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골육상전

“왜놈들이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인정사정 보지 말고 쳐 죽여라.”
“살려주시므니다. 우리는 구다라 군이 아니므니다.”

월광이 이끄는 성난 신라군사들도 벌떼처럼 달려들어 왜군을 척살하였다. 천여 명에 달하는 야마토 군사들은 순식간에 어육(魚肉)이 되었고, 유지신을 비롯한 군관 서너 명만 간신히 탈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성안에서 신라군을 맞아 싸우는 병력은 대부분은 가야연맹에서 파견된 군사들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들을 이끄는 장수는 바로 반파국 왕자 뇌주였다. 피를 튀기는 살육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월광은 칼을 휘두르다가 가야연맹의 투구를 쓴 병사들을 보면 될 수 있으면 비껴갔다.

항우 역시 신라군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백제 연합군 중에서 가야연맹 병사들에게는 인정을 베풀었다. 가야 병사 중에서 월광과 괴력의 외팔이 전사 항우를 알아보는 자들이 꽤 있었다.

가야 병사들도 월광과 항우에게는 달려들지 않으려 했다. 그들이 월광과 항우를 보고 멈칫하거나 주저할 때면 뇌주는 소리치며 병사들을 다그쳤다.

“왕자님, 저기 도설지와 항우가 있습니다.”
뇌주의 호위무사 연두가 소리쳤다.

“오호라, 오늘 저놈을 제대로 만났구나. 저놈을 여기서 만날 줄이야. 연두, 철수는 나를 따라라. 내가 오늘 저 두 놈을 반드시 죽이고 말겠다.”

뿌연 연기와 병사들의 함성, 비명 그리고 날이 시퍼런 병장기가 난무하는 지옥 같은 전장에서 월광과 뇌주가 맞닥뜨렸다. 뇌주는 긴 창을 들고 있었고 그의 두 심복 연두와 철수는 장도를 들고 있었다. 월광은 언월도(偃月刀)를, 항우는 철퇴를 들고 백제 연합군을 상대로 혈전을 벌였다.

“이놈, 도설지야. 여기서 만나는구나. 너와 나는 이 세상에 공존할 수 없는 운명이다. 오늘 여기서 승부를 내자.”

뇌주를 발견한 월광은 깜짝 놀랐다. 설마 하던 일이 사실이 된 것이었다. 월광은 이복형 뇌주를 보자 분노가 일어 잠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뇌주가 금방이라도 창을 들고 월광에게 달려들 태세였다. 연두와 철수도 칼을 들고 달려들려고 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두 사람이 가까이서 이야기를 주고받자 백제 연합군과 신라군사들도 두 사람의 관계를 눈치 채고 달려들지 않았다.

“뇌주, 한 가지만 묻겠다. 나는 아직도 반파국의 태자다. 어째서 자객을 보내 나와 태자비를 죽이려 했더냐?”

월광이 침통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가 정녕 그 이유를 몰라서 묻는 것이냐? 너는 나의 철천지원수다. 네놈만 태어나지 않았다면 나는 반파국의 태자가 되어 가야연맹을 호령하였을 것이다. 네놈 때문에 나와 내 모후의 인생이 망가졌다. 너를 죽여야 내가 내 뜻대로 살 수 있다. 이유는 그것이다.”

뇌주는 두 눈에 핏발이 선 상태로 마치 어른이 어린아이를 타이르듯 말했다. 양측의 군사들이 소리치며 빨리 상대를 죽이라고 아우성이었다.

“너의 말대로 우리는 한 아버지를 둔 형제 사이지만, 불구대천의 관계로다. 좋다. 여기서 승부를 내자.”

“이놈, 도설지야. 그것은 내가 할 소리다. 잔말 말고 이 형님의 창을 받아보아라. 너와 내가 처음으로 창칼을 겨눠보는구나. 아버님이 이 장면을 보셨으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구나.”

창과 언월도가 불꽃을 튀겼다. 월광이 뇌주보다 한 뼘 정도 키가 크고 완력도 세었다. 뇌주가 월광에게 일방적으로 밀리자 그의 심복 연두와 철수가 가세하려 들었다. 항우도 철퇴를 들고 월광에게 붙었다.

“너희들은 물러가라. 이 싸움은 우리 두 사람의 운명이다.”

뇌주가 소리치자 연두, 철수, 항우가 물러섰다. 월광은 신라의 장수가 되어 여러 전장을 누비며 창 검술의 달인이 되어 있었다. 십여 합이 지날 때 뇌주가 넘어지면서 창을 놓치고 말았다. 사색이 된 뇌주는 월광이 휘두르는 언월도를 보고 그만 눈을 감았다. 월광은 언월도만 휘두를 뿐 뇌주의 목을 치지 않았다.

“이 전쟁에서 용케 살아서 돌아가면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월화를 부탁하마.”

월광이 언월도를 거두고 돌아서자 가야연맹 군사들이 달려와 뇌주를 데리고 사라졌다. 월광이 항우에게 눈짓을 하자 항우와 신라군사들이 연두와 철수에게 달려들었다. 아무리 연두와 철수가 일본 검술을 익혔어도 벌떼처럼 달려드는 신라군사들을 당해 낼 수 없었다.

“저 두 놈을 생포하라.”

신라군사들이 쏜 화살을 맞고 연두와 철수가 쓰러졌다. 두 사람이 월광 앞에 잡혀와 무릎을 꿇었다. 두 사람은 이미 자신들의 죄를 알고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장군, 이 두 놈이 태자비님과 태손 그리고 백조와 청조를 죽인 놈들입니다. 제가 이 두 놈을 처단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항우가 월광에게 간청하였다.

“너 역시 저놈들에게 한쪽 팔이 잘렸으니 원한이 클 것이다.”

월광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항우는 철퇴로 연두와 철수의 머리를 가격하였다. 두 명이 항우의 철퇴를 맞고 머리가 박살나면서 골수가 사방으로 튀었다. 이에 사기가 더욱 오른 신라군사들은 백제 연합군들을 상대로 살육전을 이어나갔다.

해가 중천에 오를 즈음 관산성은 다시 신라군의 수중으로 떨어졌다. 부여 창을 비롯한 백제 연합군 수뇌부 몇 명만 겨우 관산성을 빠져나와 고리산성으로 도망쳤다. 이어 김무력은 신라군을 고리산성과 이백산성으로 이동시켜 즉시 성을 공격하게 했다. *계속

저작권자 © 남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