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태자비의 죽음

“이것은 북위에서 들여온 강정제(强精劑)입니다. 자주 복용하시어, 장차 왕손을 많이 생산해야 합니다. 선대 법흥대왕은 이 어미 밖에 자식을 두지 못했습니다. 자고로 왕실에는 자손이 풍족해야 합니다. 신라는 골품제 나라이니 대왕의 피를 이은 자손이 나중에 물려받아야 합니다.”

“소자, 어머님 말씀 뼈에 새겨 잊지 않겠습니다.”

모자는 밤이 늦도록 치세(治世)의 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지소태후는 어린 아들을 금상(今上)에 올려놓고 걱정이 많았다. 모든 중신이나 왕실 인사들이 어린 왕을 존경하고 추종하는 것은 아니었다.

중신 중에 음황하고 천격스러운 자들은 어린 왕이 실정하기만 바라고 있었다. 지소태후는 그들의 반감을 잠재우거나 확산하는 것을 막아야 했다.

“철수, 내가 담장을 넘어 들어가 집안의 동태를 살피고 나서 일하기 적당한 조건이면 뻐꾸기 소리를 두 번 낼 테니까 즉각 담장을 넘어오게. 낮에 보니 사내 한 놈이 있는데, 보통내기가 아닐 듯 하네.”

“알았네. 그리함세.”

장도(長刀)와 단도(短刀)로 무장한 연두가 월광의 집 담장을 쉽게 넘었다. 반월(半月)이 막 서산으로 넘어간 뒤라 사방이 칠흑 같았다. 어두운 밤에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복면을 한 연두는 숨을 죽이며 안채로 접근하였다.

항우와 청조, 백조가 기거하는 바깥채는 불이 꺼져 있었고 안채도 불이 꺼진 상태였으나, 어린 아기 울음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다.

‘모두 잠든 모양이군. 도설지, 넌 오늘 마지막이다.’

연두가 중얼거리며, 안채를 살펴보고 뻐꾸기 소리를 냈다. 초가을에 난데없이 뻐꾸기 소리가 나자 항우는 자다 말고 눈을 비볐다. 동시에 청조도 이상한 느낌이 들어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철수와 연두가 막 안채 내실 문의 고리를 잡았을 때였다.

“웬 놈이냐?”

항우가 방에서 뛰어나오며 벽력같이 소리쳤다. 그가 뛰어나가자 창조도 반사적으로 칼을 들고 뛰어나왔다. 항우의 손에는 철퇴가 들려있었다.

“앗, 들켰다. 철수, 저놈을 죽여라. 나는 내실로 들어가 도설지 부부를 처치하겠다.”

철수가 칼을 빼 들고 항우와 청조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철수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연두는 아랑이 잠들어 있는 방으로 뛰어들었다. 방에는 아랑과 백조 그리고 아기가 있었다. 백조는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잠이 깨고 방으로 뛰어든 연두를 맞았다.

그러나 백조도 역시 왜의 필살 검법을 익힌 연두에게 적수가 되지 못했다. 밖에서는 청조와 항우가 자객 철수와 사투를 벌였고, 내실에서는 연두와 백조가 검투(劍鬪)를 벌였다. ‘악’하는 단말마와 함께 백조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이놈, 너는 누구냐?”

아랑이 아기를 안고 소리쳤다. 어두운 방에서 두 사람이 마주했지만 서로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나는 뇌주 태자님이 보낸 자객이다. 도설지는 어디 있느냐?”

“뇌주가 보낸 자객?”

아랑은 뇌주라는 말에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꿈속에 나타났던 검은 소가 순간 뇌리를 스쳤다. 밖에서는 세 사람이 혈투를 벌이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렸다. 남녀의 기합 소리와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난무했다. 잠들었던 아기가 깨어나 울음을 터트렸다.

“도설지는 어디 있느냐?”

“이놈, 태자님은 집에 안 계시다. 전선으로 떠나셨다.”

“그래. 너희는 뇌주 태자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이제 그 벌을 받아라. 그동안 옥의옥식했으니 여한은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자식까지 낳았구나. 나를 원망하지 말고 너의 팔자를 탓하여라.”

“안 된다. 이 아이만은 안 된다. 차라리 나를 죽이고 이 아이는 해치지 마라.”

아랑이 아기를 뒤로 감추었다. 연두가 아랑을 노려보다가 칼을 내리쳤다. 아랑은 그 자리에서 절명하였고 아기도 목숨을 잃었다. 왜인에게 배운 검법으로 연두는 아랑과 어린 아기를 잔인하게 죽이고 말았다.

연두가 아랑과 아기의 머리를 들고 밖으로 나왔을 때 청조는 목이 떨어진 상태로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항우는 한쪽 팔이 잘린 채 철수를 상대로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철수, 저놈은 살려두자. 살려둬야지 도설지가 우리가 누구인지 알 게 아닌가? 저놈도 한쪽 팔을 잃었으니, 우리 상대가 못 된다. 머리 두 개를 확보했으니 그만 가자.”

“이놈들, 그 머리를 내려놓아라. 감히 네놈들이 반파국 태자비와 태손(太孫)의 머리를 취하다니. 네놈들은 반파국의 역적 놈들이다. 어서 그 머리를 내려놓아라.”

항우가 철퇴를 들고 간신히 서서 애걸하다시피 했다. 항우는 태자비와 태손이 이미 죽임을 당했고, 두 자객에게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싸움을 포기했다.

“네놈도 반파국에서 왔을 테지만 반파국의 태자는 뇌주 왕자님이시다. 오늘은 운이 없어 태자비였던 계집과 그 자식의 목을 취하였다. 다음에는 도설지의 목을 취할 것이다. 우리가 다시 오면 정중하게 대하여라. 알겠느냐? 네놈은 목숨이 붙은 것만으로 감지덕지해라.”

뇌주가 보낸 두 자객은 아랑과 갓 태어난 아기의 목을 취해 사라졌다. 항우는 큰소리로 울부짖었지만 이미 모든 일이 끝난 뒤였다. 이웃들의 신고로 왕경을 수비하는 6부병(六部兵)의 군관이 병사들을 이끌고 도착했다.

그들은 목 없는 시신 두 구와 청조, 백조의 시신만을 수습하고 돌아갔다. 사탁부 마을에서 발생한 살상사건으로 서라벌과 왕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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