久遲布禮) 장군을 잘 부려야 합니다.

그들은 신라가 주변국들을 공략하는데, 아주 유용한 쌍두마(雙頭馬)입니다. 또한, 반파국에서 귀순한 월광도 잘 활용하세요. 듣기로는 그도 담력이 크고 완력도 세다고 합니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그를 김무력 장군과 가까이 있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두 사람이 가야 출신이니 혹여 합심하여 엉뚱한 생각을 할 수도 있어요.”

“어머님 말씀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지소태후는 아들 삼맥종에게 추가로 치국의 빙략(方略)을 설파하였다. 그녀는 지아비 입종이 없어 허룩한 심정을 아들에게 치도(治道)를 가르치는 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녀가 정치를 직접 할 마음이 있었다면 신라 최초의 여왕에 등극할 수도 있었다. 그녀는 전국시대 장의와 소진이 구사했던 합종연횡책에 관하여 장황한 설명을 이어갔다.

 * 구지포례 - 본명은 김거칠부(金居柒夫)로 진흥왕, 진지왕 시기에 활동하였던 신라의 승려, 장군, 재상이다. 다른 이름으로 황종(荒宗), 구지포례(久遲布禮), 거칠부지(居七 夫智), 거비부지(居朼夫智)가 있다.

 세상은 이익을 따라 모이고, 이익을 좇아 흩어진다. 이합집산(離合集散)의 중심에는 이(利)가 있다. 이익만 내세우면 모양이 좋지 않으니, 여러 가지 명분을 앞세울 뿐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대륙의 전국시대에 진(秦), 한(韓), 위(魏), 조(趙), 연(燕), 초(楚), 제(齊)라고 불리는 칠웅(七雄)은 수시로 전쟁을 하고 있었다. 대륙의 서쪽 지방을 진나라가 대부분 차지하고 나머지 여섯 나라가 동쪽 지역을 분할하여 다스리던 시기이다.

그때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라는 두 명의 걸출한 협상가가 있었다. 그 둘은 귀곡자(鬼谷子)라는 사람에게 수학한 동문으로 세 치의 혀로 명성을 날렸다. 소진이 동쪽 여섯 나라를 유세하며 설득했다. 그의 유세의 핵심은 약한 나라가 뭉치지 않으면 바로 망한다.

여섯 나라가 한뜻으로 뭉치면 진나라도 어쩔 수 없다. 이는 남북으로 위치한 여섯 나라가 하나가 된다는 의미였다. 소진은 합종책(合從策)으로 군사동맹을 성사시켰고 그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여섯 나라의 재상 직을 겸했다.

대국 진나라와 소국 여섯 나라의 균형이 유지되고 있을 때 장의가 연횡책(連衡策)을 들고 나왔다. 장의는 약한 나라들끼리 손을 잡는 것보다 강한 진나라와 화친을 맺어야 소국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유세하고 다녔다.

힘이 비슷한 남북의 종(從)보다 강자와 손을 잡는 동서의 횡(衡)이 나라를 존속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장의의 유세가 여섯 개의 소국에 먹혀들면서 소진의 합종책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진나라는 장의 연횡책을 구사하여 합종책을 무너뜨린 뒤 여섯 나라를 차례로 멸망시켜 대륙을 통일시킬 수 있었다.

이합집산은 때에 따라 개인이나 나라에 적용될 수 있는 묘안이기도 했다. 뭉치고 흩어짐에 있어서 너무 이익만을 좇으면 길을 잃게 된다. 소신 없는 일시적인 유세에 꺼둘리면 나를 잃고 나라를 망국의 길로 들게 한다. 동쪽의 여섯 나라는 우왕좌왕하다 모두를 잃었다.

“어머님,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소자도 필요할 때 고구려와 백제, 가야, 왜국 그리고 북위와도 손잡고 영토를 확장하는데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지소태후는 아들이 자신의 어려운 이야기를 알아듣는 것에 무척 흡족해했다. *계속

최재효의 다른기사 보기  
ⓒ 남동뉴스(http://www.namdongnew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인천형 뉴딜 종합계획 내달 발표…...
남촌도림동 신축 청사·만수어르신 ...
구월1동 신청사 선수촌공원로 완공...
'청렴문화 확산'구, 제1차 청렴...
'바이오 생산허브 구축' 인천시-...
만수1동,신규A 795세대 1천7...
윤관석 의원, 대표 발의'주택법'...
시설공단 영종공원사업단,만수복지관...
구, 폐기물 매립지 반입량 초과·...
'3개가 하나로'중앙공원, 보행육...
신문사소개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저작권문의 | 구독신청 | 불편신고 | 제휴안내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  청소년보호정책
인천광역시 남동구 인주대로 846 (만수동) 주식회사 인천남동신문 (우)405-866 | TEL (032)461-2580 | FAX (032)462-7744
등록번호: 인천광역시 아01030 | 등록일 : 2009년 11월 19일 | 발행·편집인 : 안영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안영환
Copyright 2009 남동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namdon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