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신라로 시집가는 월화공주

“우리가 살길은 무조건 고개 숙이고 서라벌로 가는 겁니다.”
아라가야 왕이 또 목소리를 높였다.

“서라벌에는 뇌주 태자를 보내야 합니다. 신라로 도망친 도설지가 신라의 장수가 되어 지난번 관산성 전투에도 참여했답니다. 그는 신라 왕태후의 조카뻘이 된다고 하니 뇌주 태자를 보내면 두 사람이 잘 해결할 것으로 믿습니다. 형제가 협력하여 신라왕에게 고하면 말이 통할 수도 있어요. 한번 기대해 봅시다.”

두 사람 관계를 모르는 걸손국 왕이 그럴듯한 제안을 했다. 걸손국은 *황산하(黃山河) 하류 지역에 자리 잡고 있던 작은 나라로서 걸찬국(乞飡國)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걸손국은 신라 법흥왕 때 금관가야가 망하는 것을 보고 두려움을 느끼고 가야연맹에 기대고 있었다.

지난번 관산성 전투 때 작은 나라임에도 수백 명의 용사(勇士)를 보내기도 했었다. 그는 내심 신라의 보복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 황산하 – 지금의 낙동강

“신라왕 삼맥종은 혈기왕성한 나이라고 하니 젊고 예쁜 여인을 바치면 어느 정도 체면치레도 되고 그의 심기도 누그러트릴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뇌왕에게 월화공주가 있지 않습니까? 천하절색이라고 소문이 자자한데, 지금같이 조국이 풍전등화의 처지에 있을 때 공주가 나서면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소가야 왕이 잔을 비우고 마치 비책(祕策)이라도 되는 양 월화공주를 입에 올렸다.

“그거 묘책입니다. 그러나 이뇌왕이 허락할까요?”
“지금 같은 사태를 만든 자가 누구입니까? 본인이 결자해지해야지요.”
“암요. 지당한 말씀입니다.”

소가야 왕의 주장에 가야연맹 왕들과 장자들은 묘책이라며 소가야 왕을 두둔하였다. 두 시진이 지나자 회의가 속개되었다.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소가야 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미 소가야 왕과 고령가야 왕이 말씀했듯이 우리 가야연맹이 살길은 신라와 화친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조속히 사신단을 꾸려 신라왕에게 보내야 합니다. 또한, 가야연맹을 대표하는 반파국에서 책임을 지고 다시 한 번 혼인정책을 성사시켜야 합니다.

반파국의 월화공주께서 *왕소군(王昭君)과 *초선(貂蟬)을 뺨치는 절세가인이라 들었습니다. 왕께서는 깊이 생각하시어 신라에 은혜를 갚는다는 뜻으로 왕녀를 신라왕에게 시집보내십시오.”

소가야 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좌중에서 그의 의견을 지지하는 말들이 쏟아졌다.

“좋은 의견입니다. 소가야 왕의 의견을 지지합니다.”
“옳소. 소가야 왕의 의견을 지지합니다.”
“좋은 방책입니다. 양화왕비도 신라 공주 출신 아닙니까?”
“우리 가야연맹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기가 막힌 전략입니다.”

연맹회의를 주재하는 이뇌왕의 응답이 있기도 전에 연맹의 왕들과 장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소가야 왕의 발언을 찬동하였다.
* 왕소군 - 중국 역사에서 4대 미인으로 꼽히는 인물. 원래 한나라 원제(元帝)의 후궁이었다.

원제가 흉노의 선우 호한야(呼韓耶)에게 화친을 위해 시집보내졌다.
* 초 선 - 서시, 왕소군, 양귀비와 함께 중국의 4대 미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삼국지연의에 따르면 동탁(董卓)과 여포(呂布) 사이를 이간질 시키는 역할을 한다.

 ‘뭐, 월화공주를 신라왕에게 시집보내라고?’

이뇌왕은 딸의 이름이 거명되자 눈앞이 아득했다. 가야연맹 왕들이 한목소리로 나오자 이뇌왕은 즉답을 피하고 고심하였다. 그 역시 신라의 법흥왕에게 구걸하다시피 하여 지금의 양화왕비를 정비(正妃)로 맞아들였다.

그 당시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에 이뇌왕은 전율하였다. 지금 가야연맹이 처한 상황이 잠시도 주저할 수 없다는 것을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아버님, 소가야 왕의 의견에 일리가 있습니다. 소자가 사신을 이끌고 신라에 다녀오겠습니다. 소자를 보내주십시오.”

뜬금없이 뇌주가 일어나 소가야 왕의 발언을 지지하자 회의장 분위기는 금방 돌변하고 말았다. 이뇌왕은 눈을 감고 몸을 좌우로 흔들며 안정을 찾으려고 했다.

“뇌주 태자 만세.”
“역시 반파국 태자답습니다.”
“뇌주 태자가 가야연맹을 살릴 분입니다.”
“뇌주 태자에게 박수를 보냅시다.”

회의 방향이 이뇌왕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요즘 들어 혼기가 꽉 찬 월화공주를 두고 이뇌왕과 양화왕비는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도도하고 도저한 성정(性情)의 월화공주는 빼어난 외모만큼이나 다루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가야연맹에서 그녀는 오로지 아버지 이뇌왕을 제외하고 두려워하는 자가 없었다. 그녀는 월광이 신라로 망명한 뒤로 신라를 동경해 왔다. 월광과 월화공주는 동기간의 우애가 남달리 돈독했다. 모후(母后)인 양화왕비도 딸 월화공주가 정정(政情)이 불안하여 바람 잘 날 없는 반파국보다는 친정인 신라로 시집가기를 은근히 기대해 왔었다.

“이 문제는 나 혼자 결정할 사안이 아니오. 이 문제는 나와 왕비 그리고 월화공주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봐야 합니다. 회의 결정을 내일로 연기하겠습니다. 연맹의 수장들과 장자들은 한 사람도 돌아가지 마시고 내일 아침에 다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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